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속 다 함께 지켜가야 할 문화유산, 숭렬당과 숭렬공원
보물 제521호 숭렬당은 조선조 세종 15년인 1433년에 건립된 중국식 건물로 구조와 형태가 특이한 소박한 건축물입니다.
숭렬당은 세종 원년 쓰시마 정벌과 야인 토벌 등에 많은 공을 세웠던 일명 복장군이라 불렸던
명장 위양공 이순몽 장군이 평소 기거했던 집이라고 합니다.
‘휴식을 취하고 생활하던 곳’이라는 뜻으로 이순몽 장군이 살던 집의 사랑채 같은 곳이라 여겨지고 있습니다.
숭렬당은 우리나라 전통 한옥과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 일반적인데 숭렬당의 지붕은 맞배지붕
그 양쪽 끝 칸에 날개를 단 듯 처마를 덧단 구조를 하고 있어 중국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합니다.
몇 차례의 보수 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으로 잘 보존되고 있습니다.
양쪽 끝에 두 개의 방을 마련하고 가운데 넓은 대청마루가 시원스럽게 펼쳐진 모습이 무장이 집다운 꾸밈없이 면모를 보는 듯 합니다.
숭렬당의 현판은 문신 동농 김가진 선생이 쓴 것이며 영천 향사당 입규 현판은
그 당시 향사당에 출입을 하던 사람들의 향규를 적어놓은 것입니다.
향규는 향촌 자치를 바르게 실천하기 위한 규율이나 규칙 같은 것으로
전란 후의 영천의 사회 기강 확립을 위한 의도로 집약되어
당시의 사회적 상황 및 조선시대 향촌사회의 변화되는 과정들 잘 보여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외삼문 안으로 아담한 숭렬공원이 조성되어 있습니다.
태극문양의 중삼문 안으로 숭렬당이 섰고, 바로 뒤편 내삼문 안쪽으로는 이순몽 장군의 위패를 모셔둔 사당 위양사가 있습니다.
위양사는 이순몽의 묘우로, 1614년 광해조에 영천 사림과 방손들이 건립했는데
1759년에 중창, 2004년에 다시 보수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습니다.
이순몽 장군은 직계 후손은 없어서 현재도 유림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봄 가을에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
사당 옆에는 긴 세월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는 향나무 한 그루가 누웠습니다.
오랜 시간 사당과 함께 했을 향나무의 자태가 범상찮아 보입니다.
소공원에는 앞쪽에는 포은 정몽주 선생 자당 변한국대부인 영천이씨 추모비와,
안쪽에 숭렬당의 주인인 우군 우절제사 이순몽 장군 개선 송덕시비로 영중추원사 영천이공 시 위양 휘 순몽 신도비가 자리해 있습니다.
도심에 위치한 숭렬당은 예쁜 정원 형태의 작은 숭렬공원이 감싸듯 합니다.
숭렬공원은 평소엔 인근 주민들의 쉼터와 조용히 사색하며 걷고 쉬어갈 수 있도록 제법 오밀조밀 잘 조성되어 있습니다.
숭렬당과 숭렬공원 주변으로 주차 공간도 있으며, 길 건너 공영주차장이 새롭게 조성되어 주차걱정없이 숭렬당을 관람할 수 있습니다.
아이들과 함께 놀이하듯, 공원을 찾듯 우리가 지키고 보존해야 할
우리 문화유산에 한 발짝 더 다가갈 수 있도록 자주자주 방문, 관람하길 바라봅니다.
숭렬당과 숭렬공원
경상북도 영천시 성내동 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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