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 역사를 볼 수 있는

교육장

마을 전체가 지붕 없는

근대 역사박물관 정읍 화호리


지난 8월 15일은 우리나라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된 지 79년이 되는 광복절이었습니다. 이번 광복절은 목요일이라서 금요일 하루 휴가를 내면 4일간의 긴 연휴를 보낼 수 있어서 오랜만에 휴가다운 휴가를 즐길 수 있었는데요.

오늘은 연휴 기간 들렸던 여행지 중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중심에 있던 정읍 화호리 마을에 있는 정읍 근대역사관을 소개해 드려요

마을 전체가 근대역사박물관으로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정읍 태인 화호리는 일제강점기 농촌 수탈의 아픔이 남아있는 마을로 전북특별자치도의 광활한 평야 지대의 중심에 있는 곳입니다.

일제강점기 시절 곡식 수탈이 집중적으로 이뤄졌던 화호리에는 수탈을 일삼던 일본인 지주 가옥과 대형 쌀 창고 등 건물과 집터가 곳곳에 남아있어 마을 전체가 박물관 같은 곳입니다.

관람 순서는 정읍 근대역사관에서 출발 농장을 운영하던 경리과장 사택과 농산과장 사택 순으로 관람했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마을 전체를 다 돌아보고 싶었지만 폭염주의보가 내릴 정도로 더운 날씨에 마을을 돌아보는 건 다음으로 미뤘습니다.

쌀 창고가 박물관이 된

정읍근대역사관


정읍 화호리 마을 입구에 만들어진 대형 쌀 창고를 리모델링하여 만들어진 정읍근대역사관은 일제강점기 쌀 수탈의 아픔을 기억하고 관광자원으로 활용하기 위해서 2021년에 문을 연 공립 박물관입니다

< 정읍 근대역사관 운영 안내 >

🖈운영 시간: 09:00~18:00(3월~10월)

09:00~17:00(11월~2월)

🖈휴관: 월요일 및 공휴일 휴무

🖈관람 문의: 063-571-7077

주차장 있음, 입장료 무료

정읍근대역사관은 전시실과 아카이브센터로 구성되어 있으며 전시실에서는 일제강점기 주민생활사 사진과 영상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방문하시면 정읍 문화관광해설사와 함께 관람하시면 더 많은 화호리 이야기를 함께 하실 수 있어요.

일본은 1920년부터 산미증산과 안정적인 수확을 위한 볍씨 신품종 보급과 함께 서해안 간척 및 저수지와 제방 건설에 박차를 가하고, 일본인들의 조선 농촌 이주사업까지 적극 지원 독려합니다.

이주한 일본인들은 조선에 은행을 세우고 저리로 대출을 받아 고금리로 고리대금을 통해 농지를 빼앗아 전북의 비옥한 땅을 수탈했습니다.

토지 소유와 지세 제도의 근대화라는 명분 아래 토지조사사업을 시행하였고 기간 내 신고되지 않은 모든 토지는 물론 공공기관에 속해있던 재산이 조선총독부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빼앗은 토지는 동양척식주식화사와 일본인에게 헐값에 판매되었고 이 땅을 이용한 고리대금업을 통해 일본인 지주들은 더 큰 이익을 보았다고 합니다.

비옥한 호남평야에 위치해 있던 화호리는 일제의 수탈이 심했던 지역이므로 많은 일본인들이 살았던 곳이었다고 하네요.

정읍근대역사관에서는 무료로 교복 체험을 하실 수 있으니 잠시 시간을 내서 교복으로 갈아입고 재미있는 사진 찍어서 추억 만들고 가세요.

쌀 수탈의 중심에 있던

정읍 화호리


정읍근대역사관이 있는 정읍 화호리는 ‘벼(禾)를 심은 논이 호수(湖)처럼 펼쳐져 있는 동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지금도 정읍 근대역사관 뒤 언덕에 올라 주변을 바라보면 주변이 다 논이고 논에서는 많은 벼가 자라고 있는 걸 볼 수 있어요.

일본의 농장주였던 구마모토 리헤이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명실상부한 최대 농장주입니다.

군산에서 농장 개척의 가능성을 보고 일본의 한 신문에다 장밋빛 미래를 그린 기고문을 실었는데. 이 글을 본 독자들로부터 투자 금을 받아 군산의 땅을 사들여 농장을 세우고 확장을 거듭했으며 최신 농법을 도입하고 소작료를 올려가면서 닥치는 대로 전북의 땅을 사들였다고 합니다.

전북 일대에 그가 가진 땅만 자그마치 1000만 평이나 됐다고 하는데 서울 여의도의 13배가 넘는 규모였으며 그의 땅을 부쳐 먹는 소작인들만 3000가구 2만여 명에 달했을 정도라고 하니 농장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이 되죠.

구마모토 리헤이는 화호리 주변에서 생산한 쌀을 보관하기 위해 다섯 동의 대형 쌀 창고를 지었을 정도로 많은 땅을 보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이 땅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화호리에 헌병을 주둔시키고 경찰서 두 곳의 운영비를 댔으며 화호자혜진료소, 화호교회, 화호병원, 화호공립학교도 지었다고 하네요.

특히 화호자혜진료소와 화호병원은 의료의 손길이 미치지 못하던 농민들을 치료했던 쌍천 이영춘 박사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입니다.

정읍근대역사관은 일제강점기 지어진 쌀 창고를 리모델링하여 만든 박물관이지만 화호리마을 전체가 박물관이로 봐도 전혀 어색하지 않은 곳입니다.

박물관 주변으로는 농림과장사택, 경리과장 사택, 조선인 노동자 거주지, 학교, 진료소, 병원, 소화여관 등의 건물이 남아 있어 함께 돌아보면 좋을 듯합니다.

정읍 근대역사관 관람을 마친 후 바로 옆 골목을 따라 건물 뒤편으로 이동하면 일본식 건물들이 눈에 들어옵니다.

920년대에 지어진 건물인 화호리 구 일본인 농장 가옥은 정읍과 김제 일대에 대규모 토지를 차지한 구마모토 리헤이가 소유했던 집으로 등록문화제로 지정되었습니다.

일본과 조선을 오가던 구마모토 리헤이가 방문할 때마다 머물던 농장 가옥은 지붕이 중첩되는 일본식 가옥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마을의 가장 높고 전망 좋은 곳에 있습니다.

방바닥에는 다다미가 깔렸고, 도코노마가 설치된 전형적인 일본 건물로 사무실과 주택이 복도로 연결된 근대기 일본식 주택의 배치 방식과 공간적 특징이 잘 나타난 구조입니다.

가옥 옆으로는 보호수로 지정된 화호리 마을 숲이 있고 이곳에 올라가면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옵니다.

구마모토 리헤이는 마을에서 가장 높은 곳에 사택을 지어 놓고 김제 평야를 내려다보면서 평생 이곳에서 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겠지만 일본은 패망했고 구마모토 리헤이의 모든 재산은 몰수됐습니다.

정읍근대역사관이 있는 화호리는 일제 강점기, 쌀 수탈 아픔을 간직한 건축물들이 곳곳에 남아 있는 마을로 전체가 박물관입니다.

이번 주말은 정읍 화호리에서 일제 강점기의 아픔을 돌아보고 나라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역사 여행하고 가세요.



글, 사진=박순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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