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구의 마을유래 ㉑만년동
[12월 소식] #대전서구 #대전서구소식 #12월소식
정리 박희진
대전 서구의 마을 유래
만년을 살아도
양식 걱정이 없는 마을
서구의 마을 유래 ㉑만년동
둔산대로에서 대덕대교까지의 8차선 대덕대로 좌우편이 만
년동이다. 북쪽으로 갑천을 경계로 유성구 도룡동, 서쪽으
로 유성구 구상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서남쪽으로 월
평동, 남쪽으로 둔산동, 동쪽으로는 대전천을 경계로 대덕구
대화동과 접하고 있다. 1998년 1월 월평2동에서 분동된 행
정동이다.
둔산대로에서 대덕대교까지의 8차선 대덕대로 좌우편이 만년동이다. 북쪽으로 갑천을 경계로 유성구 도룡동, 서쪽으로 유성구 구상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서남쪽으로 월평동, 남쪽으로 둔산동, 동쪽으로는 대전천을 경계로 대덕구 대화동과 접하고 있다. 1998년 1월 월평2동에서 분동된 행정동이다.
만년동이라 부르게 된 것은 과거 이곳의 넓은 들판에 전답이 기름져 곡식이 큰 창고에 항상 넘쳤고, 그리하여 만년은 살아도 식량 걱정을 할 필요가 없는 농사골이라 하여 만년동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설과 지금의 갑천이 옛날에는 만년강(萬年江)이라 불렀기에 그 하류의 들판에 자리한 마을이라는 데서 유래되었다는 두 개의 설이 함께 전해진다.
옛날 이곳에는 둔산동과 갈마동(지금의 월평동을 가리키나 그때는 월평동도 갈마동에 속한 마을이었다.),삼천동 등 3개 동에 걸쳐 형성된 30여 호의 자연 마을이 있었는데, 그 마을의 이름이 만년동이었기 때문에 이 지역을 통틀어 만년동이라 불렀다. 이 지역이 모두 기름지고 넓은 들판으로 갑천의 풍부한 농업용수를 이용하여 대대로 농사를 짓던 고장이었는데 초기에는 벼농사를 주로 지었으나, 신도시의 개발 직전에는 근교 농업으로 전환하여 농촌 소득을 올렸다고 한다.
둔산지구의 신도시 개발사업은 1985년 제1지구 개발을 시작으로 1989년에는 제2지구로 확장됐는데, 이 계획에 따라 대덕대로의 좌측 옛날 만년동 마을이었던 곳을 먼저 주거지역으로 개발하고 뒤에 대로의 우측 들판을 문화예술 지구로 개발하기 시작해 오늘에 이르렀다.
주거지역으로 개발이 착수됐던 대로의 좌측은 가장 먼저 개발이 완료되어, 대단위 아파트 단지가 대덕대교 쪽으로 숲을 이루고 있으며 아파트 단지가 끝나는 만년학교길 남쪽, 만년중학실, 만년고교길, 청명길이 나 있는 지역에는 주상복합건물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다.
정부대전청사와 엑스포과학공원의 중앙 부분에 자리잡은 둔산대공원은 1991년 6월 근린공원으로 지정, 총 569,000㎡로 대전예술의 전당, 평송소년문화센터, 시립미술관, 이응노미술관 등 명실상부한 문화예술의 메카이며 한밭수목원과 어우러져 문화가 가장 잘 갖추어져 있는 곳이기도 하다.
1993년 세계 박람회 당시 남문광장 및 주차장 자리에 조성된 한밭수목원은 정부대전청사와 과학공원의 녹지축을 연계한 전국 최대의 도심 속 인공수목원으로 도심 속에서도 푸르름을 만끽하며 휴식할 수 있는 공간으로 시민들에게 사랑받으며 2005년 개원(서원) 이래 연평균 90만 여 명이 방문하고 있다.
※ 참고자료: 서구사 제2권 「서구의 문화」, 서구문화총서 「서구의 마을 유래」
위 블로그 발행글은
"대전광역시 서구청 소식지" 원고를 바탕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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