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엽 출입 금지

편안할 영(寧)과 넘을 월(越)

곱게 말라 떨어지는 낙엽을 바라보며 지난여름 저 나뭇잎이 얼마나 짙은 초록이었는지, 얼마나 싱그럽고 생명력이 넘쳤었는지 기억을 되살펴본다. 마당 한편에 자리 잡은 단풍나무는 꼬챙이처럼 생긴 묘목일 때 심었는데 벌써 밑동이 어른 팔뚝만 하게 자라서는 알록달록 색을 뿜어내고 있다. 뜨거운 햇살과 쏟아지는 빗물을 마시고 생생히 푸르렀던 낙엽들이, 이제는 바싹 말라 바스락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떨어지고 있다. 떨어지는 낙엽을 보는 내 감상은 작년과 조금 달랐다. 자연의 순리라거나, 시간의 흐름, 생명의 탄생과 성장과 노화와 낙하, 그리고 매서운 한 겨울을 보내고 난 뒤에 다시 솟는 초록잎의 경의로움… 이라기보다는 ‘후, 저건 또 언제 다 치우지?’ 하는 감상으로 말이다.

자연의 습격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지난번, 가을을 맞이해서 벌레 퇴치 대소동에 대한 이야기를 적었는데 이번엔 낙엽이다. 낙엽은 아름답다. 가을 하면 낙엽, 낙엽 하면 가을의 대명사가 아니겠는가. 고독과 외로움, 이제 땅으로 떨어져 흙으로 돌아가는 숭고한 순회의 이미지에 낙엽만큼이나 제격인 게 어디 있을까. 한철 푸르렀던 이파리들이 춤을 추듯 낙하하는 모습은 차분하고 쌀쌀한 가을에 딱 알맞다. 하지만, 역시 그 정도라는 것에 있어서 너무 많은 낙엽은 나를 노동케 한다. 처음 하나 둘 힘없이 떨어지는 낙엽을 창밖으로 바라볼 때는 ‘크, 역시 산속 풍경은 운치가 있지. 가을이었군!’ 했지만, 며칠 전 바람이 조금 불었을 때, 온 마당을 뒤덮은 낙엽을 보고는 ‘이건 겨울철 눈과 같군. 아름답지만 치워야겠어.’라고 생각했고, 지난날 바람이 세차게 불어닥친 이후에는 ‘하… 이거 어떡하지?’ 싶었다. 발목을 넘어서는 깊이의 낙엽은 공포다. 아무리 성능 좋은 송풍기를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겹겹이 쌓인 낙엽 앞에서 문명의 한계는 분명했다. 결국 사람이 갈퀴를 들고 한 땀 한 땀 끌어다 치우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노동은 당연히 나의 몫이다. 이 노동에 대한 고충을 지인인 서울 촌놈에게 토로했을 때, 그는 “낙엽 어차피 썩어 없어지잖아? 그냥 내버려두면 되지.”라는 말을 했다.

산을 뒤덮은 온갖 벌레들이 어디에 붙어살며 어디에 알을 까고 어디에서 살아가겠나. 바로 낙엽이다. 가을 풍경을 만끽하기 위해 마당을 덮은 낙엽을 그냥 둔다면, 곧 온갖 벌레떼가 슬금슬금 동침을 하러 찾아올 것이다. 그리고 따뜻한 낙엽 이불을 덮고 추운 겨울을 나려는 뱀 같은 놈들이 기어 올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적어도 사람이 사는 활동반경 내에서는 낙엽을 치워줘야 한다. 낙엽은 치우는 것도 문제지만, 없애는 것도 문제다. 나는 산에 사는 덕분에(?) 낙엽을 한데 모아 저 아래 절벽(?)으로 굴리면 청소가 끝난다. 하지만, 나처럼 마땅히 낙엽을 버릴 곳이 없는 사람들은 불장난을 할 수밖에 없다. ‘쓰레기봉투에 담아서 버리자!’라고 하지만, 그 또한 한 번도 낙엽을 쓸어 모아 본 적 없는 사람들이나 할법한 생각이다. 봉투도 봉투고, 봉투에 담는 노동이 추가된다는 점에서 그렇다. 그래서 여전히 시골 마을에서는 봄이나 가을철, 화재의 위험을 무릅쓰고 낙엽을 모아 불태운다(물론 불법이다). 물론 나는 겁이 많아 산속 집에서는 숯불도 피우지 않는다. 다만 멀리멀리 낙엽들을 밀어낼 뿐이다. 우리 집에는 낙엽 출입 금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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