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 시리즈로 지난번

'남한산성이 품고 있는 종교, 천주교와 기독교'에 이어

오늘은 '민속신앙과 유교 그리고 불교'에 대해

알아보기로 합니다.

민속신앙의 흔적이 남아 있는 청량당

남한산성 청량산 정상에 있는 수어장대 입구에는

오래된 향나무 한 그루와 함께

청량당이라는 신당이 있어요.

청량당에서는 매년 도당굿이 열렸는데

산성 안에서 활동하던 무당들과

남한산성 성내동 주민들이 함께하는

대동굿으로 전수되었습니다.

50년대에 들어 끊겨 사라졌던 대동굿은

현재 남한산성 문화제에서 재현되어

지역축제의 행사로 이어지고 있답니다!

청량당은 매년 정월 초가 되면

남한산성 축성 시 억울한 누명으로

수어장대 뜰에서 참형당한 이회 장수를 비롯하여

남편의 억울한 죽음으로 강물에 투신자살한

부인 송 씨의 원혼을 위로하기 위해

인근의 무속인들이 올라와 치성을 드리던 곳입니다.

수어장대 우측 구석에는 이회 장수가 참수당할 때

그의 무고함을 증명하고자 매가 날아와

앉아 있었다는 매바위가 있습니다.

두 손을 바위에 얹고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설을 믿고

지금도 많은 사람이 그곳에 머무는데요.

남한산성에는 이처럼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많은 사연을 간직하고 있습니다.

남한산성 내에 현존하는 유교 의식, 제향

남한산성이 축성되었을 당시인 조선시대는

유교를 국교로 삼아 정치와 사회질서를 유지하고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 이념으로 삼았습니다.

유교는 종교라기보다는 사람이 지켜야 할

도리를 가르치는 학문적 성격이 강했지만

조선은 불교를 억누르는 수단으로

유교를 건국이념으로 삼은 것이죠.

그러다 보니 조선은 유교문화인

제사를 강조하였으며

조상을 신으로 모시는

종교 형태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남한산성 내에 사당이 많은 이유인데요!

남한산성에 있는 숭렬전은 1638년에 지었으며

백제의 시조 온조왕을 모신 사당입니다.

원래 이름은 '온조왕사' 였으나

1795년에 정조가 '숭렬전'이라

이름을 지어 주었다고 합니다.

숭렬전에는 남한산성을 쌓을 때 책임자였던

총융사 이서도 함께 모시고 있는데

신분이 다른 왕과 신하를 함께 모신 것이 특이합니다.

병자호란 당시 인조의 꿈에 나타난 온조가

혼자 있기에 외로우니 신하 중 한 사람을

보내 달라고 말했는데, 꿈에서 깨어나니

간밤에 이서가 병으로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이는 우연한 일이 아니라 여기고,

이서를 온조왕과 함께 모시도록 했다고 해요.

숭렬전 제향

광주시향토문화유산 무형문화유산 제1호

매년 춘계, 추계 2회 제향식을 개최하고 있습니다.

남한산성에 있는 현절사

사찰로 오해하시는 분이 있는데,

병자호란 때 청나라에 항복하기를 끝까지 반대했던

3학사(3學士) 홍익한, 윤집, 오달제 등

우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지어진 사당입니다.

1688년 광주유수 이시백에 의해 세워졌으며

이후 척화파의 대표였던 좌의정 김상헌

인조의 항복 당일 자결을 꾀하였던

이조참판 정온의 위패도 함께 모셔졌습니다.

충절을 장려할 목적으로 건립된 현절사

대원군이 전국 서원 및 사우를 철폐할 때에도

그 대상에서 제외되어 현재까지 존속되어 오고 있어요.

현절사는 죽어서도 임금을 향한

강직한 선비정신의 상징적 건물로 여겨집니다.

남한산성 불교의 흔적들, 사찰과 호국정신

조선시대 숭유배불 정책에도 불구하고

남한산성 내에는 모두 9개의 사찰이 있었는데요.

전국의 승군을 모아 산성을 축조하고

승병을 훈련해 군기, 화약, 군량미를 보관하고

적으로부터 임시수도인 산성을

방어하는 역할을 맡기기 위해서입니다.

전국 8도에서 올라온 승병들의 주둔지로

8개의 사찰을 세우고 모든 승병을 지휘하는 본부인

개원사까지 9개의 사찰이 있었으며

나중에 세워진 영원사까지

모두 10개의 사찰이 있어

십사(十寺)로 관리하였다고 합니다.

1907년 일제가 조선의 군대를 강제 해산하면서

산성의 모든 사찰을 폭파해 버렸고

나중에 장경사, 망월사, 국청사

그리고 개원사 4개의 사찰만이 복원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남한산성 내에 있는

다양한 종교의 흔적과 시설물을 찾아다니다 보니

산성에서 살았던 우리 선조들의 무고와

행복을 기원했던 삶과 마주하게 되어 숙연해집니다.

어느 시대를 살든 사람들이 바라고

추구하던 삶의 목적은

모두 비슷한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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