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시간 전
전북 고창의 아름다운 정자 너른 들녘에 두둥실 떠오르는 듯한 석탄정
전북 고창의 아름다운 정자
너른 들녘에 두둥실 떠오르는 듯한
석탄정
고창읍에서 머지않은 곳에 있는
정자 석탄정(石灘亭) 입니다.
주변은 온통 논과 밭인데요,
석탄정이 있는 곳은 단단한 암반 위여서 유독 불록 튀어나온 곳이기에
주변 너른 들과 고창천을 보면서 유유자적 풍류를 즐기며 학문을 논하고
제현들과 교유하기 딱 좋은 곳으로 보입니다.
거기에 초봄과 늦가을 차가운 공기가 실개천과 만나면서
운무라도 피어오르면 솔숲에 가려진 정자가 두둥실 떠오른
환상적 풍경일 것 같은 생각도 드는데요,
석탄정은 어떤 곳인지 들어가 봅니다.
앞에는 느티나무 뒤에는 소나무가 우거져 잎이 무성해지면
멀리서 석탄정이 안 보일 수도 있는데요,
누가 언제 왜? 석탄정을 너른 들녘에 지었는지
궁금하게 합니다.
입구에 마치 신도비처럼
‘석탄유선생남하유허비’라는 비석과
‘수군만호유동인선생충의비’, ‘효자비’ 등이 서 있습니다.
석탄정의 주인공은 석탄 유선생이고
그분이 남쪽으로 내려와 터를 잡았다는 유허비에다
후손들이 충신이고 효자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석탄정 입구에 있는 비각입니다.
오래된 비석에 보호각을 씌웠는데요,
충신이나 효자에게 나라에서 내린 정려비에 보호각이 있는 것은 봤지만,
정려는 아닌 걸로 보여 어떤 내용인지 궁금합니다.
비석에는 앞면에 通訓大夫行靑嚴道(통훈대부행청엄도),
뒷면에 柳公諱澐遺墟墟(유공휘운유허비)라 쓰였고
옆면에는 고흥 찰방이라고 쓰여 있어 석탄정의 주인공이
고흥 찰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석탄정 외삼문은 양쪽으로 하나씩 있는데요,
느티나무와 비각이 있는 곳에 석탄정 안내문이 있습니다.
간략한 안내문에 의하면
석탄정은 석탄 유운(石灘 柳澐,1547~1611)이
1581년 낙향해 세운 정자로 1830년에 중건한 정자입니다.
유운은 고흥유씨이지만, 한양에서 살았다는데요,
문장이 탁월해 나라에서 청암도(현재 나주의 청암역)찰방(종6품)을 제수했지만,
사양하고 외가인 고창으로 내려와 석탄정을 짓고
제현들과 학문을 논하며 유유자적 살았다고 합니다.
석탄정은 석탄 유운의 호를 따서 붙여진 이름으로
현재 담장 안에는 석탄정과 상풍루가 있습니다.
석탄정은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이고 뒤에 있는 상풍루는
후손들이 모여 모임을 갖는 누각인데요, 비교적 최근에 지은듯합니다.
석탄정에는 각종 시문이 쓰인 편액이 전면과 양 측면에 빼곡합니다.
오죽하면 걸 곳이 부족해 방 뒤쪽 아궁이가 있는 곳까지 붙였을까요?
그만큼 많은 선비들이 다녀가며 글을 남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편액 중 낯익은 이름도 보이는데요,
석탄정 중수기를 쓴 송병선(宋秉璿, 1836~1905)과
시문을 쓴 송병순(宋秉珣, 1839~1912)입니다.
두 분은 송시열 9대 손으로 형제입니다.
송병선은 조선 말기 유학자로 을사늑약 당시 고종을 알현하고
상소 10조를 바치며 진언했고 벼슬을 버리고 귀향해
그해 음독 자결한 애국지사이고 동생 송병순은 1910년 경술국치로 나라를 뺏기자
투신자살을 시도했으며 실패로 끝나자 1912년 일제가 회유책으로 낸 벼슬을 거절하고
유서를 남긴 뒤 음독 자결하신 애국지사입니다
송병선이 쓴 석탄정 중수기에는
석탄이 낙향해 정자를 짓고 살다 자호를 석탄이라 지었으며
정자 이름도 석탄정이라고 지었다는 내용과 석탄이 고기 잡고 나무하며
글과 술로 낙을 삼고 풍류와 어울렸음을 알 수 있다고 합니다.
방은 1칸 온돌방입니다. 뒤쪽으로 아궁이가 있어 알 수 있는데요,
대부분의 정자의 방이 마루방인 것에 비해 온돌방이라는 것은
석탄이 정자에서 거주하며 고창천에서 낚시하고 나무를 캐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는 것도 알 수 있습니다.
정자 뒤쪽으로 아궁이도 있는데요,
난방을 위해 불을 지피고 가마솥도 올려 음식도 조리한 공간으로 보입니다.
지금은 담장이 둘러 있지만, 처음 지었을 당시에는
담장이 없고 바로 고창천이 보였을 것 같은데요,
고창 동헌이 있던 고창읍성에서 머지않은 곳이지만,
인적 없는 한적한 너른 들녘 한가운데 있어 정자의 뜻 그대로
돌과 여울이 있는 석탄(石灘)에서 세상을 멀리하고
유유자적 살았음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1581년 세운 정자가 오래되자
1830년 후손들이 옛 모습대로 중건한 석탄정은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으로 후손들이 선조의 음덕을 숭상하고자
옛 모습 그대로 이어가고 있으며 석탄정 바로 뒤에 석탄정을 영구히 보존하고자
1981년 후손들이 모이는 공간까지 만들었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석탄정을 보존하기 위한 후손들이 모이는 공간 상풍루(爽風樓)입니다.
사방으로 문을 들어 올리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정자 맞습니다.
석탄정 주변에 가볼 만한 곳은 석탄의 후손 유영선이 강학한
전북특별자치도 유형문화유산 현곡정사가 있고
일제 강점기 유학자 김정회 고가도 있으니
함께 둘러보면 좋은 고창 문화유산여행입니다.
#전북여행 #고창군 #고창여행 #국가유산 #고창석탄정 #고창문화유산여행
- #전북여행
- #고창군
- #고창여행
- #국가유산
- #고창석탄정
- #고창문화유산여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