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강 변 따라 만나는 '차윤주 차윤도 효자 정려각'

​미호동 대청로에서 차윤주 차윤도 정려각 표지판을 따라 금강 쪽으로 150m 이동하면 금강생태벨트 조성지를 지나 정려각이 서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유교적으로 효자, 열녀 등을 기리며 정부에서 정려를 내려 표창하고 기념하면서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려고 했는데, 차윤주 차윤도 정려각은 효자 정려각입니다.

정려각 안에는 비가 두 개 있는데, 형인 차윤주, 동생인 차윤도의 내용을 적은 비석입니다. 차윤주, 차윤도 형제는 18세기 정조 때 회덕 미호리에서 태어났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부모에게 얼마나 효행이 지극했는지 널리 소문이 났다고 합니다.

​19세기인 고종 17년(1880)에 고종은 차윤주 차윤도 형제의 효행에 감탄하며 교지를 내리고 목재와 목수를 보내 이 효자 정문을 짓게 했다고 합니다. 효자 정려 교지를 내린 것은 1880년인데, 효자 정려를 세운 것은 고종 28년인 1891년이었다고 합니다.

효자 정려를 세울 때 걸었던 편액은 언제인지 모르는 시기에 없어지고, 지금 졍려각 안에 있는 비는 후손들이 정려의 내용을 담아 새로 만든 비라고 합니다.

​앞에서 볼 때 오른쪽의 비에는 '효자동몽교관증차윤주지려 명정효려 고종신묘삼월일'이라고 새겼고, 왼쪽에는 '효자동몽교관증차윤도지려 명정효려 고종신묘삼월일'이라고 새겼습니다. 고종 신묘년이면 1891년입니다.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황제 자리에 오른 것이 1897년이었으니 1891년은 고종황제 5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대한제국 시기에서 비롯된 비석이라는 것은 효자 정려 옆에 있는 비석 상단 지붕돌인 옥개석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옥개석에는 대한제국 황실 문양인 오얏꽃을 새겼고, 받침돌에도 오얏꽃을 새겨서 대한제국 황실에서 내린 것을 기초로 한 것을 보여줍니다.

비석 오른쪽에는 '교관공형제효자지비'라고 새겼고 왼쪽에는 끝에 판서, 참판, 참의, 삼정랑, 삼좌랑 등 벼슬 명칭이 보입니다.

​'교관공'이란, 조선시대 어린이 교육을 담당하던 관리로 각 군현에 두었다는 관직 명칭입니다. 비석 뒷면에는 이 비를 세운 연안차씨 후손들이 한글로 내용을 새겼는데, 이 비석은 후손들이 효자 조상으로 기리며 1988년 3월에 세운 것이라고 합니다.

차윤주 차윤도 효자 정려각을 보고 있는데 금강 변 트래킹을 마치고 돌아가는 분들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두 형제의 정려각 뒤에는 멋진 소나무가 있는데, 정려각과 함께 조화롭게 서 있습니다. ​정려각에서 10m 정도만 내려가면 금강로하스해피로드 금강 변 데크길입니다.

데크길 데이트를 마친 연인의 모습도 보입니다. 이날 날씨가 포근해서 많은 분이 금강로하스해피로드 데크길을 걸었습니다.

금강로하스해피로드 금강 변 데크길에는 오래된 것으로 보이는 '차윤주 차윤도 효자 정려각' 표지판도 있고, 넷제로공판장까지 100m 만 가면 커피 등을 마실 수 있다는 안내도 있습니다.

물론 개인 텀블러가 있으면 물도 무료이고 화장실도 이용할 수 있는데, 이날처럼 넷제로공판장이 문을 닫은 날에는 헛걸음을 할 수도 있으니 넷제로공판장 안내판에 전화번호 표기도 해놓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title":"금강 변 따라 만나는 '차윤주 차윤도 효자 정려각'","source":"https://blog.naver.com/daedeokgu/223777924771","blogName":"내 일상이 ..","domainIdOrBlogId":"daedeokgu","nicknameOrBlogId":"대덕구","logNo":223777924771,"smartEditorVersion":4,"lineDisplay":true,"outsideDisplay":false,"meDisplay":true,"cafeDisplay":true,"blogDisplay":tru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