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양시 인서리에 위치한

우달홍 정려비와 세수재

조선시대 효자로 잘 알려진

우달홍의 고귀한 덕목과 정신을 기리는

유적지입니다.

광양시의 대표적 향토문화유산으로

2007년 7월 4일, 광양시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된 곳으로

지역 문화의 정신적 지주 역할을

하고 있는 곳입니다.

광양시 광양읍 인서리 151번 검색후 길을 찾으면

알록달록한 예쁜 초등학교가 보이고

학교 옆 공영주차장에 편하게 주차하시면 됩니다.

마을 입구를 지키고 있는

수령 100년 넘은 노거수가 있어

더욱 찾기 쉽습니다.

마을 지킴이 역할을 하는 이 노거수는

1982년 100년의 수령을 기록하고 있어

2024년 현재 약 140살의 장수를 누린 나무로

품종은 느티나무이며

나무 둘레에 금줄이 둘러져있어

당산나무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마을 지킴이 보호수를 돌아 골목길을 들어서면

근래 정비한 느낌의 말끔한 흙담장이 길게 늘어서

지나가는 사람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듭니다.

기와지붕과 흙담장 그리고 파란 하늘의 조합이

동화 속 그림처럼 아름답게 느껴졌습니다.

주변 가볼만한 곳으로는

광양시 광양읍 인서리 옛골목을 복합문화공간으로 '인서리 공원'이 MZ세대 핫플레이스

떠오르고 있습니다.

14채의 한옥을 리모델링해

한옥 숙소, 북카페, 예술문화 전시장이 한 곳에 집중되어 있으니 참고하시어

방문해 보는 것 추천드립니다.

세수재로 가는 흙담장 길이 너무 예뻐

정신을 팔린 순간,

담장 안쪽의 본채가 살짝 모습을 드러냅니다.

전통 한옥의 모습을 담고 있는 세수재와 흙담길 대비 반대편에 위치한 주거지는 대비를 이루어

전통과 현대가 공존하는 공간이

시간여행 하는 느낌을 줍니다.

흙담길 끝 쪽을 돌아보면

넓은 공간이 펼쳐져 이곳에 주차를 해도

무방할 듯했어요.

뜻 깊은 향토문화유산이 위치한 곳이라

주차장까지 배려한 느낌이었는데

특이한 것은 세수재 옆에 일반 주택이 나란히

붙어 있었네요.

알고보니 세수재를 관리하는 곳으로

관리인이 거주하는 집인가 봅니다.

학교와 담장 하나 차이로

맞닿아있는 세수재 주차 공간입니다.

'광양 인서리 우달홍 정려비와 세수재'

쓰여있는 글귀가 쓰인

광양시 향토문화유산 제 1호가 선명한 표지판이

보였어요.

원도심 속에 문화유산이 함께한다는 것은

축복이고 영광이라는 사실 동감하실까요?

광양 인서리 우달홍 정려비와 세수재

조선시대 효자 우달홍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려비

효심을 후세에 전하기위한 상징적 유적이며

세수재는 단양 우씨 하정공파 광양 종중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주의할 점은 항상 세수재가 오픈되어 있는

상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차장 입구쪽 벽에 붙어있는 전화번호로

연락을 해서

관리인이 문을 열어주셔야 들어갈 수 있는데

제가 간 날은 불행하게도 연락이 닿지 않아

담장 너머 세수재의 외관만 볼 수 있어

너무 아쉬웠네요.

우달홍 정려비를 보기 위해

'효각'이라 쓰인 솟을삼문을 통과해야 합니다.

솟을삼문이란?

고설삼문(高設三門)이라고도 하며

맞배지붕으로 가운데 문의 지붕을

좌우대문보다 한 단 높게 세운 대문으로

서원이나 향교 그리고 지체 높은 가문의

출입문 형태로 쓰였습니다.

솟을대문 밑에서 위를 올려다 봤을때

이 집이 언제 상량됐는지

한자로 표기가 되어있었는데

'서기 1994년 5월 5일 오시'에

기둥이 세워진 것을 알 수 있었어요.

한옥의 아름다움 속 현대적 느낌이 있었던 것은

낡았던 세수재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리모델링 한 것으로 보이었나 봅니다.

세수재 대문 앞에는 계절을 대표하는 꽃이

아기자기하게 피어있었고

흙담장 너머로는 초등학교가 붙어 있어

나라의 미래를 책임질 아이들이

이곳의 좋은 기운을 받아

바른 인성으로 건강히 자랄 수 있는

살아있는 체험학습장소로 이용될 듯싶었습니다.

솟을삼문을 지나 집 안쪽으로 들어가니

가운데 위치한 집 한 채에 '세수재'라는

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대문에서 본채까지 통행로가 시원하게 펼쳐지고

양쪽에는 정원이 아름답게 가꾸어져

부모님께 효를 다하고 가신 우달홍의 정성이

간접적으로 느껴졌습니다.

세수재 입구를 기준으로

왼편에는 석류나무에 빨간 열매가 탐스럽게 열려

자손번창의 염원하는 선조님들의

바람이 전해졌고,

초등학교와 맞닿아은 오른편 담장에는

2개의 비석이 있었습니다.

우달홍조선 말기 인물로 지극한 효행으로

널리 존경받은 인물이었습니다.

당시 효는 사회에서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져,

효를 몸소 실천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존경과 명예가 주어졌습니다.

우달홍은 부모님을 극진히 섬겨

변을 맛보아 부모님의 병을 증험하고 위중해지자

단지주혈

(斷指注血, 손가락을 베어 피를 흘려

넣어 드림)하였으며

상(喪)을 당하여서는

정성껏 장례(葬禮)를 치르고

3년 동안 여막(廬幕)에서 시묘살이를 하다

세상을 떠나 이것을 기념하기위해

고종 32년(1895년)에 정려(旌閭)가

세워졌다 합니다.

단양우씨의 재실(齋室)인 세수재는

고종 33년(1896)에 건립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세수재는 한옥건축물로

정면 4칸 측면 2칸의 팔작지붕,

좌측으로 온돌방 2개가 있으며

우측으로 마루 2칸의 구성으로 지어졌습니다.

세수재에 고종 3년 당시

예조(禮曹)에서 우달홍의 효행을 기록하여

정려(旌閭)를 세울 것을

왕(高宗)에게 품의한 예조입안서(禮曹立案書),

우달홍 교지(敎旨),

우달홍 정려기(旌閭記) 세주재기와

그의 효행을 기리는 여표 50여개가

게시 ·보존되어 있습니다.

정려비는 원래 충신, 효자, 열녀 등

사회에서 존경받을 만한 인물들에게

그들의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우는 기념비로,

우달홍 정려비는 고종 32년(1895년) 그의 효행을

칭찬하고 기억하기 위해 건립된 것입니다.

세수재 본채 뒤편에 위치한

정려비는 직접 볼 수 없는 아쉬움을 남긴 채

발길을 돌려야했습니다.

우달홍 정려비와 세수재

광양시 향토문화유산 제1호로 지정된 것은

단순히 역사적 유물 보호를 넘어

그 속에 담긴 효와 전통적 가치를 현대에

널리 알리기 위한 중요한 결정이었습니다.

점점 희미해가는 효의 정신을 기억하며

우리 조상들이

후손들에게 전하려 했던

정신을 기억하고 되새겨보는

향토문화유산 탐방기였습니다.


효의 의미를 찾아가는 우달홍 정려비와 세수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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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진 광양시 블로그 기자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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