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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9일 전
쌍청당 송유와 은진송씨 가문의 역사가 있는 판암동 마을여행
대전광역시 동구는 사성동 유적과 비룡동 선사유적,
세천동 선사유적, 삼정동 선사유적 등에서 발굴된 고인돌이나 무늬없는 토기편, 김해식 토기 등으로 보아
청동기시대에도 사람들이 살고 있었다고 추정되는 지역입니다.
그만큼 사람이 살기 좋은 환경을 갖고 있다는 것인데요.
판암1동과 2동의 행정동으로 이루어져 있는
판암동도 역사 깊은 지역으로서, 마을길을 걸으며 볼만한 곳이 있어 소개합니다.
<판암동 마을여행 코스>
📍쌍청당 암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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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옹 송갑조 신도비와 후기비, 쌍청당 송유 묘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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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판암동 왕버들 보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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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유와 송갑조의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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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청당 제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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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쌍청당 송유 시비
총 길이는 약 1㎞인데, 대부분 평지이고 묘역만 산으로 올라가는 조금 가파른 길이에요.
쌍청당 암각은 거의 다듬지 않은
자연 암석에 글자를 새겨 넣은 일종의 지명각석(地名刻石)입니다.
앞면에는 ‘雙淸堂睡翁二墓在乾方二百五十步 百代(쌍청당수옹이묘재건방이백오십보 백대)’라고 새겨져 있는데요.
‘쌍청당(송유)과 수옹(송갑조)의 묘는 서북쪽 250보 되는 곳에 있다. 백대의 청풍이오, 삼한의 정기로다.’
라는 뜻입니다.
“이 글귀는 숙종 13년(1687)에 김수증이 팔분체(八分體)로 썼다는 기록이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전하는데,
김상헌의 손자인 김수증은 제월당 송규렴의 손위 처남으로
우암 송시열과도 깊은 교분을 나누었던 사이였으며,
팔분체에 능했던 인물이다.
이처럼 쌍청당 암각은 1680년 경신환국(庚申換局)으로
정계에 복귀한 우암이 회덕에 은진송씨의 뿌리를 내린 쌍청당 송유와
자신의 아버지 수옹 송갑조를 위해 김수증에게 부탁하여 글자를 새겼다는 이야기가 담긴 지명각석으로,
예술적‧지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유산이다.”
<쌍청당 애각 안내판>
또 옆면에는 ‘淸風(청풍)’, 뒷면에는 ‘三韓正氣(삼한정기)’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지난 2021년 대전시 문화재로 지정됐는데요.
문화재 지정 전에는 쌍청당 애각이라고 불렀습니다.
동구행복한어르신복지관 뒤쪽에 있어요.
쌍청당 암각에서 동부로33번길을 따라 길 북쪽으로 쌍청당제실과
송유, 송갑조 등의 묘역이 있다는 표지석이 있습니다.
그래서 산소골이라고 불렀대요.
암각에서 150m 가량 떨어진 곳에 비석군이 있습니다.
쌍청당 송유 묘표와 송갑조 신도비, 후기비 등 세개의 비석인데요.
앞쪽 좌측이 수옹송갑조 신도비, 우측이 수옹송갑조 후기비, 그리고 후면 가운데 쌍청당 송유 묘표입니다.
비석마다 비대석과 가첨석 모양이 다릅니다.
이 비석군은 쌍청당 암각과 함께 2021년 대전시 문화재로 지정됐습니다.
수옹 송갑조는 우암 송시열의 아버지인데요.
신도비에는 그의 덕행과 절의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글은 송시열이 짓고 글씨는 신독재 김집이 썼으며,
전액은 김상헌의 손자 문곡 김수향이 썼다고 하네요.
그런데 신도비를 받치고 있는 비대석을 자세히 보면 일렬로 구멍 같은 게 있는데요.
아마도 다듬기 위해 잘라내려고 했던 흔적이라고 합니다.
비석군은 바로 뒤 수령 150년(1990년 보호수 지정 당시 수령 120년)의 왕버들 보호수가 지키고 있습니다.
나무 둘레가 3.5m나 된다고 하는데요.
대전의 보호수 대부분은 느티나무이고, 왕버들 보호수는 그리 많지 않아요.
거친 나무껍질과 무더운 한여름에 더욱 푸르게 늘어진 가지와 나뭇잎이 멋들어집니다.
왕버들 보호수에서 조금 북쪽으로 오른쪽에는 쌍청당 제실이,
왼쪽에는 쌍청당 송유 시비가 있습니다.
시비 옆으로 난 돌계단을 따라 오르고 산길을 조금만 올라가면
한옥 오빈문(娛賓門)이라는 현판을 단 문이 있는 한옥이 보입니다.
이곳을 지나쳐 조금 더 올라가면 묘역이 있어요.
바로 송갑조와 송유, 쌍청당의 7세손 송수록의 묘가 차례로 조성돼 있습니다.
이곳 쌍청당 묘역(雙淸堂 墓域)은 충청지역에서 명당으로 꼽는 지역인데요.
이 일대에 은진송씨 가문의 묘가 모여있는데,
봉분을 크게 만드는 것이 은진송씨 가문 묘의 특징이라고 합니다.
경헌공 송갑조는 우암 송시열의 아버지이고,
쌍청당 송유는 우암 송시열의 8대조,
동춘당 송준길의 7대조가 됩니다.
즉 이 묘역은 우암과 동춘당 집안의 만남의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묘역에서는 문인석을 자세히 살펴보면 좋은데요. 다른 묘역의 문인석과 매우 다른 모습을 갖고 있습니다.
묘역에서 내려오는 길에 오빈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ㄱ자로 앉힌 한옥에 자락당(自樂堂),
폐백실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요.
문 하나를 더 통과하니 쌍청회관이라는 편액을 건 전면 7칸의 一자형 한옥이 있습니다.
원래는 제를 지내기 위한 건물이었던 곳이 쌍청회관이라는 편액을 걸고
전통혼례를 주로 하는 예식장으로 사용됐었는데요.
최근에는 영업을 하지 않는 것으로 보입니다.
마을 주민에 따르면 은진송씨 가문에서 임대를 주었었다고 하는데 임대기간이 만료됐다고 하네요.
현재는 쌍청전통문화원이라는 이름으로 전통 체험과 혼례, 전통놀이 등
조선시대 전통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공간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쌍청당암각
대전광역시 동구 동부로33번길 1
📍수옹 송갑조 신도비 및 후기비
대전광역시 동구 판암동 511
📍판암동왕버들보호수
대전광역시 동구 동부로33번길 8
📍송유와송갑조의묘
대전광역시 동구 동부로33번길 8
📍은진송씨쌍청당제실
대전광역시 동구 동부로33번길 46-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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