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시간 전
[블로그기자단] 역사에서 배우는 교훈, 서울 송파구 삼전도비를 찾아서
글·사진: 블로그 기자단 이재형
여러분은 삼전도비를 아시나요? 서울 송파구 잠실동에는 우리 역사에서 잊지 말아야 할 비석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삼전도비’입니다. 이 비석은 병자호란 당시 조선이 청나라에 항복한 후 인조가 삼전도에서 굴욕적인 항복을 선언했던 역사적 사실을 알리기 위해 청나라의 강요에 따라 1639년 세운 비석입니다.
오늘은 이 역사적 현장을 방문하고 삼전도비가 전하는 교훈을 되새겨 보겠습니다.
삼전도비는 서울 송파구(송파나루길 256)에 있는데요, 대중교통으로 갈 때 지하철 2·8호선 잠실역 3번 출구에서 직진 방향으로 285m 걸어가면 우측에 있습니다. 석촌호수 인근에 있는데, 주변에 롯데월드 등 관광지가 많아 주차장이 있어도 주말과 휴일에는 주차가 어려우니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이 좋습니다.
지하철 3번 출구로 나와 롯데월드 남문 방향으로 걸어가는 길입니다. 이 길 끝으로 건널목이 있는데, 길 건너편에 삼전도비가 있습니다.
삼전도비로 들어가기 전에 송파구 관광안내도와 한성 백제 왕도길 안내판이 있습니다. 한성 백제 왕도길 중 석촌동 고분길은 역사의 자취를 추적해가며 강대했던 백제문화와 백제인의 혼을 느껴볼 수 있는 코스로 삼전도비→왕명석·백제의 배·기마상→석촌동 고분군→석촌시장→송파책박물관까지 3.1km 1시간 거리입니다.
삼전도비 입구에 ‘서울 삼전도비’ 안내판이 있습니다. 안내판을 꼼꼼하게 읽어보니 삼전도비 유래와 왜 이곳에 있는지 연혁이 한글과 영어로 병행 표기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안내판 아래에는 ‘삼전도비 이전 안내문’이 검은 돌에 새겨져 있습니다.
삼전도비는 비각이 따로 없고 눈비를 피할 수 있는 시설 안에 있습니다. 관람객이 비석을 훼손하지 않도록 출입은 금지되어 있지만, 가까이에서 볼 수 있습니다.
삼전도비(三田渡碑)는 1639년(인조 17년)에 세워졌습니다. 높이 3.8m, 폭 1.4m 크기의 비석에는 한문으로 ‘대청황제공덕비(大淸皇帝功德碑)’라는 제목이 새겨져 있습니다. 비문 내용은 청나라 태종이 조선을 용서하고 은혜를 베풀었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요, 말이 은혜지 사실은 삼배구고두례(三拜九叩頭禮)의 치욕이었죠. 삼배구고두례는 중국의 황제에게 충성을 맹세할 때 행하는 전통적인 조공(朝貢) 의례입니다. ‘삼배(三拜)’는 세 번 절하는 것을 의미하며 ‘구고두(九叩頭)’는 한 번 절할 때 머리를 바닥에 세 번 박는 행동을 총 아홉 번 반복하는 것을 뜻합니다. 즉, 총 세 번 절하면서 머리를 아홉 번 땅에 조아리는 예법입니다.
1637년 조선의 인조는 남한산성에서 항전했지만 결국 패배하고 삼전도(현재의 송파구 삼전동)에서 청 태종에게 항복해야 했습니다. 이때 인조는 남한산성 서문을 통해 내려가서 굴욕적으로 삼배구고두례를 행하며 청 태종에게 충성을 맹세했습니다. 저도 남한산성 갈 때 서문을 봤는데요, 이 문을 통해 나갈 때 인조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당시 조선은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키기 위해 청나라의 군신 관계 요구를 거부했지만, 결국 병자호란으로 인해 인조가 남한산성에서 47일간 항전하다가 삼전도에서 항복하는 상황을 맞았습니다. 삼전도비는 조선이 청나라에 굴복했다는 사실을 후대에 알리기 위한 것이었는데요, 부끄러운 역사입니다.
남한산성 서문에서 보면 우뚝 솟은 제2롯데월드가 보입니다. 주말과 휴일이면 가끔 남한산성 성곽을 걷는데요, 서문 주변이 송파구 일대를 조망할 수 포인트입니다. 특히 밤에 야경이 멋져서 사진을 찍으러 오는 사람이 많습니다.
삼전도비 이전 안내문을 보니 원래 한강 변 나루터 인근에 세워졌으나 이후 여러 차례 이전되었고 현재의 위치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치욕의 역사물이란 이유로 수난과 여러 번 이설을 거듭해 온 것이죠. 1980년대 송파대로 확장 시 석촌동 289-3 주택가 공원에 세워져 있던 비를 원래 위치를 고증하고 문화재 경관 심의를 거쳐 잠실동 47 위치로 이전하였다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2010.4 송파구)
삼전도 비신(碑身) 떠받치고 있는 것은 받침대인 귀부(거북이 모양)입니다. 그런데 비를 정면에서 볼 때 좌측에 비신이 있고요, 우측 거북이는 비신이 없습니다. 왜 그럴까요? 안내문을 보니 병자호란이 끝난 후 청 태종의 전승 기념을 위해 비를 건립하던 중 더 큰 규모로 비석이 조성되기를 바라는 청나라 측의 변덕으로 원래 만들어진 귀부가 용도 폐기되면서 남겨진 것으로 추측하고 있다고 합니다.
당시 정황을 근거로 청의 강요로 귀부가 새로 제작된 것이라고 문헌 사료를 통해 검토하여 기록한다고 안내문에 적혀 있습니다. 이런 것까지 청나라가 간섭했다니 놀랍네요. 그래서 원래 만들려던 귀부에는 비신이 없이 남아 있습니다.
청나라 황제를 위한 비석이라 그런지 비신 가장 위에 용과 여의주가 있습니다. 청나라에서 볼 때는 화려할지 모르지만, 조선의 처지에서는 상당히 굴욕적인 것이죠. 그래도 삼전도비는 우리가 역사를 되새기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중요한 유물입니다.
삼전도비는 단순한 유물이 아니라 역사적 교훈을 담고 있습니다. 바로 강한 국방력이죠. 병자호란 당시 조선은 제대로 된 군사 대비 없이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키려다 국가적 위기를 불러왔죠. 삼전도비는 우리에게 자주국방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조선은 명나라와의 의리를 중시했지만, 국제 정세를 고려하지 않은 채 감정적인 외교를 펼쳤습니다. 결과적으로 병자호란이라는 비극을 맞이했죠. 오늘날 우리는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외교 전략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배울 수 있습니다.
삼전도비는 조선 후기의 역사적 전환점이 되었으며, 이후 북벌론(北伐論)이 대두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역사를 단순히 과거의 기록으로 여기는 것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적용할 수 있는 교훈으로 삼아야 합니다.
삼전도비를 방문한 후 서울의 벚꽃 명소 석촌호수를 방문하면 좋습니다. 삼전도비에서 1분 거리입니다. 석촌호수는 사계절 아름다운데요, 조금 있으면 만개한 벚꽃으로 많은 사람이 방문할 겁니다. 저도 빨리 벚꽃이 보고 싶네요.
지금까지 삼전도비를 소개해드렸습니다. 어떻게 보셨나요?
삼전도비를 통해 우리는 역사를 기억하고 이를 통해 현재와 미래를 더욱 지혜롭게 대비할 수 있습니다. 서울 송파구에 있는 삼전도비를 방문하면, 바로 그 현장에서 병자호란의 역사와 교훈을 직접 되새겨볼 수 있습니다. 조금 있으면 석촌호수의 만개한 벚꽃도 볼 수 있을 텐데요,
석촌호수 방문할 때 삼전도비도 잊지 마세요.
<삼전도비>
위치: 서울 송파구 송파나루길 256
공영주차장 : 서호1 공영주차장, 24시간 운영
주차료: 5분당 500원
※ 지하철 2·8호선 잠실역 3번 출구에서 285m
※ 본 기사는 블로그 기자단이 작성한 글로, 송파구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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