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분들에게 추천드립니다.

♧가평지역 문화재에 관심이 많으신분

♧ 강영천이라는 인물이 궁금하신분

가평의 향토문화재 제5호로 지정된 북면 적목리 강영천효자문

사진.글_가평군청 홍보미디어팀_제5기 파인너트기자단

강영천 효자문은 문화재관련 포스팅 시리즈를 기획하기 이전부터 알고 있던 문화재였지만, 인근의 강씨봉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는데요. 오늘은 여러분들께 가평군 향토문화재 제5호로 지정되어 있는 해당 문화재를 소개해드리는 시간을 가져볼 예정이에요. 강씨봉자연휴양림에 방문해본적이 있으신 분들이라면 강영천의 이름을 익히 들어보셨을 것으로 보이는데요, 저 역시 가족들과 강씨봉자연휴양림에 방문했다가 출입게이트 앞에 세워진 손가락조각상, 그리고 휴양림인근에 위치한 계곡(효자소) 입구에 안내되어 있는 설명판 등을 통해 강영천이라는 인물을 보다 자세하게 알게 되어 해당 포스팅을 이제서야 작성하게 되었답니다. 그럼 지금부터 강영천이라는 인물은 어떤 행동을 하여 효자문을 하사받게 되었는지 함께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강영천효자문 방문안내(2024)

강영천효자문 위치

방문관련 정보

기타정보

적목리 강씨봉자연휴양림 방향으로 가다보면

강영천효자문을 알려주는 커다란 이정표가

존재합니다.(이정표가 가리키는 오르막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전각이 보입니다.)

강영천효자문은 정려각 하나만 위치하고 있어

단독으로 구경하기엔 아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따라서 인근 강씨봉자연휴양림을 함께

방문하면 연계관광코스가 되오니 참고바랍니다.

강영천효자문은 상시 개방되어 있습니다.

(민가 옆에 위치하고 있으므로 지역주민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선에서 문화재를 관람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북면명소 강씨봉자연휴양림으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한 강영천효자문

가평읍내를 기준으로 4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는 강영천효자문

강영천 효자문은 가평관내에서도 읍내에서 가장 멀리 동떨어져있는 북면 적목리에 자리하고 있는 향토문화재입니다. 가평군청을 기준으로 차로 40분 가량을 달렸더니 저 멀리 강영천효자문의 위치를 알려주는 이정표가 보이기 시작하는데요. 도로가 발달한 현대에도 꽤 멀다시피 느껴지는 장소인데 어떻게 이곳에서의 소문이 한양 조정에까지 전해져 효자문을 하사받게 되었을까 싶은 궁금증이 유발될 정도네요. 강연천효자문은 가평의 향토문화재로 지정되어 있으나 문화재의 규모가 작은 탓에 방문객을 위한 기반시설이 전무한데요, 이곳에는 특별히 조성된 주차장이 없으므로 이정표 인근 공터에 주차를 하신 뒤 전각으로 이동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으니 방문에 참고하시길 바랄께요.

기록상으로는 1700년에 세워졌다고하나 비교적 최근에 복원된 문화재랍니다.

모두 멸실되어 있던 것을 1989년에 복원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고 하네요.

효자문은 부모에게 효행을 다한 인물을 기리기 위해 나라에서 표창한 것으로, 당시 효자를 장려하기 위한 국가의 노력을 알 수 있는 문화재인데요. 강영천 효자문은 가평 관내 다른 정려각들에 비해 규모가 작은 편이지만, 다른 정려각들과 마찬가지로 사각형태의 기와지붕을 네 개의 기둥이 떠받치고 있는 모습을 하고 있으며, 내부에는 각 전각이 세워진 연유와 같은 내용을 담은 현판이 걸려있답니다. 문화재를 보호하기 위해 전각주변으로는 낮은 울타리가 설치되어 있지만 시건장치가 달려있지 않아서 조심스럽게 내부를 둘러보는 시간도 가져보았는데요, 전각 내부의 현판은 한자로 작성되어 있어 내용 파악이 어려웠으나, 이전에 공식블로그에 소개된 글에 따르면 '효자업무강영천지문려 강희39년 경진3월15일 입'을 뜻하며 이를 통해 효자문이 세워진 시기(숙종26년으로 이는 1700년 3월 15일을 의미한다고합니다.)를 알 수 있다고 하네요. 다만 당시에 세워진 효자문은 오랜 세월을 견디지 못한채 모두 멸실되었고 1989년에 들어 지금과 같은 모습으로 복원되었다고 해요.

지극히 어린 나이였음에도 불구하고 믿기 어려운 효심을 발휘한 강영천

사연을 듣고나면 왜 효자문을 하사받게 되었는지 이해가 됩니다

강영천효자문 앞에는 강영천이라는 인물의 생애를 자세하게 안내하고 있는 문화재 설명판이 세워져 있는데요, 설명판에 따르면 어렸을때 아버지를 일찍 여읜 강영천을 홀어머니 연일정씨가 양육중이었는데 강영천이 7살 되던해 건강하던 어머니 마저 병이들어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고 합니다. 이에 강영천은 자신의 손가락을 문지방에 깨트려 피를 내어 어머니 입에 흘려 넣은 뒤 쓰러졌는데, 이러한 강영천의 행동으로 어머니는 건강을 회복했고, 이 소문이 조정에 까지 들어가 결국 이 같은 정문을 하사받았다고 하네요. 지금으로 치면 그저 유치원생인 아이가 엄마를 살리기위해 손가락을 찧은 것인데, 현대사회의 효심과는 약간의 온도차가 있지만 당대에는 큰 귀감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되는 강영천의 사연을 들으니 정말 보통 효심이 아니구나라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답니다. 글의 서두에서도 언급드렸듯이 강씨봉 자연휴양림 내에는 이 강영천이라는 인물의 이야기가 담긴 장소들이 많은데요, 휴양림으로 향하는 길목에 해당 문화재를 관람하시면 여행의 여운이 더욱 짙어질 것으로 보이니 꼭 들려보시길 바라며 이상 글을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드리며 내용과 관련해 궁금한 점이 있으시면 댓글로 알려주시길 바랍니다.

※ 본 게시물은 가평군 SNS 서포터즈가 작성한 글로 가평군과 공식 입장이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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