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콘텐츠는 수원시 SNS 시민 서포터즈가 취재한 내용입니다."

애태우던 벚꽃이 뒤늦게 피더니 제대로 절정을 보내고 엔딩이 시작될 때 또 다른 봄꽃은 말 잘 듣는 학생처럼 제때 피어 꽃구경하기 좋은 계절입니다. 봄의 수원화성 하면 철쭉과 어우러진 풍경으로 사진 찍기 좋은 곳으로 봄나들이 갈만한 방화수류정 인근을 소개합니다.

수원화성 성밖 둘레로 철쭉이 만발했는데 방화수류정 인근은 성안과 성 밖으로 화사하게 피었습니다.

수원 삼일고등학교 후문에서 방화수류정으로 가는 길에 보물로 지정된 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가 있습니다. 승려의 출생에서 사망까지의 행적 등을 기록한 비석으로, 고승이 입적한 후 그의 죽음을 추모하고 존경심을 나타내기 위해 세운 탑비입니다. 진각국사 탑비로 전체 높이 2.12m, 비신 높이 1.51m, 비신 폭 0.81m의 고려시대 탑비입니다.

진각국사 찬희(1307년~1382년)는 고려 승려로 호는 설산 일명 희이며 흥해(지금의 경상북도 포항) 출신입니다. 공민왕 대에 국사가 되었으며 시호는 진각입니다. 금강산·오대산 등 여러 사찰을 다니면서 후학들을 지도하다가 수원시 장안구 상광교동 창성사에서 입적하여 세웠는데 1965년 현재 수원시 매향동으로 옮겼습니다.

탑비를 지나며 방화수류정과 화홍문이 보입니다. 수원화성 성곽길을 걸을 때 성안과 성 밖으로 다니는데 북암문으로 왕래할 수 있습니다. 먼저 성안 방화수류정을 보고 북암문을 통하여 성 밖으로 갑니다.

수원화성 동북쪽 요충지에 세운 감시용 시설 동북각루로 군사시설이지만 용연과 함께 경치를 즐기는 정자로 방화수류정으로도 부릅니다. 1794년(정조 18년) 건립된 화성 부속 군사시설로 석재와 목재, 전돌(벽돌)을 적절하게 사용해 만들었습니다. 주변 감시와 지휘라는 군사적 목적에 충실하면서 동시에 주변 경관과 조화를 이루는 조선시대 정자 건축의 특징을 잘 나타내고 있어 보물로 지정되었습니다.

2022년 12월부터 문화재 안전 확보 시까지 출입을 제한하여 아쉽게도 내부는 못 보고 이렇게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저곳에 올라 용연도 내려다보고 주변 수원화성 시설물도 바라볼 수 있는데 이른 시일 내 출입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성의 굴곡부나 모퉁이, 돌출부 등의 요소에 지은 다락집을 각루라고 하고 혹은 초루라 합니다. 짐승의 뿔처럼 튀어나온 땅 위에 높은 마루 집을 짓고 적들의 동정을 살피는 곳이며 총이나 포를 쏘기도 하는 요새로 방화수류정은 용머리(용두) 바위 위에 지었습니다.

작지만 평면은 복잡한 방화수류정은 동서 방향으로 3칸인데 가운데 칸에 온돌을 놓았고, 이 방에서 북으로 한 칸을 붙이고 남쪽으로 반 칸을 물렸습니다. 서쪽의 한 칸은 또 길게 두 칸을 끌어내어 복잡하다 보니 지붕은 더욱 복잡합니다. 팔작지붕이 모여서 열십자(十) 형태가 되면서 모임지붕처럼 되어 가운데에 절병통을 얹어 장식했고, 서쪽의 남쪽으로 길게 내려간 지붕도 팔작지붕으로 마감했습니다. 호로병 같은 장식 기와가 절병통으로 누수 방지용인데 건물을 상서롭고, 장업하게 꾸미는 기능으로 창덕궁 상량정, 삼삼와, 애련정, 태극정과 경복궁 동십자각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1796년(정조 20)에 창건하고 1972년 수리한 북암문입니다. 수원화성 북쪽에 낸 비상 출입문으로 적이 모르게 출입하고 군수품을 조달하던 암문입니다. 반대 방향에서 보면 지형에 맞춰 좌우 성벽까지 벽돌로 둥글게 만들어 축성 당시 잘 남아 있습니다.

성안에서 북암문을 통해 성 밖으로 나가니 봄나들이 많이 오셨습니다. 인근 피크닉 대여점에서 소품 대여를 하거나 집에서 돗자리 가지고 와서 소풍을 즐기며 봄을 만끽하고 있습니다.

피크닉이 아니라도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벤치도 있습니다. 봄바람이 부니 수양버들이 춤추듯 흔들흔들하는 풍경이 아름다운 봄날입니다.

철쭉꽃이 필 때면 수원화성과 철쭉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으려고 사진 찍으러 많이 오는 곳입니다. 용연 주변으로 철쭉이 화사하게 피어 꽃구경하기도 좋습니다.

광교산 자락이 흘러와 정기를 맺은 용두암 위에 지은 방화수류정의 또 다른 이름은 용두각이며 용두암에 걸맞게 연못을 조성하고 용연이라 불렀습니다. 화성성역의궤에는 용연이 반달처럼 생겼고, 용두 바위는 물고기를 잡는 조대로 쓸 만하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용연에 비친 달이 떠오르는 모습인 ‘용지대월(龍池待月)’은 화성에서 보아야 할 아름다운 경치로 야경과 함께 볼만합니다.

용연에서 보이는 동북포루. 지붕의 모습이 조선 시대 선비들이 쓰던 각건이란 모자와 비슷해 보여서 ‘각건대’라는 별칭을 갖고 있습니다. 동암문에서 동북포루 방향으로 철쭉과 함께 아름다운 해넘이를 감상할 수 있는 일몰 명소입니다.

용연의 물이 넘치면 서쪽의 출수구를 통해 수원천으로 흘러 나갑니다. 출수구에는 용이 되기 전 단계의 짐승인 이무기 머릿돌을 설치하고 그 입으로 용연의 물을 뿜어내게 하였습니다. 원형이 잘 남아 있는데 코는 깨졌습니다. 추측으로 자식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코를 조금씩 깨어서 가지고 간 듯하다고 합니다.

이무기를 지나 돌다리 건너 방화수류정과 화홍문을 바라봅니다. 그 앞에 라일락이 피었는데 향기가 어찌나 좋은지 한참 머물렀습니다. 방화수류정에는 못 들어가도 화홍문은 입장할 수 있어 편안하게 휴식을 취하는 분이 많습니다.

봄나들이로 수원화성 성곽길 산책도 좋습니다. 화홍문에서 성 밖으로 북동포루를 지나 장안문으로 갈 수 있는데 가볍게 방화수류정 인근으로 화홍문까지 다녀왔습니다.

화홍문과 방화수류정이 가장 잘 보이는 포토존입니다. 1794년(정조 18년) 2월 28일 터 닦기 공사에 착수하여 동년 8월 초3일 홍예가 이루어지고, 10월 13일 입주상량(기둥을 세운 뒤 보와 마룻대롤 올림) 하고 이듬해인 1795년(정조 19년) 정월 13일 문루가 준공된 화홍문입니다.

광교천이 가로질러 흐르고 있어 여름의 장마가 질 때마다 넘쳐흐르는 물난리를 겪었으므로 축성 공사 때 먼저 물길을 파서 넓히고 7칸의 홍예석교를 하천 위에 걸쳐 놓았습니다.

1922년 대홍수로 화홍문이 파괴되어 1925년 수원시민의 기부를 받아 복원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백성들이 자발적으로 돈을 모아 문화유산을 복원한 최초의 사례라고 합니다.

화홍문 공사를 끝낸 후 정조대왕은 화홍문에 누각을 설치하고 대대적인 선언을 했습니다.

“수원의 모든 누각은 양반, 평민, 천민 구분 없이 누구에게나 열려 있다. 신분 지위를 막론하고 누구나 이곳에서는 평등하니 백성들은 마음 놓고 사용하라.” 그 덕에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화홍문에 입장하여 휴식을 취합니다.

화홍문에서 바라본 수원천. 기온이 많이 올라가면 분수도 가동합니다.

연무대에서 출발한 순환형 화성어차가 화홍문을 향해 달려옵니다. 화성어차는 수원화성의 주된 관광 포인트를 순환하는 관광열차로, 순종이 타던 자동차와 조선시대 국왕의 가마를 모티브로 제작되었습니다. 봄나들이 이색적인 체험으로 화성어차 타고 꽃길 바라보며 드라이브도 좋습니다.

체험 요금 : 어른 4,000원, 군인 및 청소년 2,500원, 어린이 1,500원

체험 시간 : 오전 9시 40분~ 오후 5시(20분 간격, 총 20회)

출발 노선 : ①연무대 → ②화홍문(하차 가능) → ③장안문 → ④화서문(하차 가능) → ⑤화성행궁(하차 가능) → ⑥연무대

*중간 하차 시 재탑승 불가

방화수류정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천로392번길 44-6

수원 창성사지 진각국사탑비

경기 수원시 팔달구 매향동 13-1

화홍문

경기 수원시 팔달구 북수동

2024 수원시 SNS 서포터즈 박미연님이 작성해 주신 글입니다

박미연 서포터즈님의 블로그 : https://blog.naver.com/ydl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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