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예기자] 탑산의 흔적을 찾아서
강서구에는 생각보다 많은 산이 있습니다. 그간 우장산과 수명산(발산), 개화산과 치현산, 봉제산과 까치산, 궁산과 망동산 그리고 증미산(염창산)을 연이어 소개했습니다.
오늘은 10번째로 탑산(塔山)입니다. 탑산은 겸재 정선의 그림 속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공암층탑(孔岩層塔)’이란 그림을 살펴보면, 산 중턱쯤 탑이 보입니다. 그래서 이곳이 탑산이라 불렸던 것이지요. 오늘날 허준박물관이 자리한 언저리로 보면 될 듯합니다.
고구려 시대에는 오늘의 강서구와 양천구 일대를 ‘제차파의현(齊次巴衣縣)’이라고 했습니다. 이두로 ‘제차파의’란 차례대로 가지런히 서 있는 바위라는 뜻입니다.
신라 경덕왕이 구멍 뚫린 바위란 의미의 ‘공암(孔岩)’으로 고쳤습니다. 옛 한강 공암 나루터는 양천 허(許) 씨의 발상지로 알려진 허가바위의 유래가 깃들어 있습니다.
이곳에서 허준은 ‘동의보감’을 최종 집필한 것으로 알려져 있고요.
또한 구암근린공원(지금은 허준근린공원) 내 호수의 바윗덩어리는 큰 홍수 때 이웃 광주 땅에서 떠내려와서 광주 바위라고 불렀다는 전설이 전해집니다. 1980년대 올림픽대로를 건설하면서 강둑을 쌓아 커다란 바위들이 육지 속에 갇힌 것이지요. 한강 물이 이곳까지 드나들던 옛 정취를 조금이라도 살리려 자그마한 연못을 꾸며놓았으니 여간 다행히 아닙니다.
또한 연못 주변의 초등학교 이름도 ‘탑산’으로 하여 역사의 흔적을 남겨놓았답니다.
공암나루는 양천과 행주를 잇던 나루터로 한때 북포나루라고도 하였습니다.
허준박물관 내 약초원이 자리한 얕은 산 아래 공암 바위가 있고, 그 앞에 공암나루터 표지석이 있습니다.
영등포공업고등학교 정문에서 길 건너편입니다. 이곳까지 한강 물이 닿았음을 한 번 더 확인할 수 있는 곳이지요.
한편, 산기슭에 남아 있던 탑은 일제강점기에 종적을 감췄다고 하니 아쉬움이 큽니다.
강서구가 자랑하는 역사적 인물은 구암 허준과 겸재 정선입니다.
허준은 이곳 양천에서 태어나 동의보감을 집대성하여 한의학의 틀을 완성하였습니다.
정선은 양천현령 시절 ‘공암층탑’ 등 수많은 진경산수화를 남겨 양천의 옛 모습은 물론 허준 시대의 역사 문화적 발자취를 살펴볼 수 있도록 이바지한 바가 매우 크다고 하겠지요.
허준박물관과 겸재정선미술관이 강서구에 세워진 연유입니다. 위대한 두 거인은 우리 동네의 자랑거리입니다.
일반적으로 탑산은 산의 높이도 매우 낮고, 잘 알려지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탑산과 그 주변은 허준박물관과 구암근린공원, 광주 바위와 허가바위 등 강서구에 숨어있는 지역의 내력과 곡절을 들여다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소중한 곳입니다.
여름으로 가는 푸릇푸릇 한 계절의 문턱입니다. 우리 동네의 귀하고 유익한 유적지를 가족들과 함께 찾아가는 즐거운 역사 탐방의 기회를 가져보세요.
강서까치뉴스 박찬익 명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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