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일 전
슬도아트와 함께 미술 읽기 ① - 마음에 남는 그림을 만난 어느 날
김수진 ‘슬도아트’ 대표
얼마 전 꼭 보고 싶은 전시가 있어 서울 전시장을 둘러보던 중 국립중앙박물관에 들렀다. 가능한 많은 전시를 관람하기 위해 서둘러 오픈 시간 전에 도착했는데 광장을 지나 초입까지 길게 늘어선 줄을 보며 ‘일정이 늦어지면 어쩌지?’ 걱정을 하면서도 동시에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은 전시는 어떨지 기대되기도 했다. 마치 웨이팅 줄의 길이로 맛집을 확신하는 것처럼.
하지만 정작 국립중앙박물관에서만 볼 수 있는 상설, 기획 전시는 한산했고, 길게 늘어선 줄의 정체는<비엔나1900, 꿈꾸는 예술가들-구스타프 클림트부터 에곤 실레까지>라는 특별전을 관람하기 위한 대기 줄이었다. 방학이라 부모님과 함께 온 아이들이 많아서 일까 싶기도 했지만, 예매를 한 후 더 빨리 입장하려는 다양한 연령의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심지어 이날은 눈발도 날리는 엄청 추운 날이었는데도 말이다. ‘오스트리아 레오폴트 미술관과 협력하여 19세기 말 비엔나에서 변화를 꿈꾸던 예술가들의 활동과 모더니즘으로의 전환 과정을 배경으로 구스타프 클림트와 동시대 예술가들의…’ 눈으로는 후루룩 글을 읽으며, 예매를 시도해 봤지만 이미 모든 전시 일정의 티켓이 매진되어 있었다.
전시 기획을 하고 있는 필자도 학창 시절 전시장에서 작품 감상을 하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였고, 서양 미술사조나 동양미술의 미학을 교과에서 배우며 절에서 간혹 잘 보존된 탱화를 보는 것이 고작이었던 그 때에도 서양미술, 특히 인상주의와 모더니즘이 이미 대부분의 시각예술 정보를 차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원화를 보기 위해 현지 전시장을 찾아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애써 전시를 찾아서 보지는 않았다.
오히려 최근에는 동시대 미술의 감각을 잃지 않으려 비엔날레와 현대미술관, 또는 트렌디한 전시를 보기 위해 쫒아 다니며 회화는 조금 관심 밖으로 밀려나 있던 터라 참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조금 더 솔직하게 말하자면, 쏟아져 나오는 미디어 작품들은 오히려 기억에 오래 남지 않았다. 감상과 정보 습득 어디쯤에서 후다닥 전시장을 빠져나오면 인상은 잠시 스쳐 지나가는 것일 뿐,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 작품은 드물다. 여운을 남기는 감성의 자리에 작품 정보들을 빼곡히 채워 마치 과식 후 배를 두드리며 포만감을 느끼는 맘이었다는 걸 인정해야겠다.
전시를 많이 보는 직업이니 어쩌면 당연하다 여겼는데 예기치 않은 순간, 눈앞에 펼쳐진 장면과 내 맘이 오버랩되어 내내 생각을 곱씹어보게 되었고 자연스럽게 ‘어떤 전시를 기획하면 좋을까’로 생각이 번져갔다.
“그림은 어떻게 감상하는 건지? 그림을 배우고 싶은데 소질이 없는데 괜찮을지?” 라고 물어오는 분들에게 늘 하는 말이 있다. 누구나 배우면 어느 정도 수준에 도달할 수 있고, 감상은 관람자의 몫이므로 나의 취향에 맞고 보기에 좋은 그림이면 족하고, 감상에 뾰족한 기준이 있는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한마디로 감상은 ‘쉽게’ 하면 좋다는 말을 가장 많이 하게 된다. 실제로는 많은 전시가 ‘쉽지 않다’는 딜레마가 있다. 그림과 예술가, 예술 행위 자체를 사랑했던 나는 드러나지 않은 작가의 인생과 작품이 만들어진 배경을 알아가고 그로부터 그림을 다시 이해하며 비로소 제대로 그림을 읽어내는 과정을 즐겼다. 하지만 많은 양의 전시를 공부하듯, 기획을 숙제하듯 하다 보니 감성은 사라지고 작가의 의도를 읽어내려 서문과 평론을 해석하거나, 작품의 시대적 맥락과 미술사적 연계성 등을 반드시 연결지어야 한다는 강박이 생겨 어쩌면 내가 ‘어려운’ 전시를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도 된다.
오랜만에 콜비츠와 레핀의 작품을 다시 꺼내보며 작품을 마주한 순간, 그림이 너무 좋아서 마음이 울렁거렸던 어느 날이 떠올랐다. 작년 한 해 슬도아트를 찾은 많은 사람들은 어떤 기대를 가지고 오셨을까? 그들도 어느 날 인상적인 한 장면을 마음속에 품고 가는 경험을 했을까? 정신없이 달려온 슬도아트의 1년을 뒤로하고 전시장을 천천히 둘러보며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을 가져본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다짐한다. 누군가의 마음속에 ‘그림 한 장’ 진하게 남길 수 있는 전시를 준비해야겠다고.
※ 대왕암소식지 2025년 봄호에 실린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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