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시 초월읍은 한강과 동서를 가로지르는

경안천 유역을 끼고 있는 청정지역입니다.

고려 말에 충신 4명이 말을 타고 이 마을 곁을 지나다가

잠시 이 마을을 돌아보니 그 형태가 마치 누각처럼

생겼다고 해서 사마루라 불렸었고 현재는 경안천

물줄기로 인해 안개가 자주 낀다고 하여 서하리라

불리네요. 그곳에는 매년 3월이면 떠오르는 인물이

있으니 해공 신익희 선생입니다.

마을 안쪽으로 선생이 태어난 생가가

경기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보존됩니다.

삼일절이 한창 지난 3월 셋째 주 뒤늦게 만세운동을

기리기 위해 신익희 생가를 찾았습니다.

해공로 이정표 아래로 대로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초입 선생의 동생과 함께 서하리 마을이 안내됩니다.

초입에서 생가까지 이어지는 약 100M

마을 길을 따라 선생이 소개됩니다.

마을 주택가 담장을 따라 "사마루 지는 노을에 해공

선생을 만나다" 선생의 일대기와 어록이 이어집니다.

해공로는 1905년 해공 신익희 선생이 열두 살 되던 해

서하리에서 30여 리 떨어져 있는 남한산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 매일 학교에 다녔고 처음으로 신학문으로

습득하게 된 길이었습니다.

선생은 이곳 광주시 초월읍에서 1894년 6월 9일

판서 신탄의 막내아들로 태어났습니다.

1908년 한성외국어학교 영어과를 졸업하고 1917년

보성법률상업학교 교수가 되었네요.

1918년에는 최남선, 윤호섭 등과 독립운동의 방향을

논의하였으며1919년 3.1만세 운동 당시에는

해외 연락 등 중요한 임무를 맡았습니다.

3.1 만세운동을 계기로 상하이로 망명 임시정부에서

내무차장, 외무차장 등을 역임하였고광복과 더불어

임시정부 내무부장 자격으로 환국하였습니다.

동상을 기준으로 들어선 말을 길부터 생가까지는

담장이 전시실이 되어 선생의 살아생전 업적과 어록이

소개됩니다. 천천히 글을 읽으며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선생의 일대기가 머릿속에 그려집니다.

오랜 망명생활을 청산하고 귀국한 선생은

1948년 제현 국회의원 경기 광주 당선.

1955년에는 민주당을 창당하는 등 초기 국가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네요. 하지만 1956년 대통령 출마

유세길에 62세의 나이로 뇌출혈로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였습니다.

일대기를 소개하는 담벼락 전시는 생가와

가까워지면서는 어록으로 바뀝니다.

살아생전 선생이 직접 쓴 글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한자로 작성되어 현대인들에게는 다소 낯설었습니다.

공사 중인 마을 길을 통과하여 생가에 도착합니다.

생가 옆으로 경기도 기념물을 알리는 이정표와 비석이

서 있습니다. 생가는 원래 지금 위치에서 동남쪽으로

약 200m 지점에 있었는데 1865년 대홍수로 집이

부서져 1867년경 현 위치로 이전하였고

1925년에 건축되었습니다.

하지만 2002년 큰 화재로 일어나 완전히 소실되어서는 2004년에 복원되었다 하네요. 생가 주변으로는 좁은

마을길이 있고 좌우로는 밭과 이웃집이

바로 인정하였네요.

대문 너머로 사랑채 형식의 만앙정이 있고 뒤편으로

안채와 뒷마당으로 이어집니다.

만앙정은 만인을 믿고 따르며 우러른다는 뜻으로

독립운동가이며 성균관대학교 설립자 겸 총장이었던

심산 김창숙 선생이 신익희 선생을 기리며

쓴 것이었습니다. 만앙정 정면으로는 정면으로는

오래된 향나무도 보입니다.

안채는 전체적으로 T자형을 이룹니다. 중앙에 2칸의

대청을 중심으로 우측에 안방과 좌측으로 건넌방을

두었고 안방 앞으로 부엌이 있습니다.

바깥채ㄴ자형으로 가운데 대문을 중심으로 좌측에

2칸의 사랑방입니다. 생가는 20세기 초 경기지역 중소

지주 계층의 전형적인 가옥 형태로 제법 큰 규모입니다.

안채 뒤편으로 돌담이 길게 이어지고 별도 공간으로

구성된 뒷마당에는 선생의 어록이 한 번 더 소개되네요.

생가에는 목판, 고서, 친필 휘호, 놀이용 화살 등의

유품이 보존됨이 안내됩니다. 1894년에서 1956년까지 대한 제국, 일제강점기. 6.25 전쟁 등 나라의 격동기를

살았던 선생은 이곳 광주시 서하리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네요. 그리고 정치가이자 독립운동가로 대한민국 근현대사에서 큰 업적을 남기었습니다.

일제강점기 탄압과 억압에 굴하지 않았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3월, 해공 신익희 선생의 생가 방문은 특별한

역사여행이었습니다.

▼신익희 생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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