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옛 선비들의 비밀 '동춘당 역사공원'
문화해설사가 들려주는 옛 선비들의 비밀 '동춘당 역사공원'
동춘당 역사공원은 한국의 대표적인 유서 깊은 공원 중 하나로, 조선 중기 학자이자 충신인 송준길(宋浚吉, 1606~1672)의 별서(별장)인 동춘당(同春堂)이 있는 곳입니다.
이곳은 그의 후손들이 대대로 보존해 온 유적지로 개발되기 이전에는 조용하고 전통적인 한옥 건축물들이 중심을 이루는 장소였습니다.
개발 전의 동춘당 공원은 주변에 자연이 풍부하게 남아있었으며, 한적한 시골 풍경에 가까운 모습이었습니다. 동춘당을 비롯한 몇몇 한옥 건물들이 자리 잡고 있으며, 넓은 초지와 소나무 숲, 전통 정원이 주변에 널리 펴져 있었습니다.
이 지역은 송준길이 학문에 정진하고 후학을 가르치던 장소로 사용되었으며, 자연을 배경으로 한 조용하고 평화로운 공간이었습니다. 당시의 동춘당은 지금처럼 정비된 공원이 아닌 역사적인 건물과 주변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전통적인 경관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1997~1998년도를 시작으로 동춘당 주변에서는 택지 개발이 진행되었습니다.
이 시기는 지역의 경관과 환경이 급격히 변화한 시점이고 택지 개발이 이루어지는 시기에 동춘당이 어떻게 변화했는지 변천하는 모습을 생생하게 기록하고 계신 '문화해설사 박은숙' 선생님의 기록을 보며 생동감 있게 느낄 수 있었습니다.
2005년도에는 동춘당 주변이 택지 개발로 인해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근처에 아파트 단지와 같은 주거지가 조성되면서 도시화가 급격히 진행되었습니다.
이러한 택지 개발로 인해 동춘당은 현대적인 건물들과 나란히 서 있게 되었지만, 그 고유의 역사적 가치와 정취는 여전히 보존되고 있습니다.
2005년 당시 동춘당은 이미 도시 개발로 주변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고 있지만, 공원 한편에 있는 완만한 언덕은 겨울이면 눈이 쌓여 아이들에게 자연스러운 눈썰매장이 되었습니다.
2006년 동춘당 공원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그 시절 동춘당 공원 입구에 자리 잡고 있던 작은 휴게실과 커피자판기가 있었습니다.
2006년 4월 화사한 봄 햇살 아래 만개한 배롱나무의 우아한 자태는 고요한 정원 속 동춘당의 풍경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듯합니다.
동춘당 명품공원 조성 사업은 동춘당을 더욱 아름답게 가꾸기 위해 큰 변화를 끌어 냈습니다.
이번 조성 사업의 핵심은 동춘당 옛길 복원과 연못 재조성, 그리고 야간에도 동춘당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도록 한 조명이었습니다.
이 명품공원 조성 사업은 동춘당의 역사적 가치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전통과 자연, 그리고 현대적 편의 시설이 조화를 이루는 공간으로 만들어 주었다고 문화해설사 박은숙 선생님의 설명이었습니다.
예전의 동춘당은 지금처럼 정비된 공원이 아닌, 역사적인 건물과 주변 자연경관이 조화를 이루는 전통적인 경관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특별한 현대적 시설이나 정비된 산책로, 주차장 등은 존재하지 않았으며, 방문객도 많지 않아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를 띠고 있었습니다.
이후, 동춘당 일대는 역사적 가치와 유적의 보존을 위해 개발되고 정비되었으며, 오늘날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는 대전의 문화재 공원이 되었습니다.
2013년과 14년에 동춘당과 동춘당 고택을 보수 정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상량 기록이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그 상량 기록을 토대로 연구를 하니 대전 동춘당 고택은 조선 전기 임진왜란 이전에 살림채에 모습을 알 수 있는 희소성과 여러 가지 상량 기록을 통한 역사적 변천 과정 기록을 알 수 있어서 중요한 문화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서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게 되었다고 합니다.
동춘당 입구의 일간문은 동춘당의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할 수 있는 출입구로 아담하고 문이 낮게 만들어져 있습니다. 조선시대 유학의 중심지로 당시 교육과 학문이 이루어졌던 장소입니다. 학당문을 들어설 때는 겸손하게 자기를 낮추고 배우겠다는 마음으로 들어가는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문을 들어서면 동춘당이 여유롭게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홑처마 팔작지붕의 건물이 마치 날개를 펼친 듯, 사방의 추녀가 살짝 들려 있어 고요한 아름다움을 자아냅니다.
단아한 동춘당 건물은 조선 효종 때 대사헌, 이조판서, 병조판서를 지낸 동춘당(同春堂) 송준길(宋浚吉, 1606~1672) 선생의 별당(別堂)입니다.
구조는 비교적 간소하고 규모도 크지 않지만, 조선시대 별당 건축의 한 유형으로 중요한 문화재적인 가치를 인정받아서 국가 보물 209호로 지정되었습니다.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이며, 오른쪽 4칸은 대청마루, 왼쪽 2칸은 온돌방 구조입니다. 대청의 앞면·옆면·뒷면에는 쪽마루를 내었습니다.
동춘당 현판은 동춘이란 늘 봄과 같다는 뜻의 동춘당(同春堂)은 그의 호를 따서 지은 것으로 이곳에 걸린 현판은 송준길 선생이 돌아가신 6년 후 숙종 4년(1678) 우암 송시열 선생이 동춘 선생을 기리기 위해 직접 쓴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전통적인 한식 기와로 팔작지붕 양식에 따라 지어진 동춘당 지붕은 단아하며 균형감 있고 우아한 곡선미를 강조하며,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구조로 설계되었다고 합니다. 기와는 단순한 외관 요소를 넘어서 비나 눈이 쌓였을 때 빠르게 흘러내리게 함으로써 구조물을 보호한다고 합니다.
동춘당의 기와지붕과 용추는 전통 한국 건축의 중요한 요소로, 각각의 특징과 상징성을 지니고 있다고 합니다. 동춘당은 학자의 별당으로 간소하고 절제된 건축 양식을 따랐다고 합니다.
빠져나온 처마로 일조량을 조절하기도 하며 단아하며 균형감 있고 우아한 곡선의 조선시대 건축 양식이 잘 나타나 있으며 처마의 아름다움 더 해주는 '갈보 산방'은 처마의 경계를 부드럽게 이어줍니다.
전통적인 미감을 강조하며, 서까래 부채모양의 선자연(扇子椽)은 지붕의 유려한 곡선을 연출한다고 합니다.
대청마루의 우물천장은 전통 한옥의 독특한 건축 요소로, 우물천장은 천장을 평범하게 만들지 않고, 마치 우물처럼 가운데가 살짝 들어가도록 만든 형태입니다. 이 구조는 공간을 시각적으로 넓게 보이게 하며, 실내를 쾌적하게 유지하는 역할을 합니다.
포저(浦渚) 조익( 趙翼, 1579 -1655)은 조선 중기의 학자로, 동춘당의 기록인 동춘당기(同春堂記)를 남겼습니다. 대청 중앙에 걸려 있습니다.
동춘당은 선조들의 뛰어난 지혜가 숨어 있다고 합니다. 정면 방향은 남향으로 문을 보면 창호지 부분과 탐목 부분인 창방으로 창호지가 있는 부분은 햇살이 들어가 사계절 내내 일조량이 풍부한 방향으로 자리 잡고 있습니다.
남향 창호지는 크기가 가장 크며, 남쪽에서 들어오는 햇빛을 최대 받아들이도록 설계되어 있습니다.
동쪽 면을 보면 남쪽 면에 비해 창호지 면적이 작은데 아침 햇살의 눈 부심을 방지하는 선조의 지혜를 엿볼 수 있습니다.
북쪽에는 전체창이 아니라 작은 창문으로 되어 있는데 북쪽은 햇빛이 거의 들지 않는 방향으로, 바람이 많이 불고 온도가 낮은 특성이 있어, 추운 바람을 막기 위해 매우 작거나, 없는 경우도 많다고 합니다.
문얼굴(창문) 아래는 나무로 만들어진 것을 머름이라고 합니다. 머름은 방한과 사생활 보호 기능으로 머름이 있으면 출입하지 않으므로 문이 아니라 창문이 된다고 합니다.
머름의 높이는 앉아서 팔을 올려놓았을 때 가장 편한 높이로, 그 높이는 영조척(營造尺)으로 한자 다섯 치(1,5尺)에서 한자 여덟 척(1.8尺)으로 현재의 cm로 변환하면 약 45cm~55cm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밖에서 방바닥이 보이지 않아 내부 공간에서의 행위를 될 수 있으면 남에게 드러내 보이지 않으려는 의도가 담겨 있다고 합니다.
불을 지피는 아궁이입니다. 대부분의 아궁이는 부뚜막이 있어 솥을 거는데 이곳은 오직 남방을 위한 기능만 하는 것으로 함실아궁이라고 합니다.
온돌방 아래 초석과 같은 높이로 뚫어 잔 굴뚝은 유학의 은둔적 사고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다고 합니다.
굴뚝이 높으면 온기가 오래가서 따뜻한데 여기 굴뚝 구조를 보면 굴뚝을 보이지 않게 함으로써 따뜻한 온돌방이라는 본능적 행위를 억제하는 유학적 덕목을 유지하려 하는 선비의 겸양과 검소함이 드러남을 이 굴뚝 하나에서도 찾아볼 수 있었다고 합니다.
종택으로 들어가는 높이 솟아 있는 솟을대문은 양반가의 상징으로 가마나 말이 들어갈 수 있게 높게 지어졌다고 합니다.
그런데 송준길 선생은 그 당시에 가마를 잘 타지 않고 '사람이 사람을 어떻게 지고 가겠는가?' 하는 생각으로 말을 자주 타고 다니셨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는데 이는 그가 사람을 소중히 여긴 인본주의적 태도를 드러내는 부분으로 해석됩니다.
아름다운 동춘당에서 조선시대 선비의 마음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에게 감동을 줍니다. 그 시절에도, 지금도 살아가는 이치는 변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자녀와 친구, 연인과 함께 고택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거닐며, 그 속에 깃든 옛이야기를 찾아보는 시간을 가져 보시길 바랍니다.
동춘당을 방문하셔서 동춘당에 숨겨진 이야기를 하나하나 발견하면서, 마음속 깊이 울림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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