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보훈의 달 유월입니다.

반드시 기억해야 하는 가슴 아픈 역사의 순간을

어쩌다 한번씩 소리치는 익숙한 구호처럼

듣고 마는 것 아닌가 하는 반성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영천시 신녕면은 지세가 험준하여 전략적 요충지로

임진왜란과 구한말 의병의 본거지였으며

한국전쟁 때는 낙동강방어선의 한축으로 치열한 격전지였습니다.

신녕면 소재지를 한눈에 조망 할 수 있는 성환산은 성을 둘러싼 산이란 의미로

옛 신녕고을을 둘러싼 성의 일부로 자연적인 성이었다고 합니다.

이곳 성환산에는 신녕 전투 전공자와 전사자들을 추모하기 위해

1958년 신녕지구 전승비를 건립하였고

이후 신녕지역 출신의 애국지사를 추모하는 공원을 조성하였습니다.

신녕전투는 1950년 8월 30일부터 9월 15일까지

영천 북방의 신녕지역을 방어하고 있던 국군 제6사단이

영천지역으로 진출하려는 북한군 제8사단의 공격을 저지시킨 방어 전투입니다.

이 전투로 북한군 제8사단은 신녕을 거쳐 영천을 우회 공격하려던 기도가 좌절되었고,

이는 영천을 점령하기 위해 공격에 나섰던 북한군 제15사단이 영천 지역에서 고립된 채

각개격파 당하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반면에 국군 제6사단은 대구 외곽선인 신녕지구의 방어에 성공함으로써

대구를 점령하려던 적의 기도를 좌절시키는 한편 낙동강 방어선에서

국군 및 유엔군의 총반격을 위한 토대를 마련하였습니다.

때이른 폭염경보에 모두가 지쳑갈 무렵 마침 반가운 비가 내렸습니다.

흙먼지가 푸석하던 길에는 제법 빗물이 모여 들고

핼쓱하던 풀잎들은 생기가 가득한 길을 신발이 젖는 줄도 모르고

잔디가 잘 정돈된 애국지사 추모공원으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권규섭 애국지사

1906년 3월 신녕에서 의병을 일으켜 활동하던 중 산남의진(山南義陣)에 참가하였으며

그후 1907년 4월 산남의진 좌영장(左營將)으로 임명되어 활동하던 중

10월 7일 영일 입암전투에서 분전하다가 정용기·이한구·손영각등과 더불어 전사하였습니다

199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권태용 애국지사

1920년 4월23일 영천시 신녕면 부산리에서 출생.

경성 혜화전문학교에 재학중인 1944년 1월 20일에 일본군 대구 24부대에 강제 징병된

600여 명의 학병은 입대한 지 10여일 후 3대대 3중대 소속의 27명만 남기고 북중국으로 떠났는데,

27명 속에 잔류하게 된 그는 김이현.문한우권혁조등과 함께 탈출을 계획하였습니다.

8월 8일에 동지 6인은 하수구를 통하여 탈출에 성공한 뒤 대구 팔공산에 입산하였으나

일군경의 추격으로 인하여 그는 신녕 뒷산에서 피체되어 3개월 동안 혹독한 고문을 당하다가

1944년 12월에 일군 임시군법회의에서 징역 4년형을 언도받고

일본육군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8·15광복으로 출옥하였습니다.

1986년 4월 26일 별세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0년 대통령표창)을 수여

김수곡 애국지사

1875년 영천시 신녕면 출생

김수곡은 반일 의병투쟁을 지속적으로 전개할 목적을 가지고

1907년 정환직의 산남의진에 들어가 경북 일대에서 활동하였는데,

정환직의 명령에 따라 동지 1백 수십 명과 함께 총과 칼을 휴대하고

1907년 10월 29일 경북 흥해군 읍내에 들어가 우편취급소를 습격하여

일본인 소장 가족을 처단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곳에 보관한 3백여 원을 군자금으로 노획하고 근처에 있는 경무분파소 및 기타 13동의 집을 방화 소각시켰으며

같은 해 11월 3일에도 그는 신령군 읍내에 들어가 군청에서 총 1백 수십 정을 탈취하고 경무분파소 및 친일 순검의 집을 소각하였고,

같은 달 4일경에는 의흥군읍내에 들어가 경무분파소에서 총 수백 정을 탈취하고 분파소 및 순검 주택 3동을 소각시켰습니다.

1909년 12월 28일에도 그는 동지들과 함께 총칼을 휴대하고

의성군 점곡면 서변동에서 군수품을 징수하였고

그는 일본인 처단, 식민기구 습격 방화, 친일파 단죄, 군자금 및 군수품 징수 등

다방면으로 의병활동을 전개하던중 피체되어

1910년 9월 20일 대구공소원에서 동지 윤흥곤.김일원등과 함께 교수형을 받아 순국하였습니다

1995년 건국훈장 독립장 추서

김준운 애국지사

1855년 안동시 임하면 출생

1919년 4얼 6일 오후 1시경 신녕면 완전동 부근 냇가에서 신영공립보통학교 생도 황정수외 수십명에게 4월 8일 신녕 장날을 기하여 독립만세시위를 거사하니 참가하도록 규합하였고, 같은날 오후 9시경에 다시 왕산동 예수교회를 방문하여 허석군으로 하여금 신도들에게 독립만세시위에 참가하도록 권유할 것을 부탁하는 등의 활동을 벌이다가 피체되어

1919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습니다

1925년 6월 23일 고문후유증으로 별세

1990년에건국훈장 애족장(1986년 대통령표창) 추서

한상택 애국지사

1909년 7월 26일 영천시 신녕면 완전리에서 출생

대구농립학교 재학중인 1928년 2월에 비밀결사 적우동맹에 가입하여

동결사의 조직연구부 위원으로 활동하던중 1828년 11월 일경에 피체되어

피1930년 3월에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1년 집행유예 4년형을 언도받았습니다.

1985년 4월 별세,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 수여

개인을 우선하는 요즈음

정의보다는 이익을 먼저 생각하는 세태에

‘기꺼이’라는 말이 주는 묵직하고 엄숙함이 울림이 됩니다.

죽음으로 자신을 던진 민초들이 지켜낸 대한민국입니다.

그분들께서 기꺼이 희생한 숭고한 정신을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신녕지구전승비.애국지사추모공원

경북 영천시 신녕면 화성리 732-2


※ 본 글은 새영천 알림이단의 기사로 영천시 공식 입장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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