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의정을 지낸 황희 정승의 흔적|남원 예촌거리 '황희 초당'을 아시나요?
안녕하세요. 남원시 기자단입니다.
남원 예촌거리는
광한루원과 함께 빼놓을 수 없는
남원의 관광지입니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이야기인
성춘향과 이몽룡의 사랑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이몽룡은 단옷날 광한루원에서
그네를 타던 춘향이에게 반해 사랑이 싹트게 되지요.
광한루 하면 춘향과 이몽룡의
사랑 이야기가 먼저 떠오르지만
조선 초기 남원으로 유배 온 황희 정승이
광한루 자리에 작은 누각을 지어 ‘광통루’라 했습니다.
그 후 ‘광통루’는 1444년 전라도 관찰사였던 정인지가
이곳의 아름다운 경치에 반해
달나라 미인 항아가 사는 월궁속의
'광한청허부'를 본떠 '광한루'라 부르게 되었습니다.
황희는 조선 태종 때 이조판서였으나
세자인 양녕대군의 실덕을 옹호하자
태종은 황희를 좌천시켰고 세자가 폐위되자
1419년에 남원으로 유배를 보내지요.
세종이 즉위하고 1422년 황희는
유배에서 벗어나 영의정까지 오르며
백성들을 위한 선정을 베풀었고
청렴결백한 관리의 삶을 살아
지금도 청백리로 통하는 황희정승입니다.
남원 예촌거리는 청사초롱이 거리를 수놓고
한옥 숙박시설인 남원예촌과
한복을 대여할 수 있는 ‘화인당’과
판소리계의 프리마돈나라 일컫는
‘안숙선 명창의 여정’과 ‘조갑녀 살풀이명무관’ 등
남원 예촌거리는 많은 전통 한옥을 볼 수 있는 거리이자
공방과 카페, 음식점들이 많은 거리이기도 합니다.
남원 예촌거리에서 초가를 만날 수 있는데요.
이곳이 황희 정승이 남원으로 유배와 지내던
요천강변의 초가 모습을 재현해 놓은 황희 초당입니다.
황희 초당이 아담하지요?
부엌 한 칸과 툇마루와 두 칸짜리 방이 있는
소박한 초당인데요.
청렴한 황희 정승과 잘 어울리는 초가입니다.
담은 허물어져 대문 역할을 하는데
황희 정승이 천진난만한 마을 아이들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면
아이들을 예뻐했던 것 같습니다.
부엌의 모습도 가재도구가 필요한 것만 있고
밥상을 보면 참 검소하게 드셨다는 생각이 들어요.
유배 생활이니 손수 밥을 지었겠지요.
황희 초당의 방입니다.
유배지에서도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던
황희 정승을 알 수 있는 모습이에요.
황희 초당 앞에는 모형 소가 두 마리 있는데요.
‘황의 정승과 소’ 이야기는
황희 정승이 밭을 갈고 있는 농부에게
두 마리 소 중에서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하냐고 물었더니
농부가 귓속말로 누렁소가 일을 더 잘한다고 했대요.
그래서 황희정승이 귓속말로 하는 이유를 묻자
농부가 말하기를 소가 비록 말을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흉을 보면 기분이 상할 거라고 대답했다는 일화가 있는데요.
황희 정승은 농부의 말에 크게 감동하여
이후 언행을 조심했다고 합니다.
남원 예촌거리를 여행한다면 황희 초당을 찾아보세요.
남원에서 3~4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던 소박한 초당에서
광한루를 처음 지은 청백리 황희 정승을 만나보세요.
황희 정승은 남원으로 유배를 왔지만
남원은 너무나도 큰 문화유산을 얻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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