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콘텐츠는 수원시 SNS 시민 서포터즈가 취재한 내용입니다."

수원시 랜드마크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은 사계절 볼만한 수원화성입니다. 겨울에 수원 가볼 만한 곳으로 지난번 눈이 많이 내린 후 아름다운 설경을 사진으로 담기 위해 다녀왔습니다.

수원시에는 국가유산으로 지정된 보물이 17건 있으며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과 관련된 건 팔달문, 화서문, 방화수류정, 서북공심돈, 화령전이 있는데 이 중에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을 소개합니다.

동문은 도망가고, 서문은 서 있고 남문은 남아있고 북문은 부서지고란 말이 전해지는 수원화성. 동문인 창룡문과 북문인 장안문은 여러 차례 파괴되었고, 남문인 팔달문은 원래의 모습이 잘 남아 있습니다. 서문인 화서문은 일제강점기, 한국전쟁 때 사진을 보면 주변 풍경만 다르지, 성곽은 비교적 잘 보전되어 있습니다. 그 덕분에 화서문은 1964년 9월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수원화성의 서문인 화서문은 동문인 창룡문과 거의 같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장안문 안에 있는 쉼터 의자가 빗장이라 해서 수원화성 사대문을 가면 여기도 있나? 하고 둘러보는데 화서문에도 있습니다. 육중한 철문을 닫고 열리지 않게 빗장을 거는데 바로 빗장으로 사용하는 의자입니다.

화서문은 1795년 7월 21일 묘시(6시)에 터 닦기 공사를 시작했습니다. 그해 11월 13일 홍예가 이루어졌고 이듬해 1796년 1월 8일 문루가 완공되었습니다. 수원화성 사대문 중 가장 적은 비용으로 12,668냥이 소요되었습니다.

전체적인 구조는 하부에 육축을 쌓고 가운데 홍예문을 설치하고 상부에 단층 누각을 지었습니다. 바깥으로 반원형의 옹성을 설치하였는데 남측 끝을 개방시켜 통로로 삼았습니다. 동문인 창룡문의 옹성도 반월형으로 화서문과 같습니다. 옹성은 성문을 보호하고 성을 지키기 위한 구실을 하며 2중의 방어 효과를 갖습니다.

육축과 옹성 상부는 여장을 시설하였으며 옹성에 현안을, 옹성 여장에는 근총안과 원총안 그리고 사혈을 뚫어 놓았습니다. 석축으로 된 무지개 문 위에 단층 문루를 세웠습니다. 서쪽으로 해넘이 때 아름답습니다.

처마는 겹처마로 한식 기와를 올린 팔작지붕의 화서문. 용마루 양 끝에는 취두를 쓰고 내림마루에 용두와 잡상을 세우고 사래 끝에 토수를 끼웠습니다. 서쪽 관할로 오방기는 흰색이 꽂혀있습니다.

성안에서 바라본 화서문. 성 밖으로 가기 전 문루에 올랐습니다. 문루는 오전 9시에 개방하고 겨울철에는 오후 5시에 닫습니다.

화서문과 이어진 성곽을 따라 서쪽으로 오르면 억새로 유명한 화서공원으로 서북각루를 지나 팔달산 정상 서장대로 갑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문루는 어칸 부분만 1× 1칸 크기의 마루를 설치하고 나머지는 강회 다짐바닥입니다. 초석은 방형으로 다듬었는데 안에 원형주좌를 만들어 두리기둥을 세웠습니다. 공포는 익공계로 출목이 있는 이익공이며 기둥과 기둥 사이 창방 위에는 화반을 설치했습니다.

여름철에 마루에 앉아 있으면 천연 바람으로 시원해서 성곽길 걷다가 휴식을 취하고 갈만한 곳입니다.

화서문 성문 앞의 옹성과 북쪽으로 이어지는 성벽 끝에 서북공심돈이 있습니다. 국가유산청에서 2010년 국가유산 보물로 지정하면서 "서북공심돈은 현존 성곽 건축에서는 수원 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귀중한 건축물이다. 재료의 유연성과 기능성이 우수하고 치성의 석재 쌓기 기법과 상부 공심돈의 전돌 축조 기법, 현안과 총안, 전안 등이 독창적인 건축 형태와 조형미를 보여준다"라고 했습니다.

성안에서 화서문을 지나 장안문 방향으로 서북공심돈이 있습니다. 수원화성 축성 당시에는 3개의 공심돈이 있었습니다. 서북공심돈, 동북공심돈 그리고 아직 복원하지 못한 남공심돈으로 가장 먼저 건설되었고 두 번째는 서북공심돈으로 1796년(정조 20) 3월 10일 완공되었으며, 총 3,530냥의 비용이 들었습니다.

서북공심돈에서 성곽길로 장안문 방면으로 가면 드라마 그해 우리는 남자 주인공 작업실로 나왔던 촬영지가 보입니다. 이렇게 사진으로 바라보니 더 멋진 수원화성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수원의 화성에서만 볼 수 있는 성곽 건축물 공심돈은 속이 빈 돈대입니다. 공심돈은 4면 벽체를 구성하면서 그 가운데는 3층을 사다리를 통해 오르내릴 수 있도록 했고, 중앙부는 공간으로 두어 공격용 시설물을 설치할 수 있도록 한 군사용 시설물입니다.

화서문 방면의 방어를 위하여 설치한 서북공심돈 치성 위에 벽돌로 대를 쌓고 그 위에 팔작지붕의 망루를 지었습니다. 둔대는 삼층으로 층마다 벽면에 포혈 20개, 서쪽과 북쪽 2면에 현안 두 개씩을 내었습니다. 상층의 벽면 위쪽은 판자로 판문을 둘렀고 판문마다 화살 구멍을 뚫었습니다. 아래층에는 전돌로 작은 홍예문을 만들어 출입했습니다.

1797년(정조 21) 1월 원행시 정조대왕이 화성을 순행하며 신하들에게 '우리나라에 처음으로 만든 공심돈이니 마음껏 구경하라'고 하며 만족감을 표시한 시설물입니다.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은 수원화성과 관련된 행사에서 무대가 되는 곳으로 2024년에는 수원화성 미디어아트 쇼가 열려 웅장한 야경으로 황홀했습니다. 수원화성의 화서문과 서북공심돈은 눈 내린 후 설경 속에서 더욱 아름다워 겨울에도 가볼 만한 곳입니다.

수원화성 화서문

경기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334

수원화성 서북공심돈

경기 수원시 팔달구 장안동 332

2024 수원시 SNS 서포터즈 박미연님이 작성해 주신 글입니다

박미연 서포터즈님의 블로그 : https://blog.naver.com/yd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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