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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3월 9일(일)

부성사 춘제가 있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참석하여

최치원 선생의 삶을 되짚어보고

학문과 사상을 기렸습니다.

부성사는 통일신라 최치원의 영정과 위패를 모신 사당입니다.

흥선대원군 서원철폐 이후, 경주 최씨 문중에서 다시 지었고

1913년 현재의 위치로 옮기면서 부성사라 이름하였습니다.

'부성'은 서산의 옛이름으로 진성여왕 7년(893)

최치원이 부성군 태수로 임명되어

이곳에 온 것을 기념하기 위해 사용한 명칭입니다.

7년간 서산에서 지방관을 역임했습니다.

부성사 뒷산의 이름도 부성산입니다.

이곳에는 통일신라때 산성이 있었고, 행정기관도 있었습니다.

이후 부성군은 고려와 조선을 거치면서 서령군, 서산군으로 바뀌고

관청도 부성산성에서 현재의 서산시청으로 옮겨졌습니다.

지곡면 산성리에는 최씨 집성촌이 형성되었고,

조선 시대부터 최치원선생을 모시는 사당이 있어

봄과 가을에 제향을 올립니다.

최치원은 12세의 어린 나이에 당나라로 유학을 떠나,

18세에 당나라 과거에 장원급제합니다.

이후 관직생활을 하던중 황소의 난이 일어났을때

'토황소 격문'을 지어 황소의 난을 진압하는데 공을 세웁니다.

29세에 신라로 돌아온 최치원은

시무십조와 같은 개혁사상을 주장하나

좌천되어 서산 지방관으로 부임합니다.

최치원 선생의 역작으로는

계원필경과 사산비명이 있습니다.

계원필경은 중국에서 지은 자신의 시문을 종합하여 정리한 책이라면,

사산비명은 신라에 귀국한 후 비석에 남긴 네 편의 글입니다.

네 군데의 산 이름을 따서 '사산비명'이라 부릅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서인 삼국사기와 삼국유사가

고려시대에 씌여진 것에 비하여,

사산비문은 신라시대의 것이며

당시의 생생한 역사적 사실을 담은 1차 자료라는 점에서

사료적 가치가 매우 높아 국보로 지정되었습니다.

부성사 최치원 선생 기념비에는

이와같은 내용이 잘 정리되어 있습니다.

*부성사: 충남 서산시 지곡면 산성리 64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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