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 전, 신문기사에서 허수경 시인의 작고 소식을 보고 너무나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평소에 좋아하는 시인이었는데, 그녀의 짧은 생이 마음 아파 슬펐던 기억이 아직 선명합니다.

1964년에 태어나 1987년 스물세 살에 시로 등단, 2018년 지병으로 별세한 작가의 삶을 돌아보았습니다.

허수경 시인은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독일로 건너가 뮌스터대학교와

대학원에서 고고학을 연구하며 고고학자로의 생을 살며 모국어로 시를 썼지요.

작가의 시집,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을 읽으며 그 시간을 따라가 보았습니다.

한 권의 시집에 실린 시들을 한 편씩 소리 내 읽어보았습니다.

시가 주는 깊은 울림이 좋았지요.

시를 낭독하다 보면 어느 순간, 가슴에 뭉쳐있던 덩어리들이 떨어져 나가는 느낌을 받을 때가 있지요.

독일의 도시와 유적지에서 발굴 현장을 다니며 자신이 보고 만진 영혼을 시로 쓰면서 달랬을 향수는 얼마나 깊고도 쓸쓸했을까요,

그리고 얼마나 간절했을까요.

허수경의 시는 독백의 시이며 자신과 독자들에게 삶에 대해 묻는 시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라일락에게 (52쪽) 어떻게 살아야 하는거냐고 묻고 있다습니다.

가끔 이해하기 어려운 시를 만나면 ‘시는 해석하려 하지 말고 읽는대로 느끼면 되는 것’이라고 말한 어느 시인의 말을 떠올려 봅니다.

허수경의 시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는 여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서늘한 시편에서도 삶의 따스함이 묻어납니다.

시어의 조화도 아름답고 슬픔과 우울을 노래한 시의 한켠에서는 마음을 안정시키는 매력이 있지요.

마음을 사로잡은 시에는 포스트잇을 붙여가며 읽다 보니 훌쩍 시간이 흘러버린 뜨거운 7월입니다.

냉장고에서 시원해진 수박을 먹을 때마다 시인의 시 <수박>이 오랫동안 기억날 것 같습니다.

- 둥근 적이 없었던 청춘, 저 푸른 지구만 한 땅의 열매, 나의 혼자 떠난 피리 같은 사랑,

수박 속에 든 저 수많은 별들을 모르던 시절, 검은 눈물 같은 사랑,

날아가는 어린 새가 수박빛 향기를 물고 가는 시간이 온다는 걸-

시집의 제목을 따온 시,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역에서>에는 시인의 아픈 삶이 스며있는 것이 아닐까요.

우리들 삶의 목적지는 어디일까요, 지금 어디쯤 가고 있으며 언제쯤 다다를 수 있을까요.

저의 두 번째 시집에 서문을 써주셨던 故 황금찬 시인이 어느 문학강연에서 하신 말씀이 생각납니다.

“시인이 대접받는 사회가 되어야 진정한 문화선진국입니다.

시를 읽고 쓸 수 있다는 것은 그만큼 마음이 안정되어 있다는 뜻이에요.

부(富)의 많고 적음과는 상관이 없어요....”

올여름은 유난히 더울 것이라고 하지요. 이번 여름엔 그동안 읽고 싶었던 시집들을 읽으며 지내려 합니다.

시어들 속을 헤엄치며 바닷속을 유영해 볼까, 아니면 헤세가 좋아하는 구름 위를 걸어볼까 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 봅니다.

휴가지로 떠날 때 시집 한 권 챙겨, 시 읽는 기쁨을 누려보시면 어떨까요.

허수경 시인의 시 <수박>을 소개해 봅니다.

수박

아직도 둥근 것을 보면 아파요

둥근 적이 없었던 청춘이 문득 돌아오다 길 잃은 것처럼

그러나 아휴 둥글기도 해라

저 푸른 지구만 한 땅의 열매

저물어 가는 저녁이었어요

수박 한 통 사들고 돌아오는

그대도 내 눈동자, 가장 깊숙한 곳에

들어와 있었지요

태양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당신은 영원한 사랑

태양의 산만한 친구 구름을 향해 말을 걸었어요

당신은 나의 울적한 사랑

태양의 우울한 그림자 비에게 말을 걸었어요

당신은 나의 혼자 떠난 피리 같은 사랑

땅을 안았지요

둥근 바람의 어깨가 가만히 왔지요

나, 수박 속에 든

저 수많은 별들을 모르던 시절

나는 당신의 그림자만이 좋았어요

저 푸른 시절의 손바닥이 저렇게 붉어서

검은 눈물 같은 사랑을 안고 있는 줄 알게 되어

이제는 당신의 저만치 가 있는 마음도 좋아요

내가 어떻게 보았을까요, 기적처럼 이제 곧

푸르게 차오르는 냇물의 시간이 온다는 걸

가재와 붕장어의 시간이 온다는 걸

선잠과 어린 새벽의 손이 포플러처럼 흔들리는 시간이 온다는 걸

날아가는 어린 새가 수박빛 향기를 물고 가는 시간이 온다는 걸

<사진, 글 : 서대문구 블로그 서포터즈 '유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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