서울 나들이

편안할 영(寧)과 넘을 월(越)

지난주에는 업무차 서울 나들이를 나섰다. ‘퍼블리셔스 테이블’이라는 국내최대 규모의 독립출판 북페어 행사였는데, 지방에 내려온 뒤로는 내가 유일하게 참가하는 오프라인 행사이기도 했다. 일 년에 한 번, 산 아래로 내려가 속세의 맛(?)을 보는 짧은 휴가와도 같아서 내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는 행사다. 행사는 금토일 3일간 진행이 되었는데, 아무래도 나는 짐도 많고 시작 시간과 끝 시간을 맞추기 애매해서 행사 전날에 미리 도착하고 행사를 마친 다음날 돌아오는 일정으로 스케줄을 짜다 보니 5일이나 서울에서 지내야 했다.

정말 오랜만에 만난 서울은 여전했다. 너무 많은 차들과 너무 많은 사람들, 너무 많은 소리와 너무 많은 냄새들로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도착한 첫날, 서울에 있는 지인들과 만나 저녁을 함께 하기로 했는데, 마침 숙소가 젊은이들이 많이 찾는 ‘양꼬치 거리’ 인근에 있어서 우리는 자연스레 그쪽으로 향했다. 근처에 대학교가 있어서 그런지 거리에 온통 젊은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있었는데, 그 모습이 꽤 낯설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다. 애초에 산으로 들어와 살고 있는 나에게 젊은 사람은커녕, 이렇게 많은 수의 사람이 좁은 골목에 우글우글 거리는 광경은 이제 낯선 모습이 된 것이다. 그날 양꼬치에 술을 한잔하고 숙소로 돌아와 SNS에 이렇게 썼다.

‘사람들이 많았다. 낙엽보다도 많았다.’

이제 막 떨어지기 시작한 낙엽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보았다.

행사장은 요즘 떠오르는 핫플인 ‘성수’에 있었다. 인쇄, 기계, 정비 공장이 있던 낙후된 동네였는데, 이제 공장들은 어디론가 다 떠나가고 대신 여러 기업들의 공장 부지에서 팝업 스토어를 열며 그 덕에 젊은이들이 우르르 찾아오는 대단한 상업지가 되었다고 한다. 팝업 스토어의 성지인 만큼, 우리가 행사를 하는 동안에도 옆 건물과 옆옆 건물과 두 블록 떨어진 또 다른 건물에서 각기 다른 팝업 스토어가 동시에 진행되고 있었다. 공장과 공장 사이의 골목으로 한껏 치장한 세련된 젊은 이들이 우르르 몰려다니는 모습은 신선했다. 좋은 것들은 모두 서울에 있어서 서울을 떠나기 싫다고 말하던 젊은이들이 떠올랐다. 한때에는 서울에 있는 지인들을 꼬드기기 위해 열심히 떠들던 시기가 있었다. 영월로 와라! 나와 함께 목가적인 삶을 살자! 하며 말이다. 과열된 경쟁과 등 떠밀리는 조급함에 버둥거리지 말고, 우리 함께 시골에서 조그맣게 둥글게 살아보자며 말하고 다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아무도 호응을 해주지 않았고, 나 역시 언젠가 늦은 밤에 맥도날드 햄버거가 너무 먹고 싶어서 편도 40분 거리를 운전해 가던 날에는 산에 들어온 걸 조금 후회하기도 했다.

아무튼 그렇게 4박 5일의 서울 일정을 모두 마치고 다시 산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분명 떠나는 날까지 초록색이던 풍경이 돌아오는 날에는 알록달록 색이 입혀져 있었다. 대충 짐을 풀자마자 마당에 세워둔 리클라이너에 몸을 뉘었다. 서울 거리를 채우고 있던 젊은이들과, 앞산을 채우고 있는 각양각색의 나무들이 겹쳐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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