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년 전
천주교 5명 신부가 순교한 유적지 신리성지
천주교 5명 신부가
순교한 유적지 신리성지
충남 당진시 합덕읍에 위치한 신리는 삽교천 상류에 있는 마을로, 지금은 평야 한가운데 자리하고 있지만 조선시대에는 밀물때 배가 드나들었던 곳인 이곳에 신리성지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신리 마을은 1866년 마을 사람 400여 명 전체가 신자로 이루어진 교우촌으로, 나루가 있어 배를 이용하기 때문에 외부로 왕래하기가 수월했습니다.
< 신리성지 >
당진시 합덕읍 평야6로 135
전화번호 041-363-1359
충남 당진의 넓은 들판에 위치한 신리성지에는 설치 미술과 어우러진 감성 힐링 장소로 알려져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고있는 핫한 장소입니다.
신리는 천주교 탄압기 병인박해 때 조선에서 가장 큰 교우 마을로, 선교사들의 비밀 입국처이기도 했습니다. 천주교 전파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이곳은 로마시대 비밀교회인 조선의 '카타콤바'로 불립니다.
5명의 신부가 순교한 신리성지 성당 옆에는 아름다운 종탑에 종 3개가 세워져 있습니다. 신리성지 성당 미사 시간은 화요일~ 주일 오전 11시에 시작합니다.
다음에 방문때는 미사시간에 맞춰서 의미있는 미사에 참여해 보고 싶습니다.
충남 당진시 합덕읍에 속한 신리는 1784년 천주교가 전해진 곳으로, 신리에 정착해 살고 있던 밀양 손씨 집안을 중심으로 천주교 교우촌이 형성됐습니다.
인구 400여 명인 신리마을 전체가 신자인 교우촌으로 성장하여 1845년 조선교구 제5대 교구장인 다블뤼 주교가 김대건 신부와 함께 입국한 후 1866년 갈매못에서 순교하기 전까지 21년의 시간을 보낸 곳으로 우리나라 천주교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장소입니다.
다블뤼 주교관은 천주교 신자 손자선의 생가이자, 성 다블뤼 주교의의 비밀 성당이자 주교관이었습니다. 이곳에서 천주교 서적을 저술하고 한글로 번역하던 다블뤼 주교의 유허지인 작은 초가입니다.
당진 신리성지 순교미술관은 일랑 이종상 화백께서 재능 기부를 통해 3년의 작업을 거쳐 교회에 봉헌한 신리 다섯 성인의 영정화와 13점의 순교 기록화를 전시하고 있는 우리나라 유일의 순교미술관입니다.
< 순교미술관 >
입장 시간 09:00-17:00
(개관종료 30분 전까지)
점심시간 12:00-13:00
매주 월요일 휴무
< 김대건 안드레아 신부 서품식 >
1845년 8월 17일 상해 금가항 성당에서 페레올 주교의 주례하에 조선인 최초로 김대건 신부의 사제 서품이 있었습니다. 이때 다블뤼 신부는 페레올 주교를 도와 사제 서품식 보좌를 하고, 11명의 조선인 신자, 4명의 유럽인 신부, 1명의 중국인 신부가 참여 하였습니다.
< 신리에서의 미사 >
다블뤼 주교는 사목방문의 대부분의 시간을 400여명의 신자가 있는 신리의 손자선 토마스의 집에서 보냈습니다. 다블뤼 주교는 신자들에게 고해성사와 많은 신앙 교육을 했고, 자주 미사를 거행하였습니다.
< 갈매못에서의 순교 >
군무효수형의 집행을 위해 갈매못으로 온 다섯 성인은 충청도 수군절도사에 의해 형이 집행되어 효수되었습니다. 만일을 대비해 관장 주위로 9명의 조총수가 배치되었고, 200여명의 병사들이 구경꾼들이 접근하지 못하게 삼엄하게 에워싸고 있었습니다.
1866년 3월 30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성 금요일에 다섯 성인은 희광이의 칼에 주님을 위한 순교를 하게 됩니다.
< 신리 신자들의 체포 >
1868년 이후 수많은 신리 신자들이 포졸들에 의해 체포었습니다. 포졸들은 신자들이 반항하거나 도망가지 못하게 하기 위해 몽둥이로 마구 때려 힘을 빼고, 팔을 부러트렸습니다.
신리성지에는 대성당과, 제5대 교구장 다블뤼 주교관, 카페 치타누오바, 순교미술관 등 다양한 시설이 있으며, 특히 신리성지의 백미인 순교미술관 하늘전망대에서 바라본 신리성지 전체 풍경과 주변 마을, 들판의 모습을 보러 많은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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