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시간 전
[외국어콘텐츠]南海で一度は行きたい場所、李舜臣将軍の勝戦の道、忠烈祠
이순신 장군의 넋이 어린 아름다운 남해의 바닷길을 걸으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와 마음의 평안함을 얻어가는 이순신 승전 길에
남해 충렬사가 있습니다.
李舜臣将軍の魂が伝えられる、美しい南海の海沿いを歩きながら
危機を克服することが出来る知恵と、心の平安を感じさせる李舜臣勝戦の道に
南海忠烈祠があります。
거리에는 이순신 장군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습니다.
이순신 <진중음>
님의 수레 서쪽으로 멀리가시고
왕자들 북쪽에서 위태한 몸
나라를 근심하는 외로운 신하
장수들은 공로를 세울 때로다
바다에 맹세하니 용이 느끼고
산에 맹세함에 초목이 아네
이 원수 모조리 무찌른다면
내 한 몸 이제 죽다 사양하리오
이 시는 임금과 왕자가 모두 피란을 갈 정도로 위태로운 정세 속에서
원수 섬멸의 의지를 밝히면서 국난 극복의 의지를 보여 주고 있습니다.
道を歩いていくと李舜臣将軍の造形物が立っています。
李舜臣 〈陣中音〉
殿を乗せた車は西方遠くへ行き
王子達は北方で危うい身体
国を心配する孤独な臣下
将軍達は手柄をたてる時だ
海に誓うと龍がうなり
山に誓うと草木もうなる
敵を根こそぎ全滅するなら
この身体今や死んで立ち去ろう
この詩は国王と王子が、すべて避難するほど危険な情勢の中で
敵を全滅させるという意思のもとに国難を克服しようという固い意思が伝わってきます。
남해 충렬사 앞 바다에는 거북선이 전시되어 있습니다.
거북선을 보면 임진왜란 당시의 상황이 영화 필름처럼 스쳐 지나갑니다.
南海忠烈寺の前の海には亀船が展示されています。
亀船を見ると壬辰和乱(文禄の役)の時の状況が映画のフィルムの様に過ります。
남해 충렬사 광장은 관리사무실과 공중화장실이 마련되어 있으며
여기 광장은 남해 여행의 다양한 행사가 이루어지는 장소입니다.
南海忠烈寺広場は、管理事務所と公共トイレが準備されています。
ここの広場は南海郡主催の多様な行事が行われる場所です。
광장 옆 언덕으로 오르는 길을 따라 오릅니다.
남해 충렬사는 충신과 열사를 기리기 위해 지은 사당입니다.
노량해전에서 순국한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넋을 기리기 위해 세운 사당으로
충무공의 유구를 처음으로 안치한 것을 기려서 순국한 지 30년째 되던 인조 6년(1628)에
지역의 선비들이 초가 사당을 짓고 제사를 지냈습니다.
広場の横の丘に登る道を登ってみます。
南海忠烈寺は忠信と烈士を称える為に作られた祠堂です。
露梁海戦で殉国した忠武公李舜臣の忠義と魂を称える為に立てられた祠堂として
忠武公の遺体を最初に安置した場所を称え、殉国してから30年たった仁祖6年(1628)に
地域の士人達がわら葺きの祠堂を建て祭事を行いました。
오르는 길에 남해 척화비가 세워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1866년 병인양요와 1871년 신미양요를 승리로 이끈 흥선대원군이
서양 세력을 배척하고 그들의 침략을 국민에게 경고하기 위해 전국 각지에 세운 비석입니다.
上り坂の道には石碑が建てられています。
1866年の丙寅洋擾(西洋人によって生じた事変)と1871年辛未洋擾(米国の軍艦が襲った事変)を勝利に導く興宣大院君(1820年~1898年)が、西洋の勢力を排斥し、彼らの侵略を国民に警告するため全国各地に設立した碑石です。
자암 김구 비 성종 19년(1488) 서울 연희방에서 출생하였으며,
기묘사화에 연루되어 남해에서 13년간 유배되었습니다.
조선 전기 4대 서예가 중 1인으로 그가 저술한 화전별곡은 남해의
아름다움을 표현한 경기체가입니다.
自庵金球の碑、成宗19年(1488)ソウル演戯所で出生し、
己卯士過(朝鮮王朝、中宗14年(=1519年)保守派が理想政治を唱えた事件)に巻き込まれ
南海で13年間、流刑生活をします。
朝鮮前期、4大書道家の一人として著述した花田別曲(ファジョンビョルゴク)は、南海の美しい様を表現した景幾体歌(高麗時代の長歌の一形式)です。
삼도통제사 이태상 비 숙종 27년(1701)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5대손입니다.
진주병마사로 재직 중인 영조 36년(1760)에 참배하고 청해루를 세웠으며,
이 비는 1882년 건립되었습니다.
三道統制使イ⦁テサンの碑、粛宗27年(1701)忠武公李舜臣将軍の5代目の孫です。
晋州兵馬使として在職中の英祖36年(1760)に参拝し、青海楼を建立し
この碑は1882年建立しました。
남해 충렬사 입구이며 1973년 6월 11일 사적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이곳까지의 길은 마치 숲속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게 하며
숲속에서 만난 충령사의 외삼문은 반가웠습니다.
南海忠烈祠の入り口で、1973年6月11日に史跡として指定されました。
ここまでの道は、まるで森の中に入っていく様な感じで
森を抜けて忠烈祠の外三門を見つけた時は嬉しさが増しました。
사당 앞에는 우암 송시열이 충무공 이순신의 충의와 공적을 기리기 위해 짓고
동춘당 송준길이 쓴 충무공이공묘비가 있습니다.
祠堂の前には尤庵宗時烈が、忠武公李舜臣の忠義と功績を称えるために作られ
同春堂宗浚吉が書いた忠武公李公墓碑があります。
사당을 세운 이후에는 충렬사 옆의 호충암에서 화방사의 승장 1명과
승려 10명이 교대로 사당을 지켰습니다.
지금은 청해루 현판이 걸려있는 이 장소가 그때 그자리일련지 궁금하여집니다.
祠堂を建てた後には忠烈祠の横の好忠庵では、花芳寺の僧将一名と
僧侶10名が交代で祠堂を守りました。
今では青海楼という、扁額が掛っている場所があの時代のあの場所なのか知りたくなります。
남해 충렬사 외삼문을 지나면
낮은 담장과 태극기가 있는 우측의 내삼문이 보입니다.
南海忠烈祠の外三門を通って
低めの塀と韓国の国旗がある右側には内三門が見えます。
내삼문을 바라보면 마치 출입문이 닫혀 있는듯한 느낌을 받게 되지만
동문과 서문은 닫혀 있고 중간의 신문이 열려있는 상태입니다.
중앙의 신이 다니는 문 신문과 같은 각도에 비각의 울타리가
자리 잡고 있어 문이 닫힌 것처럼 보입니다.
内三門を見上げると、出入門が閉ざされているように見えますが
東門と西門は閉ざされていて、中間の神門は開いている状態です。
中間の神が通る門、神門と同じ角度で碑閣の囲いがあり、門が閉っているように見えます。
비각 내부에는 통제사증시충무이공묘비가 세워져 있으며
우암 송시열이 1661년 11월 충무공 이순신 장군의 공적을
글로 지은 것은 동춘당 송준길이 글씨를 쓴 것입니다.
碑閣の内部には、統制使証市忠武二公墓碑が立てられていて
牛岩松時烈が1661年11月忠武公李舜臣将軍の功績を
文字に書いた物として同春堂宗浚吉が書き残した物です。
내삼문 뒤에는 사당이 있으며
이순신 장군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内三門の後ろ側には、祠堂があり
李舜臣将軍の位牌が、奉られています。
사당 뒤로 봉분이 하나 보여 가까이 다가가 봅니다.
입구에는 충무공비가 서 있어 이 장소 특별한 장소임을
알리고 있습니다.
祠堂の後ろに古墳が一つ見えたので、中に入ってみます。
入り口には忠武公碑が立っていて、特別な場所だと告げています。
이곳은 충무공 이순신 장군 가묘입니다.
노량해전 중 순국하신 이순신 장군의 주검은
관음포를 출발하여 이곳 충렬사에 잠시 초빈 되었다가
고금도를 거쳐 충남 아산으로 운구되어 안장되었습니다.
この場所は忠武公李舜臣将軍の仮の墓です。
露梁海戦の途中、殉国された李舜臣将軍の死骸は
観音浦を出発し、ここ忠烈祠にしばし安置されたあと
古今島を通り、忠清南道牙山市まで運ばれ安置されまし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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国民故郷南海を一度出かけるのはいかがですか。
남해 충렬사
경상남도 남해군 설천면 노량리 3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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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포스팅은 남해군에 거주하는 남해군 SNS 알리미단 다문화가정 기자님들이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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