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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일 전
범서 선바위의 풍경화 속으로
태화강 상류 울주 범서 입암리 백룡담 여울에 우뚝 솟은 기묘한 선바위(立巖)를 찾았습니다.
마치 설악산의 기암 봉우리를 옮겨 놓은 듯 기이하고 신령했습니다.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기가 살아나 머릿속 뉴런을 자극하는 선바위를 포스팅합니다.
억겁의 시간이 멈춰 있는 선바위는 주상절리처럼 자연이 명경지수에 기암괴석을 조립해 놓은 듯했습니다.
빼어난 조각품의 걸작을 세워 놓은 듯합니다. 세상 그 어떤 풍경화가 이만할까 싶습니다.
웅숭깊은 백룡담에 하반신을 12m 담근 채 수면 위로 21m 솟아 있는 선바위는 둘레가 46m, 꼭대기는 2.9m입니다.
피렌체 두오모 대성당 모습 같기도 하고, 오른쪽 손바닥 모양 기암절벽이 신령합니다.
1억 3500만~6500만 년 전 중생대 백악기에 퇴적암 침식으로 형성되어 절벽으로 분리된 바위랍니다.
오랜 세월 풍화에 닳고 짓눌림에 견뎠는지 갈라지고 마모가 되어 있었습니다.
선바위를 품고 있는 웅숭깊은 소가 강당소 혹은 백룡담(白龍潭) 여울입니다.
백룡이 살았기에 노을이 질 때 기우제를 올리면 영검이 있었다 했습니다.
물빛이 시퍼렇고,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진 풍경이 동양화 같았습니다.
태화강의 아름다움과 절개 높은 선비의 꼿꼿함을 상징하듯 대자연이 연출하는 풍경화가 걸작이었습니다.
불교에 대한 민중의 시각을 엿볼 수 있는 선바위 전설이 흥미롭습니다.
“한 탁발승이 이 마을의 천하절색인 처녀에게 반해 남모르게 그녀를 사모하고 있었다.
어느 날 탁발승이 몰래 숨어 그 처녀를 훔쳐보고 있는데 강물에 떠내려오던 큰 바위가 처녀를 덮쳤다.
탁발승이 처녀를 구하려다 둘이 함께 바위에 깔려 죽었다. 그 자리에 바위가 우뚝 서 물 가운데 자리하니 지금의 선바위다.”
하늘의 노여움을 산 파계승과 처녀는 저승에서도 맺어지지 못하고 비가 내리는 밤에만 상봉을 허용했습니다.
그 처녀 귀신 때문인지 소방관들이 여름에 근무를 서도 남자의 익사자가 나온다고 했습니다.
옛 문헌에 나오는 선바위에 대한 글이 흥미롭습니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울산편에 "입암연(立巖淵)은 고을 서쪽 20리에 있으며 남천(南川) 및 취성천(鷲城川)이 합쳐 못이 되었다. 바위가 물 가운데 탑같이 서 있고, 그 물이 검푸르러서 세상에서 전하기를 용이 있어 가물 때에 비를 빌면 효험이 있다고 한다."라고 기록되어 있어 선바위가 우뚝 서 있어 유래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여지도서』 울산편에는 "입암연은 태화강의 상류부 서쪽 20리 되는 곳에 있다. 큰 바위가 우뚝 솟아 있는데, 물속의 네 부분은 깎은 듯하다. 높이가 100여 자인데 매우 기이한 모습이 절경을 이룬다."라고 수록하고 있습니다.
선바위 뒤 벼랑 위로 오르자, 학성이씨 정자인 용암정과 선암사가 객을 맞아 줍니다.
경관이 빼어난 곳에 지어진 용암정에서 보면 선바위 정상이 가깝게 보이는데 바위의 풍경이 더 절경입니다.
1796년 울산 부사 이정인이 선바위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입암정(立巖亭)을 지어 살다시피 했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허물어진 건물을 1940년 후손들이 재건하여 용암정(龍巖亭)이 되었습니다.
그 당시 입암 마을에는 대부분 송옹공의 후손들이 살았습니다.
그들은 정자에서 친목 모임을 하거나 시를 읊으며 풍류를 즐겼다고 합니다.
특히 언양 인근에 유배를 온 정몽주 등 당대 내로라하는 선각들도 아름다운 선바위 풍경을 내려다보며 풍류를 즐겼습니다.
이러한 절경에 예부터 시인 묵객들이 천혜의 경관을 노래했고, 주옥 같은 글들은 오늘날까지 전해오고 있습니다.
용암정은 까치박공이 달린 삼각형의 벽이 있고, 팔작지붕입니다. 담장 너머로 선바위가 위용을 뽐내고 있었습니다.
정문은 동향으로 향해 있고, 맞배지붕입니다. 달리 보면 정자를 겸한 친족 간 친목 도모를 위한 강당으로 보입니다.
애초에 선조에 대한 추모 공간으로 시작한 숭모의 공간이었습니다.
동시에 워낙 경관이 빼어나 풍류를 즐긴 울산 선비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유서 깊은 곳입니다.
두 개의 봉이 서로 떨어지지 않은 연인처럼 가까이 있는 듯했습니다.
그 위로 엄마의 손을 잡은 아기봉 같은 2봉이 백룡담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선바위를 마주하고 있는 뒤쪽이 가파른 절벽이기에 위험 방지를 위해 담장 벽으로 막았습니다.
2002년 용임정 안내문을 세우면서 정자 주변에 벽을 설치했지 싶습니다.
고택의 풍경이 유려한 용암정 건너에는 통도사 말사인 선암사가 있었습니다.
원래 학성이씨 출신의 비구니가 운영하다 1900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등록한 사찰입니다.
전통사찰은 아니지만, 사찰 입수 삼성각 앞의 용두관음석불(龍頭觀音石佛) 석상이 신령했습니다.
담장은 용맹정진하는 스님의 마음을 선바위가 설레게 한다고 해서 만들었습니다.
절골에서 백룡담으로 내려가면 선바위에 숨은 뒷모습을 보여줍니다.
푸른 물속에서 용이 솟은 모습입니다. 지질시대의 증인처럼 비늘 같은 작은 바윗덩이 층층을 반짝였습니다.
호방한 산책길을 따라 혹시나 풍경이 더 있는지 호기심이 생겨 뒷산으로 향했습니다.
길은 시소를 타듯 인생 고개를 넘습니다. 황갈색 호젓한 산길은 굽이치며 느림과 평온의 곡선을 그려 놓습니다.
범서와 구영리의 주민들이 맨발로 산책하고, 정상에 있는 체육시설에서 운동하고 있었습니다.
앙상한 나무들과 놀랍게도 일제강점기 울산 독립운동가 이순금의 모친 무덤이 출몰했습니다.
내막을 알 길이 막막한 불립문자입니다. 말은 꼭 입으로만이 아닌 모습으로 한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고개를 넘으니 단감 신품종 모델 과원에 겨울잠에 든 단감나무들이 을씨년스럽게 보였습니다.
거북 철갑으로 에워싼 동백이 붉은 꽃망울을 터뜨리고 있는 가운데 초록 잎사귀가 유별나게 당찼습니다.
선바위 건너에 면적 12만 평의 울산 선바위공원이 보였습니다.
짚라인과 나무로 만든 해먹이 설치되어 있어 가족들과 휴일을 즐기기에도 좋아 보였습니다.
또 태화강을 끼고 달릴 수 있는 자전거 전용도로가 있었습니다.
대나무숲과 숲 그늘 정원을 조성해 놓아 선바위와 함께 또 다른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예로부터 절경인 선바위에 대해 시인 묵객 형리가 시를 짓고 풍류를 즐기며 남긴 흔적이 많이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울산 부사 권상일은 "천년이 지나도 열렬한 장부 풍채와 모습이네"라고 노래했습니다.
조선 후기 학자 이양오는 ‘돌 어르신’이라고 부르며 서로 떨어지지 못하리라 했습니다.
울산 출신 문신 이근오는 "입암정 시에 높은 누각에서 아래로 굽어보니 작은 하늘이 있네"라 노래했습니다.
한번 들러서 울주의 명물이 된 선바위의 전설을 음미하며 신비한 풍경화 속으로 푹 빠져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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