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월은 호국보훈의달

‘나라를 위해 자신의 몸과

마음을 바친 분들을 기리는 달’입니다.

지금으로부터 74년 전 1950년 6월에는

민족 분단의 아픔인 6·25 전쟁이 발발 했었습니다.

6·25 전쟁의 아픔을 잊지 말자는 의미로

경기도에 위치한 국가수호 사적지를 소개드리려 합니다.

군번 없는 영웅,

독수리유격대를 찾아서

김빛여울 기자

포천시 관음산의

가파른 오르막을 한참 오르자,

파란 하늘 아래 외로운 기념탑하나

굳건하게 서 있습니다.

일부러 보러 오지 않는 이상 찾기 어려웠을 탑입니다.

독수리유격대 전적비. ©김빛여울 기자

포천시 정예 자경단 ‘독수리유격대’

1980년대까지만 해도 대원들이

상훈에 초연하였기 때문에 잊혀지다시피 한 부대였다.

나라에서는 징집 명령을 받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군번도 없이 자발적으로 우리나라를 목숨으로 지켜낸

이 분들의 큰 공로를 인정하여,

결국 뒤늦게 국가수호 사적지로 지정을 하였다.

독수리유격대 전적비 뒤에 새겨진 시. ©김빛여울 기자

6.25전쟁이 일어났던 당시,

독수리유격대는 63명의 인원들로

나라를 위해 용감하게 싸웠고,

많은 대원들이 무명으로 산화하였다.

오늘날의 대한민국과 자유민주주의는

그 분들과 가족들의 피와 눈물로 이루어진 것이다.

독수리유격대 전적비 안내판. ©김빛여울 기자

기자는 유격대장 최종성의 손자

최송학 씨를 인터뷰했다.

독수리 유격대를 이끌었던 조부와

그의 아버지는 최송학 씨가 고작 11살일때 전사하셨다.

“이 탑은 우리(독수리유격대원 및 그 자손들)가

직접 쌓은 것입니다”라고 말하는 그의 얼굴은

자랑스러움으로 몹시 환하게 빛나 보였다.

독수리유격대 전적비에 대해 설명해 주시는 관리소장 최송학 ©김빛여울 기자

매일매일, 하루도 빠짐없이 이곳에 들르신다는

최송학 씨는 독수리유격대 전적비 주변에 있는

대장 및 대원분의 산소를 소개했다.

그분들의 묘 앞에서자 무언가 뜨거운 것이

치밀어 오르는 느낌은 기자만의 착각이었을까.

독수리유격대 대원의 묘. ©김빛여울 기자

독수리 유격대와 같은 분들이

우리나라를 수호하지 않았다면

지금쯤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고 있을까.

74년전 6월에, 도대체 얼마나 많은 군번없는 영웅들이

우리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걸었을까.

밤이 깊을수록 생각도 깊어가는 뜨거운 저녁이다.


전쟁의 아픔을 그대로 간직한 문화재

수원화성 장안문

강준모 기자

세계 문화유산인 수원화성의 장안문 ⓒ강준모 기자

수원화성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건축물입니다.

1796년 다산 정약용의 주도하에 건축되었고,

일제 강점기와 6.25 전쟁을 거치면서

많은 부분이 폭파 및 소실되었으나,

1970년대 대대적인 복원작업을 거쳐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1951년 1월 25일. 일부가 폭파된 수원화성 장안문. ©독립기념관

1950년 7월, 북한군의 남침 직후

국군의 저지에도 불구하고

북한군 전차가 수원을 향해 계속 남진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육군 정일권 소장은 육군본부를

수원에서 평택으로 철수하기로 하고

병력을 남겨 북한군의 공격을 저지하게 하였습니다.

수원에 남은 잔류부대는

장안문을 중심으로 진지를 점령하게 되었는데,

이 과정에서 최창식 대령이 장안문을 파괴하여

도로를 이용할 수 없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런데 안양에서 철수하여 북문을 지나던

수도사단장 이종찬 대령이 그 광경을 목격하고는

문화재의 보호를 위해 폭파를 만류하였습니다.

덕분에 수원화성 장안문은 일부만 피해를 입은 채

정조대왕이 축조했을 당시의

장안문 모습을 유지하게 되었습니다.

장안문 성벽에 무수히 남아 있는 포탄 자국들  ⓒ강준모 기자

장안문은 복원되어 아무일 없다는 듯

그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자세히 보면,

아직도 성벽에 남아 있는 포탄 자국

전쟁의 아픔을 생생히 말해주고 있는듯 합니다.

늠름한 장안문의 모습 ⓒ강준모 기자

수원화성 장안문을 돌아보며,

포탄에도 굳건히 살아남은 장안문의 모습

감동을 느낌과 동시에,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순국선열의 호국 정신에 새삼 감사하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나라 사랑하는 마음을 잘 이어받아

이 땅의 평화를 지키기 위해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들어본 적 없는 나라를 위한

스미스부대의 희생

임세은 기자

오산 죽미령 평화공원에는

스미스평화관, 유엔군 초전기념관이있다.

이 곳은 국가수호 현충시설이자

추모와 감사의 공간입니다.

유엔군 지상군(미 지상군 부대 스미스특수임무부대)과

북한군의 첫 전투가 있었던 오산 죽미령에 조성되었습니다.

오산죽미령평화공원 ⓒ경기도청

당시 전투에 참전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540명 중 180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는

큰 희생을 치루었습니다.

큰 전력 차이 임에도 불구하고

치열했던 6시간 15분동안의 전투

기념관에서 영상으로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오산죽미령평화공원 ⓒ경기도청

죽미령전투는 한국전쟁에 있어서

유엔군의 첫 참전과 함께

아군에게 반격의 준비시간을

벌어준 중요한 전투입니다.

(구(舊) 초전기념비) ⓒ임세은

종전 이후, 1955년 스미스 부대 장병들이

전사한 전우들을 기리고 만든 기념비를 건립하였는데,

이는, 스미스부대원을 상징하는

540개의 돌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오산죽미령평화공원 ⓒ임세은

자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위해

이국만리에서 희생한

스미스부대원과 참전용사을 생각하니

감사한 마음에 절로 숙연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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