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상주시 SNS 서포터즈

최홍대입니다!🤗

조선의 역사 속에서

정치적인 대립을 했던

당파들이 있었습니다.

부모님께서 자주 말씀하셨던

내용들을 접하기 위해,

저는 어렵지만 논어와 맹자를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조선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고,

다양한 생각을 가진 정치 세력이

소통을 통해 서로를 이해하려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상주라는 도시는

경상북도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산악지형이 아닌, 넓은 들판이 있는

평야 지역입니다.

경상북도의 중심지로서

상주는 다양한 정치 세력을 품었던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그 중에서도 흥암서원은

대전 송촌동에 위치하며,

동춘당 송준길을 모신 곳으로 유명합니다.

흥암서원은 인조 때 상복 논의가 일어날 때,

다른 당파의 우복 정경세와

논산 돈암서원의 사계 김장생이

서로의 의견을 이해하고

1년짜리 기년복을 입어야 한다고

논의했던 장소입니다.

사계 김장생은 동춘당 송준길의

스승으로, 율곡 이이를 잇는

기호학파의 예학을 대표하는 인물이며,

정경세는 영남학파의 대표적인 유학자입니다.

송준길과 정경세는

각각 서인과 남인을 대표하며,

정치적 경쟁과 대립의 양대 세력을

이끌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의 의견에

열린 자세로 대했다고 전해집니다.

동춘당 송준길이 상주에 머물게 된 것은

스승인 김장생 덕분이었으며,

정경세와의 소통을 통해

퇴계학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소통은 송준길이

정경세의 둘째 딸과 결혼하게 되는

과정으로도 이어졌습니다.

1702년(숙종 28), 송준길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지방 유림의

공의로 흥암서원이 창건되었고,

현재까지 위패를 모신 곳으로

남아 있습니다.

경내에는 흥암사, 진수당, 집의재,

의인재, 어필비각 등의

건물이 있습니다.

상주는 조선시대 남인들의 땅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집권 여당이었던

노론의 서원이

잘 유지되고 있는 공간입니다.

이는 서로의 생각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며 소통하려는 노력의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흥암서원의 어필비각은

1716년에 숙종이 하사한

어서를 기념하기 위해 세운 비각으로,

정면 1칸, 측면 1칸의

맞배지붕으로 지어졌습니다.

조선시대의 유학자들은

깊은 공부와 폭넓은 경험을 통해

자신만의 인생관을 형성하며

살아갔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할 수 있는 지식이 없었다면

사람들의 존경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상주의 흥암서원에서

동춘당 송준길을 만나고,

서로의 생각이 달랐음에도 불구하고

소통하며 이해하려는 노력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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