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일 전
금산군 진산면의 역사 이야기 l 진산역사문화관
금산 가볼만 한 곳 '진산역사문화관'
금산여행
진산은 충청남도 금산군에 속한 행정구역입니다.
예전에도 진산에 방문했다가
면 단위라서 크지 않은 곳일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진산향교가 있는 등 조선시대에는 그 부근에서
행정 중심지 중의 한 곳이라는 점이 신기했습니다.
이번에 다시 진산에 갔는데,
면 단위 행정구역인데 자체적으로
역사문화관이 있어서 방문했습니다.
진산역사문화관은 옛 진산국민학교지방분교장
자리에 세운 건물입니다.
'지방분교'에서 '지방'은 도시와 지방의 의미가 아니라 이곳이 '금산군 진산면 지방리'이기 때문입니다.
운동장이었던 넓은 자리에는 잔디가 펼치져
있어서 날씨가 따뜻해지면
좋은 소풍지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진산역사문화관은 매주 월요일과 1월 1일,
설날과 추석 당일에는 휴관이고 개관했을 때에는 09:30~17:30까지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전시해설 해주시는 분도 상주하고, 전시실은 왼쪽에 진산사건실,
오른쪽에 진산문화실까지
두 개의 전시실이 있습니다.
먼저 진산문화실부터 볼까요?
진산문화실에 들어가면 진산면의 지도가 있고
진산면의 13개 리 단위 행정구역의 모습을
영상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오른쪽 분리벽에는 진산의 역사와 의미를 간단히
설명하고 있고요.
전시 관람은 왼쪽부터 시작합니다.
보배로운 고을 진산은 충청도와 전라도의
경계에 있는 교통의 요충지였기 때문에
군사적으로도 중요했다고 합니다.
충청남도에 편입된 것은 1963년이라고 합니다.
진산의 역사를 선사시대부터 보여주는데,
구석기 시대의 유물부터 간석기, 남방식 고인돌 등 청동기 시대에도 사람들이 거주했다는
증거를 발굴했다고 합니다.
삼국시대에는 백제 진동현으로 지금의
연산(논산시 연산면)인 황산군 소속이었다고 합니다.
고려시대에는 현재의 금산 지역의 진례군이었다가 지금의 전북 완주군 소속으로 되는 등 진산은
경계에 있는 위치 때문에 변화가 잦았다고 합니다.
조선시대에 진산군으로 승격되면서 금산군과
동등한 행정구역이었는데 일제강점기에 금산군에
통합되면서 진산면, 복수면, 추부면으로
분리되어 지금까지 이어집니다.
조선 초에 태조 태실을 당시의 진동현(현 진산)에
만들면서 격이 높아져서 진주가 됐는데,
시간이 흐르면서 16세기에는비석이
훼손될 정도였다고 합니다.
1689년과 1725년에 태조 태실 개수공사를
완료했는데 20세기 초에 도굴을 당하는 등
일이 있어서 1928년에 태항아리를
서울로 옮겼다고 합니다.
1990년대에 들어서서 예전 태실 자리에 남아있는 석물과 함께 지금의 만인산에 태실을
복원(1993)했다고 합니다.
또한 길목 요충지였기 때문에 임진왜란 때
최초의 육상전투인 이치대첩을 벌어졌고,
전라절제사 권율이 군사를 보내어
왜놈을 물리쳤다고 합니다.
진산이 종교적으로 천주교에 중요한 의미인 것은
최초의 순교자가 진산에서 나왔기 때문입니다.
진산의 순교자인 윤지충 등 순교자 123위는
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이 방한했을 때
광화문광장 시복식에서 복자의 자리에 올랐습니다.
진산 지역의 다양한 종교 문화를 지도에서
한눈에 볼 수 있는데 불교부터 유교, 동학,
천주교, 개신교 문화까지 보여줍니다.
진산역사문화관의 주소인 '실학로' 도로 명칭도
이 도로를 따라 진산성지성당과 개신교가 있어서
실학로하고 명명했다고 합니다.
진산의 교육은 조선시대 진산향교에서 시작했고,
사립진산학교는 1912년 진산공립보통학교가
됐다가 1941년에 진산국민학교가 됐습니다.
1942년에 일제는 전쟁을 대비하는 청년훈련소
등으로 운영했고, 해방 후인 1945년 10월 30일에 진산국민학교가 다시 문을 열었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이어지는 전시는 현재 진산면에 속하는
리 단위 마을 이야기입니다.
13개 리 중에 교촌리는 향교가 있던 곳이라서
부르는 이름입니다.
다음 전시실은 진산사건실입니다.
진산사건실에서는 진산에서 일어났던 종교적으로 큰 사건인 신해박해 이야기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한반도의 천주교는 외국에서 들어온 누군가에
의한 것이 아니라 서적 등을 통해 평신도에 의해서
자생적인 신앙 공동체를 형성했다는
점이
특징입니다.
한반도 천주교회의 초기 모습을 담은 그림도
볼 수 있는데, 초기에는 중인 계급의 김범우 사가가 있었던 서울 명동 근처의 명례방에서
신앙 모임을 가졌다고 합니다.
그림 속의 인물 중에는 진산의 윤지충도 보이고,
정약용, 정약전, 정약종 등도 있습니다.
패랭이를 쓴 사람도 한 방에서 같이 모임을 하는데, 갓을 쓴 양반 계급이 중앙에 있고 패랭이를 쓴
사람들은 뒷자리에 서거나 앉아있는 모습입니다.
진산에서 일어난 신해박해(1791) 때 순교한
윤지충과 권상연의 가계도를 보는 것도
흥미롭습니다.
역사 속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신해박해 당시 진산은 전라도 북부에 속했는데,
진산은 전라도 북부의 천주교 신앙공동체가 있었고, 전라도 남부는 전주를 중심으로
신앙공동체가 있었다고 합니다.
신해박해로 천주교 신자들을 처형하고 진산군은
5년동안 행정구역이 '현'으로 강등됐다고 합니다.
진산에 대한 박해가 이어지면서 신자들은 뿔뿔이
흩어지면서 주로 산간 지역으로 들어갔는데, 진
산의 가사벌에 교우촌을 형성해서 만든 가사벌 신앙공동체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가사벌 신앙공동체는 진산성지의
전신이었다고 합니다.
진산성지의 순교자 이름도 기록했는데,
순교자 조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2014년에 이르러 진산의 순교자
세 분은 시복됐고, 2017년에 진산성지성당은
국가등록문화유산(당시에는 등록문화재)이
됐습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세상도 변해가는 것은
이 세상의 이치입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지 않으면 도태되는 것이 자연의 이치이기도 합니다.
완고했던 당시의 천주교는 조선의 전통을
배려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벌어진 문화 충돌은
해로 이어지며 많은 분들의 목숨을 앗아갔습니다.
지금의 천주교에서는 조상을 모시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을 우상 숭배라고 하지 않습니다.
진산역사문화관에서 진산의 역사 문화와 함께
한국 초기 천주교의 이야기도 알 수 있었습니다.
진산역사문화관
○ 충청남도 금산군 진산면 실학로 197
○ 무료 관람, 무료 주차(대형 버스도 가능)
○ 관람시간: 09:30~17:30
○ 휴관일: 매주 월요일, 1월 1일, 추석과 설날 당일
○ 관람 문의 041-751-6181
* 2025년 2월 19일 촬영
※ 이 글은 충청남도 도민리포터 젊은태양님의 글입니다. 충청남도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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