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일 전
청양에서 만나는 백제, 백제문화체험박물관을 둘러봤어요
#충남 #청양 #청양군 #백제 #백제문화체험박물관 #가마 #토기
#기와 #최익현 #정산 #금강 #관방유적 #고분 #학암리 #지곡리
청양군SNS서포터즈 이종진
청양에서 만나는 백제
백제문화체험박물관을 둘러봤어요
041-940-4874
주차장, 화장실 있음
일반 2,000원
어린이 1,000원
청소년/군인 1,500원
안녕하세요. 이종진입니다. 청양은 공주와 가까이 있습니다. 공주는 백제의 수도로서 백제의 역사유적이 많습니다.
청양도 마찬가지로 백제의 역사를 품고 있는 곳인데요. 오늘은 백제에 대한 모든 것이 있는 백제문화체험박물관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숨겨진 청양 속 백제 역사를 찾고 문화를 체험하는 곳으로서 토기가마전시관, 금광체험관, 역사실, 1960년대 추억의 거리, 농경문화 전시관 등이 있고 정원과 함께 조서오디어 있습니다.
정기휴관은 매주 월요일, 1월 1일, 설날과 추석당일이며 관람시간은 하절기(3~10월) 09:00-18:00이며 동절기(11월~2월)에는 09:00-17:00입니다. 관람 및 체험 입장은 마감 1시간 전까지 가능합니다.
일반(19-64세)은 2,000원, 단체(20인 이상)는 1,500원, 청소년/군인(13-18세, 단기 하사 이하 군인)은 1,500원/1,000원, 어린이(7-12세)는 1,000원/500원, 영유아/노인(6세 이하 및 65세 이상)은 무료입니다. 또한, 6세 이하 영유아, 65세 이상 노인, 국가유공자, 독립유공자, 참전유공자, 의사상자, 고엽제 후유의증 환자, 5·18민주유공자, 장애인과 그와 동행하는 보호자 1명, 유물 기증 등 박물관 발전에 기여한 자는 무료로 관람할 수 있습니다. 큰 규모로 조성되어 있기에 시간을 두고 여유롭게 둘러보시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입구에는 농경문화전시관이 있는데 옛날에 쓰이던 농기구를 엿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잘 보기 힘든 농기구를 통해서 옛 농업역사는 어떠했는지 둘러볼 수 있습니다. 고무래, 벌멍덕, 망태기, 삼태기, 멍석, 풍구, 팔랑개비 등 잘 알려지지 않는 농기구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면 나오는 큰 규모의 토기가마입니다. 이곳에는 문화관광해설사님이 계시기에 해설을 통해서 이해하기 쉽습니다.
문화 관광해설사는 해당 분야의 전문 교육을 받고 풍부한 경험을 쌓은 전문가로서, 관광객들의 연령, 성별, 국적 등에 상관없이 모든 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설명을 제공합니다.
문화 관광해설사는 관광객들에게 단순히 정보를 전달하는 것뿐만 아니라, 관광객들이 궁금해하는 점에 대해 답변을 제공하고, 관련된 에피소드나 전설 등을 함께 이야기해 줌으로써 관광객들의 흥미를 유발합니다. 이를 통해 관광객들은 해당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더욱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습니다.
분향리 유적지 토기가마터, 학암리 토기가마터, 백자생산요지 등 청양에서의 백제 가마를 이곳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유구한 역사의 흔적이 담겨진 청양의 토기가마터에서는 다양한 유물이 발굴되었는데요. 넓은 지역에 걸쳐서 옛 역사흔적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분향리 유적지 유구 1호
약 1,700년 전 원삼국 시대 / 청양군 장평면 분향리
원삼국 시대의 토기 가마로 크기가 18.60m2이며 3D 스캔 후 복원한 것이다.
해발 약 47m의 비교적 나지막한 언덕 비탈면에 있었던 가마는 풍화 암반층을 파서 만든 지하식 오름 가마로 바닥 면의 경사가 약 16도 정도이다. 가마의 구조는 회구부, 연소실, 소성실로 구성되어 있으며, 가마 안에는 타날문 갈색 토기와 회청색 토기 조각 그리고 돌 등이 출토되었다. 발굴 당시 천정부와 연통이 훼손되었으나 남아 있는 것들을 통해 전체 구조를 유추해 볼 수 있으며, 충남 지역 내에서 발견된 원삼국 시대 토기의 가마터로 매우 귀중한 유적이다.
학암리 유적/백제 시대 1호
약 1,500년 전 백제 시대 추정 / 청양군 정산면 학암리
해발 54~55m의 북쪽 사면 급경사에 위치한 지하식 오름 가마의 형태로 원형의 원통부와 가늘고 긴 타원형의 소성실로 구성되어 있다. 발굴 당시의 길이가 328cm, 최대 너비는 106cm이다. 2003년 8월부터 2004년 9월에 걸쳐 330일간 충청남도 역사문화원에서 발굴조사 하였다. 현재의 유구는 발굴 당시의 굴뚝을 그대로 옮긴 다음, 소성실 부분을 재현하였다. 가마의 바닥에는 학암리 유적 가마 폐기장에서 출토된 토기와 기와의 파편들을 백제 시대 막새, 토기 등과 함께 연출해 놓았다.
약 1,500년 전 백제시대 / 청양군 정산면 학암리
1호 토기 가마는 해발고도 50~53m 구릉 경사 남쪽 사면에 위치해 있다. 동쪽으로 나란히 2호 가마가, 남쪽으로 약 15m 떨어진 폐기장이 있다. 표면 제토시 생토인 황갈색 사질 점토상에 산화소토부가 표면에 단단하게 드러나 있었다. 1호 요지를 살펴보면 천정벽이 무너진 층위에 생토인 암갈색 사질토층이 보이고 있어 지하식 오름 가마로 판단된다. 규모는 현 길이 812cm, 너비는 바닥 면을 기준으로 356cm, 벽체를 기준으로 316cm이다. 요지는 천정이 이미 붕괴되었고, 아궁이는 후대에 훼손되었으나 연소부, 소성부, 연도부는 잘 남아 있었다. 연소부는 말각방형, 소성부는 장타원형의 형태로 남아 있으며 연도부에는 원형의 굴광흔이, 벽면에는 점토를 붙이면서 손으로 긁은 흔적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아 당시 보수 흔적을 알 수 있다. 현재 이 유구는 학암리 지역의 발굴 토기 가마를 전사한 후 재현한 것이다.
이곳에서는 체험을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는 석고 방향제, 드림캐처, 톡톡 블록, 미니 북, 패브릭 뱃찌, 전통 매듭 스트랩, 가죽 고리, 에코백, 텀블러 에코백 등을 만들 수 있는 프로그램들이 소개되어 있으며 각각의 가격도 명시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석고 방향제 만들기는 6,000원, 드림캐처 만들기는 6,000원으로 책정되어 있습니다. 이 외에도 다양한 아이템들의 만들기 체험 비용이 안내되어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은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체험실 운영시간을 살펴보면 오전체험마감은 11시이며 점심시간은 12시-1시로 운영하지 않습니다. 오후체험마감은 4시(동절기), 5시(하절기)입니다.
저렴한 금액으로 알차게 굿즈를 만들어보며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청양의 마스코트 청양이도 있네요.
토기를 구울 때의 절차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바탕흙준비부터 빚고 최종적으로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미니어처로 안내하고 있습니다.
다음으로 청양역사실입니다. 이곳에서는 백제의 역사와 청양의 옛 모습, 국란 등 다양한 역사를 만나보는 곳입니다.
관방유적, 가마터, 고분을 비롯해서 백제의 역사연표와 함께 역사를 안내하고 있습니다.
관방유적을 보면 내륙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시설인 봉수, 돈대, 산성 등을 말합니다. 청양에서는 도로가 하나로 합쳐지거나 성곽을 쌓아 놓은 산성 형태로 남아있습니다. 10개의 산성이 남아있고 두릉산성은 백제부흥운동 시기에 좌평 정무가 나당연합과 대치하였습니다.
가마터는 청양에서 살펴보면 6기이상이 있습니다. 이들은 금강과 가까운 곳에 위치하며 사비 왕도 건설에 중요한 건축자재로 사용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고분은 삼국시대의 무덤들이 대량으로 발굴되었습니다. 20군데이며 다양한 토기와 유물들이 발굴되었습니다.
‘잃어버린 왕국’으로 표현되는 문화를 꽃피웠던 대백제, 삼국三國 가운데 최고의 패자의 역사는 삼국 간의 각축장에서 갑자기 탈색되어 그 흔적을 찾기란 어렵습니다.
660년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이 함락되어 백제의 왕과 그의 백성들은 뿔뿔이 흩어져 유민이 되어, 고구려, 신라, 당나라로 일본 열도로 흘러 다른 삶을 찾아 떠났다. 그들은 낯선 곳에서 고통스러운 삶을 견디며 백제를 간직한 채 그들만의 새로운 역사를 이어갔을 것이다.
망국의 땅에 남아 있던 백제의 백성들은 또 그렇게 살아갔을 것이고, 통일신라, 고려, 조선 시대를 지내오며 망국의 한을 가슴에 품고 세대를 이어 기억조차 사라져 버린 지금에 와서 우리들은 조금씩 백제를 기억하기 시작했습니다.
「백제의 길 위에 서서」에서 차준완
포토존에서는 한복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색상이 다채롭고 아름다운데 어린이에게도 잘 맞는 한복으로 사진을 남겨보는 추억을 담을 수 있습니다.
청양의 역사개괄을 살펴보면 신석기시대의 학암리 유적, 청동기 시대의 지곡리 유적, 철기시대, 원삼국시대를 엿볼 수 있습니다.
청양에서는 여러 인물들과 다양한 문서에서 기록되어 있는데요. 예로부터 청양은 인물이 나는 지역으로 알려져있습니다. 다양한 성씨들이 살고 있어서 다양성을 나타내고 있는 청양은 250여 개의 마을을 이루고 살고 있습니다.
조선시대 말과 일제강점기를 거치는 청양에서는 항일운동과 광복 이후의 지역사회를 자료로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정산면의 이야기도 살펴볼 수 있습니다.
청양이라는 명칭에 사용되는 청과 양의 단어는 757년(통일신라 경덕왕 16년)에 현재의 청양지역을 열성현, 청무현, 신양현으로 개편하였다가, 고려 성종 때에 정산현, 청양현, 여양현으로 고치면서 청과 양의 단어가 등장하게 되었습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 청양현, 정산현으로 바꿔었고 구한말에 각각 군이 되었으며 1914년 통합되어 현재의 청양군이 되었습니다. 청은 깨끗하고 정결함을, 양은 만물이 생동하는 기운을 따뜻하게 함을 뜻하니 이곳에서 태어나며 살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머무는 이들에게도 좋은 기운을 전혀 줄 것입니다.
최익현은 우리가 아는 항일운동가입니다. 그는 노구를 이끌고 항일운동을 하였는데요. 그의 자료가 이곳 청양에서 만나봅니다. 예전에 최익현의 동상이 있는 칠갑정에서 만나봤는데요. 한티고개길을 통해서 산책해보시는 것도 좋겠습니다.
블로그 포스팅 보러가기
https://blog.naver.com/cheongyange/223615388999
면암 최익현은 일제에 저항하여 의병 투쟁을 이끌었던 대표적인 위정척사론자입니다. 1855년(고종 6)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한 이후 흥선대원군의 정책에 맞서 경복궁 중건의 중지와 당백전 폐지를 주장하다 파직되었습니다. 1873년에는 서원철폐의 문제점을 지적한 상소를 계기로 흥선대원군의 10년 집권을 무너뜨리고 고종이 친정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했습니다.
강화도 조약과 단발령에 반대하며 위정 척사의 기치를 드높인 최익현은 1905년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74세의 나이에 의병을 일으켜 일제에 항거하다 체포된 후 대마도로 유배되어 끝내 그곳에서 순국하였습니다. 석지 채용신은 전통 초상화 기법을 계승하면서도 근대 서양화법의 영향을 받아 독특한 필법을 개척한 근대이행기의 초상화가입니다. 흥선대원군의 초상화를 그려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으나 화가를 생업으로 삼지는 않았습니다. 1886년 무과에 급제하여 20년 이상 무관으로 종사한 채용신과 최익현과의 인연은 1904년 채용신이 정산군수를 역임하면서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1906년 관직을 그만둔 채용신은 우국지사의 초상화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최익현의 초상화도 이때 제작됐습니다. 최익현의 초상화는 정산군수로 있던 채용신이 최익현의 장남 최영조의 요청을 받아 정산군 송암리에 거주하던 최익현을 직접 본 후 그의 충절과 기상에 감복하여 그린 그림으로 우측 상단에 최익현이 73세때 그린 그림이라고 기록이 있다. 최익현의 초상화는 국립제주박물관, 화순 춘산영당, 곡성 오강사, 하동 운암영당, 포천 채산사 등에도 남아있습니다.
청양에서는 3.1운동도 일어났는데 4월 3일부터 4월 5일부터 4월 9일까지 여러 곳에서 일어났습니다. 수천 여 명의 인원이 함께 하여 청양의 나라사랑을 살펴볼 수 있는데요. 3월을 맞아 백곡 3.1만세운동기념탑, 운곡 3.1만세운동기념탑, 정산 3.1만세운동기념탑이 있으니 함께 찾아보는 여행도 좋을 거 같습니다.
오늘 이렇게 일부분만 소개해드렸는데도 아직 끝내지 못했는데요. 다음에도 소개하지 못한 기와, 금광체험관, 추억의 거리 등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 그럼 다음에 만나요. 안녕.
- #충남
- #청양
- #청양군
- #칠갑산
- #천문대
- #청양천문대
- #청양별보기
- #칠갑산천문대
- #백제
- #백제문화체험박물관
- #가마
- #토기
- #기와
- #최익현
- #정산
- #금강
- #관방유적
- #고분
- #학암리
- #지곡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