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숨결이 가득한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 799-2


언제 끝날지 모를 늦 여름 더위가 이어지고 있는 9월, 역사의 숨결이 가득한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으로 향했다.

김정희... 그의 이름을 들으면 시원시원한 필체의 '세한도', 아니면 '추사체'라 불리는 독특한 서체 등이 떠오른다.

오늘 나는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가 남긴 유산을 직접 눈으로 보고 가슴으로 느껴보려 한다.

역사와 문화의 향기 가득한 충남 예산의 추사 고택과 기념관, 화순옹주, 백송에 대한 이야기를 지금부터 시작한다.

예산을 출발해 한적한 시골길을 달리다 조용한 마을에 들어서니 그곳에 추사 고택이 있었다.

이곳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고요한 느낌을 준다.

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사랑채였다.

남향으로 자리 잡은 ㄱ자형 건물은 마치 오랜 시간 동안 한 자리를 지키며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는 듯했다.

온돌방과 대청, 그리고 널찍한 마루가 조화를 이루며, 한적한 한옥의 일상을 그대로 드러냈다.

이곳은 과거 주인이 손님을 맞이하고 시와 그림을 즐겼다는 장소였다고 한다.

따스한 햇살이 비치는 마루에 서니, 그 시절의 문인들이 차를 마시며 즐기던 풍류가 그려졌다.

지금도 여전히 그들의 웃음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였다.

사랑채를 뒤로 하고 발걸음을 옮긴 곳은 안채였다.

안채는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어 마치 포근한 품에 안긴 듯한 느낌을 주었다.

중앙에 위치한 안마당은 사방이 막혀 있어 아늑한 분위기를 더하고, 이곳에서의 시간은 마치 온 세상과 단절된 듯 느껴졌다.

특히, 안채의 대청이 동쪽을 향해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다.

대부분의 한옥이 남향을 중시하는 것과 달리 이곳은 특별한 구조로 지어져 독특한 매력을 발산하고 있었다.

안채 내부에 들어서면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선생이 직접 쓴 글씨들이다.

그의 손길이 남아 있는 작품들은 마치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느낌을 주며, 그가 남긴 예술적 감각을 고스란히 엿볼 수 있었다.

고풍스러운 기와 지붕 아래에서 느껴지는 선생의 예술적 유산은 이곳의 특별함을 더욱 빛나게 했다.

추사 고택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한 영당으로 올라가면, 이곳은 김정희 선생의 아들인 김상우가 아버지를 기리며 세운 공간임을 알 수 있다.

영당에는 선생의 평생 친구였던 권돈인이 직접 쓴 ‘추사영실’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어 더욱 의미를 더했다.

이곳에 서서 집을 바라보면, 선생이 걸었던 길과 그의 발자취를 더 가까이에서 느낄 수 있다.

고택 옆에는 또 다른 흥미로운 이야기를 담고 있는 우물이 있었다.

이 우물은 선생이 태어나던 순간 다시 샘솟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물이 솟아 오른 이 신비로운 순간은 그저 이야기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그 속에는 그의 탄생과 삶에 대한 사람들의 존경심과 경외심이 담겨 있는 듯했다.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과 100여 미터 떨어진 곳에 묘가 있다.

묘는 단정하고도 차분한 분위기가 눈에 들어온다.

2단으로 구성되어 있고, 전통적인 한국 묘지의 정돈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앞쪽에는 상석이 놓여 있고, 오른쪽에는 선생의 업적을 기리는 비석이 서 있다.

주변을 둘러보면 선생이 지닌 고결한 인품과 그의 예술적 감각이 그대로 전해지는 듯하다.

묘를 중심으로 고요한 자연이 감싸고 있어, 마치 이곳이 선생의 영혼을 보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곳에 서니 고택에서 느꼈던 역사적 울림이 다시금 생생하게 다가왔다.

고택과 묘를 돌아본 후 추사 기념관으로 향한다.

이곳은 김정희 선생의 창조 정신과 위대한 업적을 기리기 위해 건립된 곳으로, 그의 작품을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전시하고 있다.

입구에 있는 선생의 동상이 놓여있다.

기념관 내부로 들어가면 선생의 생애와 관련된 다양한 유물과 작품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그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것은 그의 대표작 세한도이다.

이 작품을 직접 눈으로 감상하는 순간, 그가 표현한 겨울의 차가움 속에서도 묘하게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묘한 감동이 전해진다.

뿐만 아니라, 그의 독창적인 서체인 추사체로 쓰인 여러 서예 작품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어, 서예를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더욱 큰 감동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기념관은 김정희 선생의 서예 작품뿐만 아니라, 그의 학문적 업적도 한눈에 볼 수 있는 다양한 전시물을 준비해 놓고 있다.

실사구시를 바탕으로 한 그의 학문적 기여와 청나라의 고증학에서 영향을 받은 학문적 발자취를 따라가다 보면, 그는 단순한 서예가를 넘어선 조선 후기 실학의 거장으로서의 면모를 여실히 느낄 수 있다.

추사 고택과 기념관을 둘러본 후, 화순옹주에 대해 알아보기로 했다.

화순옹주는 김정희의 증조모로, 영조의 셋째 딸이다.

고택 아래쪽에는 화순옹주의 묘가 있다.

1720년에 태어난 화순옹주의 본명은 향이(香怡)였다.

그녀는 조선 영조의 셋째 딸로 태어나, 많은 사랑을 받으며 자랐다.

영조는 그녀를 아끼고 보호하려는 마음이 컸고, 그 사랑 속에서 1725년 그녀는 화순옹주로 봉해졌다.

정빈 이씨의 딸인 화순옹주는 검소하고 정숙한 성품으로도 유명했으며, 그 성품 덕분에 많은 이들의 존경을 받았다.

1732년, 옹주는 월성위 김한신과 결혼한다.

두 사람의 사랑은 깊었지만, 그녀의 남편이 세상을 떠난 후 화순옹주는 그 슬픔을 이기지 못했다.

깊은 애정 속에 남편의 부재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그녀는 슬픔에 잠겨 곡기를 끊었다고 한다.

결국, 1758년 1월 17일, 화순옹주는 남편의 뒤를 따르듯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녀의 사망 후, 조선 왕실은 화순옹주의 정절과 헌신을 기리기 위해 그녀를 열녀로 봉하였다.

특히, 조선의 정조는 그녀의 의로운 마음을 기리며 열녀정문을 세우기로 결정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곳은 고택 근처에 있는 백송이었다.

1809년, 당시 25세였던 김정희는 아버지 김노경을 따라 청나라 연경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때, 그는 학문과 예술적 견문을 넓히기 위한 목적뿐만 아니라, 나름의 특별한 기념을 남기고자 했다.

그래서 백송 씨앗을 붓대 속에 숨겨 들여왔다.

그가 고국으로 돌아온 후, 이 귀한 씨앗을 어디에 심을지 고민하던 김정희는 고조부 김흥경의 묘 앞을 선택했다.

그렇게 한 알의 작은 씨앗이 시간이 흘러 지금의 웅장한 백송으로 성장하게 되었다.

충남 예산 추사 고택에서 김정희 선생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그의 삶과 예술, 그리고 그를 둘러싼 역사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었다.

고택에서는 선생의 일상을, 기념관에서는 그의 예술혼을, 화순옹주의 묘에서는 조선시대 왕실의 이야기를, 그리고 백송에서는 긴 세월의 흐름을 느낄 수 있었다.

조선 시대의 대문호가 자신의 삶을 갈고닦았던 공간이자, 그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살아있는 역사의 현장이다.

추사 김정희 선생 고택

충남 예산군 신암면 추사고택로 261

○ 관람시간: 매일 09:00~18:00

○ 문의전화 : 041-339-8248

○ 주차비, 관람료: 무료

※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호우님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충청남도 #충남 #충남도청 #충남도민리포터 #국내여행 #충남여행 #충남가볼만한곳




{"title":"조선의 서예가, 추사 김정희의 고택을 찾아서","source":"https://blog.naver.com/sinmunman/223588079361","blogName":"충청남도","blogId":"sinmunman","domainIdOrBlogId":"sinmunman","nicknameOrBlogId":"충청남도","logNo":223588079361,"smartEditorVersion":4,"outsideDisplay":true,"cafeDisplay":true,"lineDisplay":true,"blogDisplay":true,"meDisplay":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