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산시 강경은 넓지 않은 동네인데 그곳에는 여러가지 의미있는 역사 문화가 엄청 많아서 매우 큰 동네라는 느낌이 듭니다.

이번에는 옥녀봉 공원에서 가볼만 한 곳 두 곳을 소개하려고 합니다.

​옥녀봉 공원은 논산시 걷기 코스 중에서 성지순례코스(4코스)의 중간에 있습니다.

강경젓갈거리에서 출발하는 성지순례코스는 강경갑문을 지나 강경포구에서 옥녀봉공원으로 올라와 기독교침례교회 최초 예배지를 지나 언덕에서 내려가 등록문화재인 강경성결교회 예배당, 강경성결교회 신사참배 거부탑과 성 김대건 신부 첫 사목지까지 약 2.5km 정도의 코스입니다.

종교 관련 장소로 코스의 중간에 있는 이곳은 기독교한국침례교회 국내 최초 예배지입니다.

조선 말기에 걍경에서 인천으로 배를 타고 오가며 포목장사를 했던 지병석의 집이었다고 합니다.

미국 보스톤 침례교단에서 온 파울링 선교사가 1896년 2월 9일에 지병석의 집에서 첫 예배를 드렸다고 합니다.​

​기독교침례교인들에게는 정말 의미있는 장소일 것입니다.

기독교 한국침례교는 이곳에서 태동해서 이곳은 '강경침례교회'의 시작이기도 합니다.

강경포구는 외지에서도 배를 타고 들어오는 분들이 많았던 곳이기 때문에 문화적으로도 더 개방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포목장사를 하던 지병석은 장사를 하면서 돈을 많이 벌 수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물론 이 집은 복원해서 깨끗하긴 한데, 초가이긴 하지만 안방 문이 4합 들어열개문으로 되어 있습니다.

초가에서 이런 문을 가진 곳은 찾아보기 쉽지 않을 것입니다.

아마도 ㄱ자 초가에 들어열개문을 활짝 열고 대청까지 사람들이 많이 모여 예배를 드렸을 것으로 상상됩니다. ​

푸릇푸릇한 새봄이 싱그러운데 곳곳에는 영산홍이 활짝 피어서 더 화사한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길을 따라 서있는 안내판은 한국침례교의 초기 활동에 대한 기록입니다.

​기록에 의하면 이곳이 한강 이남에 지어진 최초의 'ㄱ'자형 교회라고 합니다.

남녀칠세부동석인 유교사회의 사상에 따라 남녀 자리를 분리해서 ㄱ자형 교회를 갖게됐다고 하지요.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옥녀봉에 신사를 짓는다고 침례교를 탄압했다고 합니다.

여러 명이 투옥되고 순교하는 과정 속에 버티지 못하고 증여 형식으로 땅과 교회를 일제에게 넘겼고, 1943년에 교회를 폐교하고 신사 부지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사진 속에 ㄱ자 모양의 초가 건물이 보입니다.

​한국기독교침례회 최초 예배지를 지나면 넓은 잔디밭이 펼쳐집니다.

언덕 위에 어떻게 이런 평지가 있는지 신기한 생각이 드는데, 이곳에는 강경항일독립만제운동기념비도 있습니다.

국가보훈부지정 현충시설인데, 1919년 기미년 3월 10일 강경읍 장날을 이용해 모인 500여 명의 국민이 옥녀봉에 보여 독립만세를 부르며 마을로 내려가 시위운동을 했다고 합니다.

​1919년 3월 20일 제2차 만세운동에는 무려 1천 명이나 모였다니, 지금 생각해도 어마어마한 숫자입니다.

강경항일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1985년에 이 비를 건립했다고 합니다.

​성지순례코스 안내판을 보면서 길을 따라 내려갑니다.

산 모양 조형물이 멋진 울타리에 논산시 농산물 공동브랜드인 '육군병장'이 경례를 하며 방문객을 맞이합니다.​

​옥녀봉 공원을 대각선으로 지나 길을 따라 내려가면 문학이 탄생한 멋진 공간이 있습니다.

이곳은 박범신 작가의 소설 '소금'에 등장하는 소금집이 있던 곳입니다.

​설명을 보면,

'논산 강경과 탑정호 일대를 배경으로 우리 시대 아버지의 초상을 감동적으로 그려낸 장편소설 <소금>에서 주인공 선명우가 가출한 후 새로운 삶을 열어갔던 보금자리로 설정된 집'이라고 합니다.​

​뒷모습은 여러가지 의미를 담고 있어서 앞모습을 보는 것보다 더 마음 속 깉이 다가옵니다.

벽화 속의 인물은 금강을 보며 말을 들려주는 것 같습니다.

"이것저것 나누지 않고 하나로 합쳐 도저하게 흐르는 것이야말로 강물의 일이 아니던가"

'도저하다', 생소한 말은 알고 가야죠~!

'도저(到底)하다'는 '밑에 이르다'는 한자어로, '반듯하다' , '심오하다'는 의미의 단어입니다.​

​'흐르고 머무니 사람이다'

'달고 시고 쓰고 짜다'

같은 한국말을 쓰는데도 필자와 같은 일반인은 하지 못하는데, 작가는 정말 아름다운 말을 만드는 마술사같습니다.​

​벽면의 뒤에는 염전에서 일을 하는 사람의 그림이 있습니다.

"소금은... 달고 시고 쓰고 짜다. 인생의 맛이 그런거지. 아. 사랑하는 당신도 달고 시고 쓰고 짜다."

인생의 맛, 사랑의 깊은 맛을 작가는 이렇게 글로 담았습니다.

몇년 전에 번듯하게 복원한 이 집은 소설 '소금'에 등장하는 아버지 선기철이 운영하는 소금집입니다.

가출을 한 선명우는 선기철의 아들인데, 선기철은 자신의 모든 운영을 걸고 셋째 아들 선명우의 뒷바라지를 했다지요.

그 시대 여느 아버지들이 그랬던 것처럼.

지금은 번듯하지만, 필자가 거의 십 년 전? '소금'의 배경지로 알려진 이곳에 왔을 때에는 거의 낭떠러지에 가까운 땅에 아주 낡고 문짝도 떨어진 판자집 같은 건물이 있었습니다.​

몇년 전에 왔을 때에도 내부를 볼 생각은 못했는데, 그냥 집만 있을 것처럼 보였거든요.

이번에는 내부를 들여다 보았더니~~!

마치 영화를 찍어도 될 정도로 이것저것 소품을 갖춰놓은 모습이었습니다.

가마니는 소금가마니로 보이는데, 오른쪽에 지금은 '오르간'이라고 부르는 풍금이 놓여있는 것이 보입니다.

단, 벽에 붙어있는 '선기철 소금' 표지판이 너무 새거라서 약간 어색했습니다.

관계자분이 이 표지판에 기름을 멱여서 좀 어두운 색으로 물들이면 더 좋지 않을까 생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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