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흔적을 따라 사색이 머문 호암 이병철 생가에서...

의령군 블로그기자 조 윤 희

벚꽃이 봄 아지랑이와 함께 춤을 추며 사람들의 마음을 풍성하게 유혹을 하는 요즘, 의령을 여행하다가 우연찮게 들르게 된 곳이 정곡마을 호암 이병철 생가인데요. 들어서는 길부터가 다른 것 같습니다.

저희 부모님과 함께 다녀온 호암 이병철 생가와 마을 주변을 둘러보실까요?

'호암 이병철 생가'를 내비게이션에서 검색하여 도착하니 잘 정비된 주차장이 있었고 모두 화폭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 마을로 들어서자 보이는 것이 부자 기운이 깃든 곳이라 그런 것일까요? 마을에서 관리를 너무 잘 하고 있는 느낌을 받았답니다.

호암 이병철 생가가 있는 정곡면은 의령군의 중심부에 위치하며, 군청에서 12km 지점에 위치한 중간 산지로서 벼를 주 작목으로 재배하여 오다 1980년대 의령군 내 처음으로 수박시설 하우스를 시작으로 현재는 수박, 양상추, 호박, 새송이버섯, 딸기, 단감, 축산 등 재배작목의 다양화로 소득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고 하지요.

정곡면은 신라 신문왕 5년(서기 658) 장함현 화곡리에 속하였으며, 현종 9년에 진주 속령으로 있다가 대한제국 고종 32년(1895년) 화곡(禾谷:화실)과 정동(正洞) 두 방리(坊里)였으며, 1906년(광무 10년) 지방구역 정리 때 일정동(一正洞), 이정동(二正洞)과 화곡(禾谷)으로 부르게 되었으며, 그 뒤 지방행정구역 조정(1914년 3월 1일 시행) 때 이정동은 지정면 관할로 편입되고 화곡과 일정동이 통합되어 정곡면이라 부르게 되면서 10개 법정리와 16개 행정리와 37개 자연마을로 이루어져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해요.

벽화로 흙담의 흐름을 잠시 끊고 또 다른 호흡으로 걸어가게 한 골목길도 정겹게 보이는 이 길은 호암 이병철 생가의 집 앞 풍경이랍니다.

호암 이병철 생가

-소재지: 경남 의령군 호암길 22-4(지번. 정곡면 중교리 723)

-운영 시간: 화 ~ 일 10:00 ~ 17:00(매주 월요일 정기 휴무)

-TEL. 055-573-0723

멋들어진 소나무와 그 아래 붉은 담심을 품은 동백, 목련이 담 안에서 밖을 내다보며 외지인을 따사롭게 맞아주는 길을 따라오니 호암 이병철 생가의 솟을 대문채를 마주하게 되더군요.

우리나라 경제 발전을 이끈 대표적인 기업가인 호암 이병철 선생이 태어나 유년 시절과 결혼 후 분가하기 전까지 지냈던 곳으로 2007년에 개방되었다지요.

오전 10:30, 11:30/ 오후 1:30, 3:00, 4:30에 호암 생가와 이병철 선생에 대한 해설 시간이 안내되었던데, 비껴간 시간대에 도착해서 해설사의 안내는 받지 못했네요.

솟을대문채를 지나 마당에서 바라본 이병철 선생의 생가 모습입니다.

사랑채로 보이는 건물 앞에 우물이 하나 있더군요. 마당 안에 우물이 있다는 것은 당시 제법 잘 사는 집에서나 볼 법한 풍경이었을 텐데, 여기서 보게 되었네요.

생가의 모습을 담으면서 찬찬히 둘러보리라 싶었는데 부모님은 벌써 다 둘러보고 나오십니다. 그려~~ㅎㅎㅎ

그러면, 저와 함께 생가를 급히 둘러보실까요?

우물 주변에 앵두나무가 많이 심긴 모습을 보니 노래자락이 절로 흥얼거려지네요.

'앵두나무 우물가에 동네 처녀 바람났네~'

지금은 꽃이 살살 지고 있지만 꽃 진 자리에 맺힐 앵두가 여럿의 눈을 유혹할 것 같기도 하더라고요~~~ㅎㅎㅎ

대문채, 사랑채, 안채, 광으로 구성된 생가는 넓은 마당을 두었고, 대문채는 솟을 대문으로 문 좌우에 방이 하나씩 있으며 사랑채는 정면 4칸으로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2칸의 방과 왼쪽에는 한 칸의 방을 두었더군요.

조선 후기의 사대부집의 형식 중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 헛벽을 두어서 안채를 밖에서 보이지 않게 한 것을 떠올린다면 아마도 이병철 생가에서는 헛벽 대신 화단을 택했나 싶어지더라고요. 물론, 해설사가 없어서 여쭙지 못했지만 제 생각이 맞는다면 맞고 영 틀리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손질이 잘 된 화단은 또한 집안의 재력과도 무관하지 않을 즐거움이었을 것입니다. 방문하는 손님들에게 휴식을 주었을 테고, 집안사람들의 자랑거리이기도 했을 화단 안에는 봄이 한가득 달려와 수를 놓듯 꽃봉오리마다 꽃을 틔워내고 있는 화단을 돌아 뒤쪽에 있는 안채를 향해 걸음을 옮겨 봅니다.

사랑채와 안채 사이에도 우물이 있더라고요. 집 안에 두 개의 우물이 있다는 것은 정말 대단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 당시의 우물은 마을 공동으로 사용했을 상황이었을 테니 말입니다.

정면 4칸으로 대청마루를 중심으로 오른쪽에 부엌 1칸, 방 1칸이 왼쪽에 방 1칸으로 구성된 안채 옆으로 광이 보이는군요.

부자의 기운을 받으려고 온 것은 아닌데도 생가를 둘러보면서 긍정의 기운이 드는 것은 왜일까요? ㅎㅎㅎ

호암 생가는 삼성 그룹의 창업자인 기업가 호암 이병철 선생의 조부께서 1851년 대지 면적 1907m²에 전통 한옥 양식으로 손수 지었으며, 일자형 평면 형태로 지어진 생가는 남서향의 평평한 땅 위에 자리 잡고 있으며, 그동안 몇 차례의 증·개축을 거쳐 은은하고 고고한 멋을 풍기는 오늘의 모습으로 단장되었다고 하지요.

아담한 토담과 바위벽으로 둘러싸인 생가 주위로 울창한 대숲이 조성되어 운치 있는 경관을 연출하고 있는데, 풍수지리에 의하면 곡식을 쌓아놓은 것 같은 노적봉(露積峯) 형상을 하고 있는 주변 산의 기운이 산자락의 끝에 위치한 생가 터에 혈(穴)이 되어 맺혀 있어 그 지세가 융성할 뿐만 아니라, 멀리 흐르는 남강의 물이 빨리 흘러가지 않고 생가를 돌아보며 천천히 흐르는 역수(逆水)를 이루고 있기 때문에 명당 중의 명당이라고 한다고 리플렛의 안내글을 옮겨 봅니다.

만개한 산수유 꽃이 별처럼 반짝이는 생가의 화단에는 목마가렛, 앵두나무, 튤립, 할미꽃, 돌단풍 등이 가득해서 둘러보기가 참 좋은 생가에서의 시간을 마무리해 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기가 과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지를 잘 알고 있을 때

가장 행복힌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다행히 나는 기업을 인생의 전부로 알고 살아왔고,

나의 갈 길이 사업보국에 있다는 신념에 흔들림이 없다."

ㅡ1976. 11. '나의 경영론'(전경련 회보)에서

시간을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지만 살아온 시간의 흔적을 되짚어 볼 수 있는 호암 이병철 생가와 마을 주변을 둘러보면서 부모님과 대화를 많이 할 수 있었던 것이 감사했던 시간은 저에게 또 하나의 추억과 느낌표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대한민국의 현주소를 의령군 토담길 아름다운 곳에서 사색해 보시면 어떨까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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