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6일 전
가지산 눈 천사와 부른 애심가(哀心歌)
춘삼월 춘분인데 때아닌 눈 천사가 가지산에서 데이트 한번 하자는 기별이 왔습니다.
그 순간 살갗을 파고드는 매운 꽃샘바람처럼 속절없이 내 마음을 흔들어 놓습니다.
하여 가지산의 설경, 영남 알프스의 설경을 널리 세상에 알리기 위해 지난 풍경이지만 포스팅합니다.
창밖을 바라보니 봉우리마다 흰 모자를 쓰고 있는 오묘한 설경이 조용한 가슴을 부채질했습니다.
무던하던 마음이 강렬한 설경의 유혹에 휩싸여 주체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녀는 하고많은 남성 중 하필이면 기혼인 내게 호감을 보였을까요?
아직도 내게 호감을 끌만 한 정열이 남아 있나 봅니다.
오래전에 자취를 감출 줄만 알았던 연애 세포가 바득바득 요동칩니다.
봄바람이 겨드랑이에 스며들며 여린 감정을 흔들기 시작합니다.
인생은 흔들리며 산다고 주장하지만, 지금처럼 명치까지 흔들어 놓는 일은 드물었습니다.
따지고 보면 봄바람은 겨우내 잠든 뭇 삼라만상을 흔들어 깨우는데 그럴 만도 합니다.
망설임도 잠시, 연애 본능에 넘어간 나는 영남알프스 대장 산인 가지산으로 향했습니다.
황홀한 미모를 지닌 천사가 데이트하자는데 거절할 위인이 이 세상 어디 있겠습니까.
가지산은 신라 흥덕왕 때 전남 보림사에 수도하던 가지선사가 석남사를 지었다고 해서 부른 산으로 가지는 까치의 옛말 ‘가치’가 변한 것이라 했습니다.
석남사를 지나 석남터널이 끝나는 계곡에서 출발해 설경과 인생을 아우르며 된비알 설산을 오릅니다.
마치 지금까지 걸어온 구부정하게 굴곡진 인생의 역로가 따로 없습니다.
초입부터 온통 눈으로 덮어 황홀한 설경과 마주합니다.
눈이 발에 밟히는 소리가 소꿉놀이 시절에 들었던 소리로 변모해 동요처럼 들립니다.
산 능선으로 올라갈수록 마법같이 신비한 설경이 묘미를 더한다. 포근하고 감동적이라 신비합니다.
그칠 줄 모르는 연애 유혹의 세례에 인내의 임계점이 느껴집니다.
정신을 가다듬고 가지산 정상에서 기다리고 있는 천사에게 향하는 일편단심을 다집니다.
유순한 눈 처녀가 바짓가랑이를 당기며 유혹해 몇 번이고 넘어갈 뻔했습니다.
질투를 뿌리치기 위해 색안경을 쓰고 모자까지 눌러썼습니다.
눈옷을 입은 앙상한 나무들이 부러운 눈치로 바라보며 가지를 흔듭니다.
절세미인보다 고운 눈 처녀를 외면하는 내 마음을 누가 알아주리오.
바람난 자유인이 되어 미인의 품 안에 안기고 싶지만 참았습니다.
그럴수록 눈 처녀는 연애 세포를 가득 품고 유혹합니다.
봄바람이 휑하니 훼방이 놓고, 따가운 햇볕이 질투해 눈을 공격합니다.
눈부신 가시광선을 반사해 내 얼굴을 공략합니다.
쓰러지지 않고 버티다 생을 다한 눈은 녹으면서 눈물을 흘리며 구애합니다.
걸음이 부실한 젊은 총각이 허우적거리며 산을 오르는데도 웬일인지 거들떠보지도 않습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눈 처녀는 젊다고, 마음에 든다고 아무나 구애하지 않나 봅니다.
까마귀가 질투해 구슬프게 울음소리를 냅니다.
한 번쯤 눈길을 줄법한데도 눈을 꼭 감고 냉정하게 외면했습니다.
내 마음을 전하기 위해 눈 위에 흔적을 남겼습니다. 천사가 해독할 수 있는 내 이름의 이니셜입니다.
먹이를 찾기 위해 시위하는 멧돼지가 있어 덜컹 겁이 났습니다.
멧돼지의 구애를 눈 처녀의 일편단심에 감동하며 인생의 지혜를 얻었습니다.
구애하다 거절당한 눈 처녀는 차가운 눈보라를 흩뿌리며 떼씁니다.
몸 안으로 들어온 눈에 살갗이 욱신거립니다.
눈을 맞으며 걸음을 재촉하는데 아이젠 밑에 눈이 달라붙어 미끄러지고 위태합니다.
죄 없는 돌과 나무 둥치만 엉뚱하게 아이젠에 붙은 눈덩이를 떨쳐내기 위해 내 발에 차여 비명을 지릅니다.
잔죽 더미에서 ‘뽀드득뽀드득’하며 눈 처녀가 우는소리가 애간장을 놀립니다.
그러고 보니 눈 처녀는 나와는 초면이 아닌가 봅니다.
잊고 있던 유년의 향수가 겹쳤습니다.
첫 봉우리인 중봉에 올라 바라본 세상은 그야말로 낙원이었습니다.
아름다운 천혜의 원시 자연이 창궐했던 두메산골 향촌은 내 유년의 낙원이었습니다.
겨울이 되면 빼놓지 않고 하늘에서 내려와 유년을 함께 보냈던 그 눈이 이곳 가지산에서 재회했습니다.
결코, 잊을 수 없는 동화 스토리텔링을 고스란히 간직한 채 지금 만나 재회한 것입니다.
잠시 기억의 저편에 있던 향촌이 구름을 타고 그리움처럼 밀려옵니다.
고향을 떠나와서 바삐 사느라 그 눈을 잊지 못해 그리움에 뒤척였습니다.
고향을 버젓이 두고 실향민으로 살아간 한 남자와 그 유년의 눈이 처녀가 되어 지금 만나고 있습니다.
정결하고도 청순한 눈 처녀 품속에 왈칵 안기고 싶은 충동을 꿀꺽 씹으며 정상으로 향합니다.
울산이 내려다보이는 1241m 가지산 정상에 올랐습니다.
사방에 빙 둘러선 영남알프스 산봉우리들이 빚어낸 동양화 같은 설경.
하느님이 속세에 내려보낸 신령한 선물입니다.
앙상한 나뭇가지에 쌓인 상고대의 황홀은 산을 오른 사람만 누릴 수 있는 극치입니다.
만나자고 기별을 보낸 천사가 하얀 눈옷을 입고 곱게 꾸린 화단에서 내게 절을 합니다.
천사의 환대에 너무나 감복해서 가슴이 저릿해지고, 쉽게 넘겨볼 수 없는 팔색조입니다.
형언할 수 없는 그녀와의 만남이 허허롭고 시린 마음을 말끔히 씻어냅니다.
그 첫 상봉의 끝자락은 두고두고 잊지 못할 격한 감동이었습니다.
청솔가지 아래에서 밀애를 나누었고, 주막에 마주하고 앉아 막걸리 몇 순배를 나누며 회포를 풀었습니다.
두 손을 손잡고 천상 같은 정상을 유랑하며 환희의 연가를 몇 번이고 합창했습니다.
얼마나 깊이 나눈 밀애인가요.
천사는 바람에 흩날리며 나이도 잊고 아이처럼 널뛰기하는 내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솔개가 감동해 창공에 그림 그리며 날아오릅니다.
까마귀 가객이 중모리장단 축가가 웅혼합니다.
허공으로 나폴 거리는 그녀의 현란한 춤사위가 유장합니다.
어느새 아쉬움을 그녀를 달래 줄 애심가를 열창했습니다.
햇볕의 등쌀에 버티지 못하고 천사는 스스로 몸을 사르며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얼마나 이별이 싫었으면 눈물까지 흘릴까요?
나는 애써 명정(酩酊)을 보이며 천사를 달래봅니다.
하산 길에 만난 눈 처녀도 뒹굴며 구르며 하염없는 눈물을 흘립니다.
정상에 있는 주막에 들려서 차 한 잔으로 달래며 겨우 이별을 했습니다. 내년에 다시 만나 길 약조하면서 말입니다.
눈 처녀는 그제야 순정 같은 숭고한 눈물을 거두고 환한 미소를 지었습니다.
혹여 여러분 중에서 절세미인을 만나기 원하면 꼭 영남알프스 대장 격인 가지산에 올라 보시기 바랍니다.
※ 해당 내용은 '울산광역시 블로그 기자단'의 원고로 울산광역시청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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