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 가볼만한곳 ,

'박열의사기념관'


오늘 방문한 곳은 박열의사기념관입니다.

박열이 보여준 민족정신과

애국정신을 널리 알리고, 후손들이 그 정신을

이어갈 수 있도록 2012년 개관하였습니다.

주차장은 입구에서 조금만 올라가시면 주차장이 있어요.

올라가는 길에 10여 대씩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어요.

시설안내

주출입구 방향에서 주차장 옆에는 가네코 후미코 묘소,

박열기념관으로 가는 길에 박열의 생가,

그 옆에는 정자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평화광장이 있고,

올라가는 길에 평화의 마당, 번영의 마당, 독립의 마당이라는 이름의 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박열의 생가

올라가는 길 앞에 박열의사 생가지가 있어요.

여기서 최초의 무정부주의 단체인 흑도회를 조직했고,

1923년 일본 왕자 히로히토를 암살하려 한 대역사건으로

검거되었던 아나키스트 박열의사가 태어난 집터랍니다.

관람시간

매일 09:00 - 17:00 (11~2월)

매일 09:00 - 18:00(3~10월)

월요일 휴무 / 1월 1일 · 설날 · 추석 휴관

관람료 무료

입구에 들어서면 현재는 출입구와 홀

그리고 2층으로 올라가는 곳에

나라를 위해 싸운 여성들, 길을 만든 여성들이라는 주제로

현재 독립기념관 주최로 순회 전시를 개최하고 있어요.

홀에 들어서면 입구에 박열의사의 동상이 있고,

뒤편에는 2층 전시관으로 올라가는길이 있으며,

오른편에는 안내데스크와 나무에 느꼈던 점을 적을 수 있도록

공간이 마련되어 있어요.

왼편에는 제1전시관이 있답니다.

제1전시관

제1전시관에서는 총 4가지 파트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박열의 성장과정과 3.1운동

안쪽에는 박열의 동반자 가네코 후미코

중앙에는 박열,가네코 후미코 자료 검색을 위한 공간과

박열의 후원자 후세 변호사와 박열의 어록을 보실 수 있어요.

박열의사는 예천 금당실 함양 박씨 운의 13세 손입니다.

예천 금당실 선동에 살던 박열의 할아버지 박의성은

1880년에 함창 인근 모전으로 이주했고,

이곳에서 딸 선이를 경주 김씨 가문의 김필문과 혼인하였으며,

박열의 누나 문성, 큰형 정식, 작은형 두식이 태어나 대가족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당시에 학교에서 배우던 전과목의 교과서(박성순선생 자료기증)

박열 의사의 친필

박열 의사와 장의숙 여사가 조국으로 영구 귀국하여 임시로 만든 호적대장 / 장의숙 여사의 학적부

박열 의사의 생애와 어린 시절부터

학창 시절의 발자취를 엿볼 수 있습니다.

재학 중에 3.1운동이 일어나면서 박열은 자퇴하고

독립투쟁을 위해 일본으로 떠나는 그의 행적을 만나볼 수 있어요.

또한 박열의 영원한 동지이면서 그의 아내

가네코 후미코를 만나 보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녀의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어요.

곳곳에서는 영상 자료들이 상영되고 있어서 박열과 가네코 후미코

그 두 사람의 이야기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 같아요.

문란한 생활을 하던 스님인 외삼촌과 자신을 팔아넘기려는 아버지와의

사이가 좋지 않아 혼자 도쿄의 친척 집으로 올라왔고,

아나키스트 모임에서 박열과 만나 동거하였고,

그와 함께 뜻을 같이 하였습니다.

그리고 박열의 변호인으로 많이 알려진

후세다츠지 변호사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그는 톨스토이의 인도주의 사상에 영향을 받아

변호사이면서 법률가와 사회 운동가로 활동했습니다.

"살아야 한다면 민중과 함께 죽어야 한다면 민중을 위해"

박열 의사의 후원자인 후세다 쓰지는

그 당시 핍박받는 조선인들의 마음을 움직였고,

일제강정기 하의 조선인에게 없어서는

안될 의열 변호사이자 해방운동가였습니다.

이렇게 둘러보고 2층으로 올라가 보았습니다.

2층은 제2전시실과 영상실이 있습니다.

제2전시실

제2전시실은

사상 잡지 발행을 통한 항일 투쟁, 법정투쟁

일제강점기 형무소와 법정 체험이 가능한 공간과

박열, 가네코의 유적안내 / 조국독립을 위한 사회운동 / 현창사업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923년 관동지방에 대지진이 발생하였고,

조선인이 우물을 독약을 타고 폭탄을 던진다는 등의 유언비어가 난무하였습니다.

그리고 일본 경찰과 자경단에 의해 약 6천여 명이 학살당하는 대재앙이 발생하였지요.

대지진을 기화로 경찰의 검속에 걸린 박열의사와 가네코 후미코는

황태자를 살해할 대역 죄의 명목으로 구속 수감되어 사형 판결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사형판결 재판정에서

2층 전시실은 그의 재판 과정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의 위 장면은 재판정에서의 그의 몸습을 담아내고 있답니다.

박열 의사는 조선 관복을 가네코 후미코 여사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재판을 받았습니다.

1926년 3월 사형 판결 후에 미소를 지으며

"재판장, 수고했네. 내 육체야 자네들 맘대로 죽이지만, 내 정신이야 어찌하겠는가"

라 하면서 만세를 불렀다고 해요.

그리고 일주일 후의 사면장을 가네코 후미코는 갈가리 찢어 버렸다고 합니다.

기관지 발간

일본으로 건너간 박열 의사는 일본 내에서 차별받는 조선인들의 현실을 폭로하기 위해

재일 유학생들, 일본인 아나키스트들과 의기투합해 '흑도회', '불령사' 등을 조직하였고,

기관지 '흑도' 와 '후토이세진' '현사회' 등을 발간하고, 여러 기관지에 투구하였습니다.

한쪽에는 그 당시 그가 입었던 치마저고리와 조선관복을 입고

재판과정을 체험 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요.

이렇게 둘러보면 박열의사와 가네코 후미코 여사의 삶을 둘러보게 됩니다.

가네코후미코의 묘

그가 살았던 그 시대의 치열한 삶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일제에 맞서 온몸을 던져 희생한

항일독립정신을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주변에 고모산성과 오미자터널과 거리도 가까워서 함께 보시기 좋은 코스랍니다.

함께 둘러보시는 것을 추천해 드립니다.


※ 위 글은 문경시 SNS서포터즈 기자단의 기사로 문경시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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