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 혜봉원

숨겨진 보물 목조석가여래삼존상을 찾아서

지난 7월 25일 국립 익산 박물관 강당에서 <익산의 불교문화>를 주제로 학술대회가 있었다.

불교문화 미술 관련 학술대회는 처음이다. 전문가들이 참여하는 유익한 학술대회에 참여할 수 있어서 무척 반가웠다.

발표자의 발표를 듣고 있는데 도반이 살짝 물어왔다.

혜봉원이 익산에 있는가? 그러고 보니 처음 듣는 사찰이었다. 대충 인터넷에서 검색해 보니 모현동에 있단다.

발표 주제인 목조석가여래삼존 상도 숨겨놓은 보물이지만 혜봉원도 뭔가 꼭꼭 숨겨놓은 보물 같다는 생각이 들어 취재해 보기로 작정했다.

내비게이션에게 혜봉원을 물어보면 '모현동 1가 719-1'로 안내한다.

여기로 가면 뒷담만 살짝 보여 처음 찾는 이는 다소 곤란을 겪는다. 동네 사람에게 물어보고 나서야 겨우 찾았다.

"어디서 오셨소? 익산 사람이 혜봉원을 몰라? 따라 오쇼."

두 사람이 함께 걸을 수 있는 오래된 모현동 골목길을 따라 한 바퀴 돌아야 혜봉원의 정문 앞에 닿는다.

혜봉원을 쉽게 찾아가기 위해서는 목적지를 '군익로 11길 29-11'로 지정해 주면 편리하다.

그러면 정문으로 안내한다.

단청도 없어 언 듯 봐선 사찰이라기보다는 고택 같은 느낌이 드는

혜봉원은 조선 인조 때의 승려 연화당(蓮花堂)을 추모하기 위하여 1894년 제자들이 건립하였다.

대한불교 화엄종 사찰로 창건 당시 이름은 삼곤사(三坤寺)였다. 이후, 폐사 지경에 이른 절을 금산사의 초대 주지였던

혜봉(慧峰) 하규호(河圭鎬)가 1955년에 인수하여 중창하였다.

당시 자신의 법명을 따서 해봉 정사(慧峰精舍)라고 하였다가, 1년 뒤인 1956년 11월 5일에 지금의 혜봉원(慧峰院)으로 개칭하였다.

현재는 주지 초지가 역임하고 있다.

(출처/ 익산의 불교문화 자료집 손희진 논문'익산 혜봉원 목조석가여래 삼존상과 복장전적의 불교사적 의미'에서 발췌)

▶혜봉원 주불전인 불이정사(不二精舍)에는 목조석가여래삼존 상이 모셔져 있다.

'精舍'가 훨씬 어울리는 절집이다. 곳곳이 정돈되지 않아 폐사 같은 느낌도 있다만 안뜰만큼은 주지 스님의 모습을 닮아 정갈했다.

"이 앞마당 잔디는 내가 일일이 손으로 뽑아서 다듬었어요."

건강이 좋지 않은 스님을 뵌 뒤에야 절집의 사정을 알 수 있었다.

빨리 쾌차하셔서 혜봉원의 옛 기운을 찾았으면 좋겠다.

▶혜봉원 주불인 삼존상은 석가여래 좌상을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두 보살 좌상이 자리 잡고 있다. 우측 보살 좌상은 석가여래 좌상과 보살 좌상을 가져온 뒤 균형을 맞추기 위해 현대에 새롭게 봉안된 불상이라고 한다. 화려한 광배보다 정감이 가서 스님께 여쭸더니 광배가 없어 특별히 제작한 것이란다.

다른 절에선 흔히 볼 수 없는 광배라 멋스럽고 좋았는데 이 또한 기자의 무지가 빚어낸 안목일는지 몰라 염려스럽다.

기자는 불자가 아니라서 사찰의 예절을 잘 알지 못한다.

촬영 허락을 받고 법당에 들어서 합장을 하고 사진을 찍었는데 스님이 갑자기 그만 찍으라고 제재를 하셨다.

기자가 예를 지키지 않아 불편하니 그만하라는 게 스님의 말씀이다.

몸이 불편하신 뒤로는 특별히 공부하는 사람들에게나 문을 열어줬는데 기자에게 적잖이 서운하신 눈치다.

예를 갖추지 않으려 한 의도는 결코 없었는데 너무 당황스러워 예법이 틀렸으면 가르쳐 달라 머리를 조아렸는데

배워서 다시 오라 혼을 내시니 어찌할 바를 몰라 민망했다.

노여움 끝에 불상마다 절을 올려야 하는 거라 넌지시 가르쳐 주셨다.

기자가 그만 결례를 하고 말았다.

기자에게 특별히 배려해서 문까지 열어주셨는데……. 돌아오는 길에도 얼마나 죄송했던지…….

"스님 죄송합니다."

이젠 어디를 가든 형식과 절차에 맞는 예법을 배워 두 번 다시 결례하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어찌 보면 당연히 갖춰야 할 예절을 갖추지 못한 이 사람의 잘못이 크다. 그래서 혼나도 싸다.

보통 답사여행을 다니다 보면 불상의 시대적 특징이나 복식을 얘기하는 정도가 다였는데

기자는 학술대회에서 '조각승의 활동 동향'에 대해 듣게 되었다.

사실 답사 기행을 많이 다녔지만 불상을 조각한 조각승에 대한 생각은 한 번도 해보지 못했다.

조각승에 대한 얘기를 들으며 혜봉원 목조석가여래삼존상에 대한 호기심이 더해졌다.

발제자 덕택에 조각승의 활동 동향까지 귀동냥할 수 있는 학술대회라 한 뼘 성장한 느낌이 들어 흐뭇했다.

혜봉원 내 사적기 등의 부재로 불 보살상의 정확한 이안 시기를 파악할 수는 없으나, 일제강점기 전라북도 사찰과 사찰에 소장된 불교 문화재에 대한 현황을 보여주는 문서인 <전라북도 사찰고>에서 혜봉원 전신인 '삼곤사'나 '혜봉원'의 명칭은 확인되지 않는다. 따라서 주지 하규호가 혜봉원을 중창한 후, 부안 도솔암에서 이안된 상을 안치했다는 것이 더 유력해 보인다.

앞서 발견된 조성 발원문 연화질(緣化秩)에 의하면 증명(證明)에 신관(信寬), 지전(持殿)에 신기(信起), 화원(畵圓)에 초오(楚悟), 신옥(信玉) 등이 참여한 사실이 확인된다. (*증명/ 불상 및 불화 제작의 총책임을 밑은 승려, 지전/ 불전 청소와 향을 공양하는 소임을 맡은 이)

발원문에 첫 번째로 등장하는 조각승 초오는 1700년 수화승 경호와 전남 곡성 도림사 응진당 목조석가불 좌상을 제작하였다. 신옥 역시 1689년 북장사 명부전의 목조지장보살좌상과 목조시왕상을 제작할 때 보조 화승으로 활동하였으며, 전주 서고사 나한전 불상 일괄 조성(1695)에 7번째 조각승으로 참여하였다.

혜봉원 삼존상을 조각하였던 초오, 신옥 모두 전라도에 집중해 활동을 펼쳤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익산의 불교문화 자료집 손희진 논문'익산 혜봉원 목조석가여래 삼존상과 복장전적의 불교사적 의미'에서 발췌

사적에 사람의 이야기가 함께 있으면 훨씬 아름답다.

기자가 세계적으로 아름다운 석굴암 석불에 아사달 이야기처럼 슬픈 이야기라도 사람의 이야기가 있었더라면 ……

아쉬움을 가져보게 된 것은 혜봉원 불상 조각승 초오와 신옥을 만나면서다. 그래서 혜봉원 불상이 그리 보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중앙의 목조석가여래 좌상은 높이가 76cm인 중형 불상으로, 상체를 곧게 세우고 얼굴을 앞으로 약간 내밀고 있다.

머리에는 경계가 불분명한 육계(肉髻)와 뾰족한 나발(螺髮)이 표현되어 있다.

머리 중앙에 반원형의 중간계주(中間髻珠)와 정수리에 원통형의 정상계주(頂上髻珠)가 높이 솟아 있다.

타원형의 얼굴에 가늘게 뜬 눈은 눈꼬리가 길고 일자형의 코와 입술 양측을 눌러 미소를 지었다.

목에는 삼도(三道)가 새겨져 있으나, 개금이 두꺼워 잘 보이지 않는다.

또한 하반신의 우축 대의 자락이 매끄럽지 못하고 무릎이 직각으로 떨지는 것으로 보아 개금시 부분적으로 보수를 하였음이 추정된다.

오른쪽 어깨에 걸친 대의는 목에서 가슴까지 U자형으로 늘어져 있고,

그 옆으로 한 가닥의 옷 주름이 팔꿈치와 배를 지나 왼쪽 어깨로 넘어간다.

승기지(僧祇支) 상단은 5개의 앙련(仰蓮) 형상의 주름이 접혀져 표현되었고, 하반신에 늘어진 대의 자락은 배에서 좌우로 몇 가닥 펼쳐졌다.

불상 뒷면에는 목둘레에 대의 끝단을 두르고, 왼쪽 어깨에 앞에서 넘어온 대의 자락이 길게 늘어져 있다.

왼쪽 무릎 위에는 짧게 소맷자락이 늘어져 있다. 무릎 위에 오른손은 항마촉지인을,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댄 수인을 취하고 있다.

출처/ 익산의 불교문화 자료집 손희진 논문'익산 혜봉원 목조석가여래 삼존상과 복장전적의 불교사적 의미'에서 발췌

▶ 우측의 목조보살 좌상은 높이가 75cm, 무릎 폭은 49cm이며 중형으로 높고 커다란 보관(寶冠)에 연화문과 화염문 등이 장식되었다.

목조보살 좌상은 전체적으로 18세기 진열 작품의 보살상의 신체 비율과 착의법을 하고 있어 본존과의 차이점이 드러난다.

보살상의 얼굴은 정사각형에 가까우며 양감이 있고, 눈은 가늘게 뜬 채 살짝 미소를 머금었다.

불신의 측면은 두터우며, 중첩된 세 개의 원을 형성한 보발이 양어깨 위에 표현되었다.

또한 등 뒤로 늘어진 대의 자락은 두 번 접혀 넓게 형성되었다. 두 사리 사이에 늘어지는

하반신의 옷자락은 부드러운 곡선으로 부채꼴을 형성하며 좌우대칭으로 퍼져나간다.

오른손은 어깨 높이까지 치켜들고 왼손은 엄지와 중지를 맞대고 무릎 위에 올렸다.

출처/ 익산의 불교문화 자료집 손희진 논문'익산 혜봉원 목조석가여래 삼존상과 복장전적의 불교사적 의미'에서 발췌

▶전각의 외부에 있는 모현동 부도/ 모현동 부도는 높이 253cm로 팔각기둥 모양의 중대석을 갖춘 특이한 양식이다.

원래 군산시 서수면 보천사(寶泉寺)에 있던 것을 1960년에 옮겨온 것으로 '보천사 부도'라고도 불린다.

혜봉원에는 이처럼 다수의 유물들이 혼재되어 있다.

보천사 부도는 일제강점기 1924년, 보천사의 불상 칠백여 개를 일본인 고교다에게 이천 찰 백원에 판매하였던

매불 사건과 당시 금산사 주지였던 곽법경의 부정 사건으로 인해 부도를 포함한

보천사의 많은 문화재들은 이곳저곳 교란되다 혜봉원으로 옮겨진 것으로 파악된다.

혜봉원은 도심 속 고즈넉한 사찰이다.

주지스님의 병환이 하루빨리 완쾌되어 중단한 불사가 이루어져 스님을 닮은 정갈한 사찰로 정비되어 시민들의 안식처가 되길 바란다.

기자도 손 모아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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