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지역의 역사와 평택을 빛낸 인물을 되짚어보는 일은 중요한데요.

평택 출신의 독립운동가, 통일 운동가로 일생을 바친

원심창 선생의 기념관에 다녀왔습니다.

원심창 기념관은 팽성 실내체육관 2층(평택시 팽성읍 안정로 74)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원심창 의사는 1906년 12월 평택에서 태어나 1919년 3·1운동에 참가한 뒤,

일본으로 건너가 아나키즘 사상을 수용했으며, 박렬과 함께 흑우회(黑友會)에 가입합니다.

1924년 8월 무정부주의 계열의 노동조합인

동흥 노동조합에 가입하여 항일운동을 계속했습니다.

1932년 8월에 귀국하여, 11월에 톈진 일본 영사관과 일본 병사兵舍 등

주요 일제 기관을 폭파할 것을 모의했습니다.

1933년에는 상해 육삼정에서 중국 주재 일본 대사 아리요시를 암살하려 한

육삼정 의거로 인해 사형선고를 받고 투옥되어 복역 중, 1945년 해방과 함께 출옥했습니다.

원심창 의사는 해방 후 출소하여, 1946년 재일본 대한민국 민단 창립에 참여하며,

민단 초대 사무총장, 11대, 12대 단장을 맡게 됩니다.

1950년대 중반에는 ‘남북통일 촉진 준비회’를 결성하고,

‘민단’과 ‘조련’의 조정적 역할을 하는 새로운 단체 조직을 목표로

‘남북통일 운동 준비 위원회’를 결성했습니다.

이는 해외에 만들어진 최초의 평화통일 운동 단체입니다.

1959년에는 재일 동포 민족지인 통일 일보를 창간하면서 평화통일을 위해 노력합니다.

일본과 중국 등 국외에서 민족운동과 통일 운동을 전개한

원심창 의사는 1971년 7월 4일 일본에서 65세의 일기로 생을 마감합니다.

원심창 의사는 평생을 민족의 독립과 평화통일의 염원을 안고

생을 마감한 분이지만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요.

이러한 점을 뒤늦게 확인한 정부는 원심창 의사에게

1977년 독립운동 유공 ‘독립장’을 추서했습니다.

원심창 기념관에 전시하고 있는 유물은 전체 265종에 달하는데요.

이는 일본에서 발행된 민족지 '통일 일보'가 소장하고 있던 것으로,

원심창 의사의 병상 일기, 자필 편지 등 원심창 의사의 삶이 그대로 담겨 있습니다.

여름 방학을 맞이하여 자녀들과 함께 기념관을 다녀오셔서,

우리 민족의 독립 의지를 불태운 원심창 의사의 뜻을 되새겨보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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