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서 매직

편안할 영(寧)과 넘을 월(越)

처서 매직. ‘처서(處暑)가 지나면 마법(magic)처럼 무더위가 사라지고 시원해진다’는 의미의 신조어다. 아무리 기승을 부리던 한 여름의 더위도 절기가 지나면 자신의 차례가 지났음을 깨닫고 한순간 사라지는 놀라운 자연 현상. 덕분에 8월 뜨거운 열기도 ‘조금만 참자! 조금만 더 기다리면 곧 처서가 온다!’는 희망으로 버텨낼 수 있었는데… 어쩐 일인지 이번에는 그 처서 매직의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불만이 여러 곳에서 들려오고 있다. 처서가 지났음에도 여전 남아있는 무더위라거나, 이제 입이 삐뚤어져야 하는 모기들이 왕성하게 사람을 찌르고 다니는 현상 등 신비한 마법의 위력이 예전만 못해졌기 때문이다. 인간이 환경을 파괴하기 때문인지, 지구가 태양으로 다가가는 중이라서 그런지, 지구가 기울어진 채로 돌아서 그런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사람들은 체감을 하고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반반이다. 분명히 처서가 지나고 난 뒤에 공기가 시원해졌다. 아, 물론 내가 산속에 살아서 도시에 비하면 당연히 더 기온이 낮지 않으냐고 말할 수도 있지만, 산속에 있다고 해서 8월 무더위가 버틸만했던 건 아니니까. 처서가 지나고 마법처럼 시원해진 건 사실이다. 해가 옆산으로 넘어가서 마당 앞에 그늘이 생기면 한낮에도 그 아래 가만히 앉아 있는 게 퍽 좋은 환경이었다. 하지만 그 꿀 같은 시간을 보내기에 커다란 문제가 있는데, 모기의 출현이다. 아니, 분명 입이 삐뚤어지고 이제 슬슬 없어져야 할 모기떼가 어디서 자꾸만 증식을 하고 있다. 선선해진 날씨 덕에 오랜만에 마당에서 바깥바람을 좀 쐬려고 하면 소리도 없이 날아와서는 여기저기 마구 깨물어 놓고 간다.

산에서 처음 지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자연친화적으로 살아야지!라고 다짐을 했었는데 그 다짐은 3개월을 못 갔다. 끝없는 벌레와 모기와 해충의 본거지 안에 무방비로 들어선 셈이었다. 부랴부랴 방역기와 퇴치제를 사서 이제는 한주에 한 번씩은 온 건물과 마당을 방역하는 게 루틴이 되었다. 가을 모기는 보통 독한 놈들이 아니라서 한번 물리면 벌에 쏘인 것처럼 퉁퉁 붓는다. 일주일에 한 번씩 하는 방역, 몸에 뿌리는 모기기피제. 그럼에도 나의 모든 노력을 뚫고 물고 가는 모기. 물린 곳에 바르는 약. 이 좋은 날에 내가 내 집 앞마당에서 바람도 제대로 쐬지 못한다니 뭔가 억울하다. 앞마당뿐만이 아니라 창문도 쉽사리 열지 못한다. 모기들아 처서가 지났으니 이제 그만 입이 삐뚤어지거라, 제발!

이제는 옛말이 되어버렸다는 처서 매직. 하지만 여전히 영월은 그 마법이 통하고 있다. (모기 빼고!) 시원한 바람결에 가을 냄새가 조금 묻어나는 것 같은 착각도 든다. 나무 그늘 아래에 누워서 책 읽기 딱 좋은 계절. 많은 사람들이 이 가을의 여유를 잠깐이라도 누려보았으면 좋겠다. 응? 마당이 없다고? 괜찮다. 마당이 없어도 상관없지 않나. 창문을 활짝 열고 거실에 누워 있으면 이 바람이 그 바람과 크게 다르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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