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천정→닭실마을→산수유마을→우곡성지로 걸어볼 수 있는 길로 봉황 솔숲 길이기도 합니다. 천주교가 이 땅에 자리 잡은 것은 누구나에게 기회가 있다는 그런 관점의 세계관 때문이었습니다. 종교를 넘어서는 평등하고 기회가 누구에게나 제공이 된다는 그런 세상은 당시 조선왕실에서는 인정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천주교는 단순히 종교가 아니라 다양한 서양학문과 함께 들어왔습니다.

이곳 성지를 대표하는 인물이면서 한국 최초의 수덕자이기도 한 농은 홍유한은 왕가의 사돈이며 명문가였던 집안을 뒤로하고 산골로 내려가 책에서 읽는 내용을 몸소 실천하며 살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러 종교에 대해 편견 없이 바라보는 편인데 천주교에서는 칠극이 있습니다. 칠극이라고 하는 것은 교만, 질투, 탐욕, 분노, 식탐, 음란, 나태를 극복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적어놓은 책이라고 합니다.

하나의 종교가 자리 잡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거의 100여 년을 지나서야 핍박을 받지 않게 된 천주교를 믿었던 사람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책에서 깨우친 대로 천주교도인의 삶을 살았던 홍유한의 사후에 혜경궁 홍 씨는 아들 순조를 통해 실권을 쥐고 나서 천주교도인들에 대한 박해를 시작하였습니다.

녹음이 우거진 봉화군 우곡성지는 그냥 가볍게 걸어보기에 좋은 곳입니다. 홍유한의 조카였던 홍낙민은 1784년 세례를 받은 뒤 정조와 주위의 강권으로 배교도 했지만 1801년 신유박해 시기 이승훈, 최창현 등과 함께 서울 서소문에서 참수형을 당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어떤 시기에는 합리적이면서 불법이 아닌 일도 불법이 되어 죽음을 맞이하기도 합니다.

이곳에서도 주기적으로 미사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느님에게 드리는 제사이며, 영신(靈神)의 양식(糧食)을 미사라고 하는데 원래 라틴어의 ‘missa’는 미사성제가 끝났음을 선포하는 말로 파견을 뜻하기도 합니다. 미사는 말씀의 전례(典禮)와 성찬(聖餐)의 전례로 구분됩니다.

우곡(雨谷)이라고 함은 빗물에 패어서 생긴 골짜기를 의미합니다. 봉화군 우곡성지는 그런 골짜기에 자리한 곳입니다.

봉화가 소나무로도 유명한 곳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이곳에도 사시사철 푸른 나무들이 주변에 자리한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보통 기릴 만한 신성한 곳으로 여겨져서 수많은 순례객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것이 성지이기도 합니다.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성지는 예루살렘입니다. 기독교, 이슬람, 유대교 등 무려 3가지 유력종교의 성지이기도 합니다. 사실 유대교의 성지는 대부분 기독교나 이슬람교에서도 성지로 인정됩니다.

일상의 쉼을 위해서 잠시 방문해 본 봉화군의 우곡성지에서 산림욕을 하면서 거닐어 봅니다. 매일이 즐거운 나날은 아니겠지만 그렇게 살다 보면 새로운 발견을 통해 가을의 분위기를 만끽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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