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개처럼 스며드는 섬진강 먹그림,

향가유원지 야외 스케치

짙은 안개가 향가터널 방향으로 구부러진 길을 따라 자욱하게 피어오른다. 철로는 있지만 기차가 다니지 않는 순창에는 알려지지 않은 숨은 역사가 있다.

일제 강점기에 남원~광주 구간에서 군수물자 납품 및 순창, 남원, 담양에서 생산한 쌀을 수탈할 목적으로 철로를 가설했다. 철로 건설 당시 마을 주민들을 징집하여 강제 노역으로 만들었는데 이렇게 견고한 터널을 만들었으니 이 얼마나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인가!

옥출산 자락을 관통하는 384m의 터널은 광복이 되면서 방치되었다가 2013년 섬진강 종주 자전거길을 재정비하면서 순창의 아름다운 명소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곳을 올 때마다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섬진강에서 피어오르는 안개다. 희미한 듯 오묘한 안개는 숨기고 싶은 역사의 한 장면을 감추듯 향가터널 주변에 짙게 머무른다.

어두운 터널은 거미줄조차 앉을 새도 없이 움직임이 바쁘다. 바로 섬진강 자전거길 종주 코스가 터널을 관통하기 때문에 수시로 자전거가 따르릉 지나다니기 때문이다.

향가터널 입구에 무인공방이 생겨 체험하려는 사람들까지 모여드니 향가 주변은 언제나 사람들로 넘쳐난다.

오늘은 안개 짙은 아름다운 유원지이지만 역사 속으로 사라진 향가로 붓과 먹을 들고 야외 스케치를 떠났다.

고즈넉한 다리 위에 올라서면 세속적 고뇌가 운무처럼 사라지는 듯하다. 약속이나 한 듯이 섬진강이 가장 잘 보이는 다리 위에 화선지를 펼친다.

“은퇴하고 이제 붓을 들었으니 지금부터 죽을 때까지 취미로 생각하고 해야죠” 자녀들 결혼까지 다 시키고 40년 만에 고향인 순창으로 돌아온 여인의 화려한 욜로라이프가 섬진강 물줄기처럼 화선지에 휘몰아친다.

우리가 살면서 나이에 상관없이 평생 하고 싶은 취미가 있었던가! 누군가는 호기심으로 시작하거나 무료한 일상을 달래기 위해 하거나 어떤 목표와 함께 도전정신으로 하더라도, 붓을 든 취미란 그저 나이 들어 시간 죽이면서 동네에서 수다를 떨기 좋은 도구는 아니었을까?

옛날처럼 먹을 갈면서 하지 않아도 붓을 들고 화선지를 채우는 시간은 결코 수다 시간도 아니고 시간을 죽이는 킬링타임도 아니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고 내 마음의 흐트러짐을 바로잡아 삼묵의 번짐을 말이 아닌 붓으로 소리 없이 표현하는 것이다.

이런 고요한 시간을 보내고 향가터널을 걸으면 나의 현재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어두운 터널로 걸어가는 발걸음에 먹을 묻혀 과거도 미래도 아닌 오직 현재에 집중하는 나와의 시간을 붓으로 그려낸다.

이렇게 아픈 역사의 흔적이 있는 곳에서 내가 존재하는 시간에 감사하며, 과거의 현재의 공존을 먹그림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진정 취미생활이 아닐까.

오늘도 유유히 섬진강을 바라보며 흐르는 강물처럼 살다가 자욱한 안개처럼 사라질 인생의 한 페이지에 먹 한번 찍고 붓으로 크게 한번 웃는다.

위치 : 순창읍 풍산면 대가리

주변 명소 : 향가터널, 향가유원지, 수상레저, 향가오토캠핑장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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