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가을, 오늘은 겨울

편안할 영(寧)과 넘을 월(越)

가을이 왔나 했더니 겨울이었다! 분명 어제까지만 해도 반팔을 입고 다녔는데, 오늘은 장을 보러 가는 길에 후드만 하나 걸쳤더니 오슬오슬 한기가 돌아서 패딩을 꺼내 입었다. 내가 너무 게으름을 피웠나 보다. 낙엽이 떨어질 때 ‘오! 곧 있으면 단풍이 물들겠군!’이라 생각해서 단풍놀이를 차일피일 미뤘더니 어느새 영하의 기온이 되고 말았다. 더 늦으면 안 되겠다 싶어서 주말 하루 시간을 내서 단풍놀이를 나섰다. 읍내에 살던 시절에는 매년 가을이 되면 금강정으로 단풍놀이를 갔었는데, 이곳 무릉도원으로 이사를 온 뒤로는 법흥사를 찾아 올랐다. 부끄럽게도 나는 영월 사람이면서도 법흥사에는 몇 해 전에 처음 가봤다. 아무래도 골짜기를 따라 깊숙한 자리에 숨어있기 때문에 동네 주민이 되기 전에는 찾아갈 엄두를 내지 않았던 셈이다. 하지만 법흥사에 처음 가봤던 때도 이 시기와 비슷했고, 정말 가을을 만끽하기 좋은 곳이구나 싶어 그때부터 가을 산책으로 매년 찾고 있다.

나는 딱히 종교가 없다. 어린 시절엔 친구를 따라 성당에도 갔었고, 호주에서 지낼 땐 한인교회 목사님께 도움을 많이 받아 감사한 마음에 주말마다 기도를 드리러 갔었다. 또 몇 해 전에는 여름휴가로 템플스테이를 하며 절에서 일주일간 지내기도 했고, 여행을 다니던 시절에는 힌두교 사원에 가서 향을 올리기도 했다. 신도, 예법도, 장소도 모양도 다 다르지만, 각 종교가 가지고 있는 특유의 안정감은 나 같은 무교인도 마음의 평온을 얻도록 도와준다. 그중 산책을 하기에는 역시 절이 제일 좋은데, 그도 그럴 만한 게 대부분의 절들은 자연 속에 있기 때문이다. 법흥사 역시 산의 한 면이 모두 절이었으니, 한 바퀴 빙 둘러보면 긴 시간 동안 몸과 마음이 정화되는 걸 느낄 수 있다. 물론 절에서는 조용히! 그리고 여유가 된다면 불전함에도 슬쩍 감사의 표시(?)를 하고 말이다.

내가 찾아갔을 때는 이미 조금 늦은 시기라서 단풍과 낙엽이 많이 떨어진 상태였는데, 그럼에도 커다란 단풍나무가 아주 새빨갛고 예쁘게 물들어 있어서 다행이었다. 내년 봄에 집 마당에 팽나무를 하나 심을까 생각하던 중이었는데, 이렇게 크고 예쁜 단풍을 보니까 단풍나무로 바꿀까 하는 생각도 잠시 했다. 그렇게 풍경을 감상하며 찬찬히 길을 오르기 시작했고, 길이 잘 정돈되어 있다고 해도 역시나 산길은 산길, 올라가다 보니 풍경은 점점 눈에 들어오지 않고 숨이 차서는 헥헥거리게 되었다… 평소에 운동을 하나도 하지 않은 나를 반성하며, 몇 번이나 왔던 곳이고 힘도 들고 하니까 오늘은 그냥 여기에서 내려갈까 싶었는데, 멀리서 스님의 목탁 소리가 통통 들려왔다. 스님의 목탁 소리가 (그럴 리 없겠지만) 나한테 조금만 더 힘을 내라는 응원처럼 들려서, 잠깐 앉아서 쉬고는 다시 적멸보궁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도착! 휴, 역시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오를 때는 힘이 들지만 다 오르고 나면 이렇게 평화가 찾아온다. 스님의 목탁소리, 시원하게 열을 식혀주는 가을바람. 멀리 내려다보이는 가을의 산.

한참이나 앉아 가을이 지나가는 계절감을 만끽하다 절을 내려왔다. 바닥에 떨어진 단풍 몇 개를 주워 들고는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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