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근간이 된 '한성 임시정부의 태동지', 인천!

그러나 인천에서 전개된 수많은 독립운동은 아직도 널리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제106주년 3·1절을 맞아, 인천의 독립운동가를 기억합니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존재합니다.


(사진 출처 : 인천국학원)

1919년, 인천 3·1운동의 불꽃이 타오르다

1919년 3월 1일, 서울에서 시작된 3·1운동의 함성은 인천에도 빠르게 퍼졌습니다.

3월 6일, 인천공립보통학교와 공립상업학교 학생들이 동맹휴업을 단행하고,

주민 300여 명과 함께 경인가도·만국공원(현 자유공원)에서 독립만세 시위를 벌였습니다.

3월 8일부터는 <독립선언서>가 인천시 전체에 배포되기 시작하였으며,

인천시 곳곳에서 만세운동이 전개될 수 있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월 23일 밤, 문학면 관교리(당시)에서는

관교리 마을 주민과 인근마을 주민들까지 모여 횃불을 들고 만세시위를 하였으며,

이때 만세시위를 주동한 인물들은 일반 시민들이였습니다.

부평 황어장터 3·1만세운동

인천지역 곳곳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이어지면서,

1919년 3월 24일 부평 황어장터에서는

장시를 이용한 군중집회를 통해 대규모 만세운동이 일어나게 됩니다.

수많은 시민이 참가한 황어장터 3·1만세운동,

이렇듯 인천에서는 일반 시민이 주도하는 독립만세운동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좌측)한성임시정부수립 13도 대표자회의 표지석, (우측) 한성임시정부 국민대회 선포문 (출처:굿모닝인천)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모태가 된 '13도 대표자 대회'

1919년 4월 2일, 인천 만국공원(현 자유공원)에서 13도 대표자 대회가 열렸습니다.

13도 대표자대회 참석자들은 임시정부 조직과 파리강화회의에 대표파견,

'국민대회' 개최와 정부수립 선포 등에 합의를 보았습니다.

이 대회는 훗날 '한성정부' 출범의 기틀이 되었고,

나아가 대한민국 임시정부 설립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인천은 단순히 독립운동이 활발했던 지역을 넘어,

대한민국 임시정부 탄생의 중요한 거점 역할을 한 도시였습니다.


🇰🇷 우리의 기억이 역사가 됩니다. 🇰🇷

"기억하지 않는 역사는 반복된다."

인천의 독립운동과 그 정신을 되새기며,

앞으로도 이들의 희생을 기억하고 감사하는 마음을 간직합시다.

인천의 독립운동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인천광역시 홈페이지에서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incheon.go.kr/IC0200770

(참고 자료 : 인천항일독립운동사, 인천국학원 '사진으로 만나는 인천의 독립운동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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