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말라는 반면교사 - 진해역
휑~합니다. 1926년 11월 11일 진해선 개통과 함께 영업을 개시한 진해역은 2015년 2월 1일 이용객이 감소하면서 2015년 2월 1일
정기 여객 취급이 중단되었습니다.
폐역이라 무심하게 세워진 차들 사이로 보이는 옛 기차역이 전부입니다. 역 앞으로 다가서면 더욱 을씨년스럽습니다.
철도를 이용하시려면 마산역, 창원역, 창원중앙역을 이용하라는 안내마저도 무덤덤합니다. 진해역 발자취라는 안내판도 빛바래고 갈라져 제대로 읽기조차 힘듭니다.
다만 맞은편에 세워진 벚꽃 피고 지는 진해역이라는 안내판은 진해역의 지난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지붕창이 있는 유럽풍 문화재 역사’로 시작하는 안내판에 한 걸음 더 다가서 찬찬히 읽습니다.
바닷가 역사답게 개방적이고 독특한 형태를 띠고 있습니다. 유럽의 전통 건축에서 다락방을 낼 때 자주 사용하는 지붕창이 있어 전원의 목가적인 분위기를 느끼게 합니다. 작고 아담한 역사이지만 일제강점기부터 군사적 목적으로 만들어진 진해역의 가면 너머에 식민지 조선에 깃든 근대 건축 문화를 엿보게 합니다.
서구 분위기가 물씬한 진해역이 개통되기 한 해 전에 만들어진 경성역(현 서울역)은 당시 식민지 조선에서 가장 상징적인 근대적 경험 공간이었습니다. 전면 중앙에 비잔틴 양식의 돔을 얹고 그 바로 아래 벽면에는 아치형 창을 내어 역 중앙홀 안으로 자연채광이 들도록 설계했으며, 전체적으로는 네오르네상스 양식 풍이었습니다. 이런 경성역의 외형은 근대가 곧 서구이고, 서구가 곧 근대라는 인식을 심어주었습니다.
진해역에서는 경성역과 함께 식민지 조선에 건설한 각종 근대 건축물은 서양화를 모방해 제국주의를 향해 내달린 제국주의 일본의 힘을 드러내고자 했습니다. 이를 통해 식민지 조선 사람들에게 패배 의식을 심어주려 했을지 모릅니다.
일제가 건설하고자 한 식민지 조선의 모습들이 진해역을 중심으로 아직 아픈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중원·남원·북원로터리를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만들어진 시가지에 흑백 다방, 진해우체국, 진해 군항 마을역사관, 장옥거리, 원해루, 수양회관 등 각종 일본식 건물들이 그러합니다.
진해역 주위를 거닐면 식민지 조선 건설에 광분했던 대한민국 역사의 생채기 같은 현실을 마주합니다.
진해 역사를 찾으면서 일부에서 주장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곱씹을 수 있습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대표적 이론가로 동경제국대학 교수였던 스즈키 다케오(鈴木武雄)가 쓴 1946년 <조선 통치의 성격과 실적>을 떠올립니다. ‘일제의 한국 식민지 지배는 축복’이라는 스즈키는 “일본의 한국 통치 기간을 통해 한국의 산업 경제가 그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비약적으로 발전했다”라고 했습니다.
이에 대해 박찬승 한양대 사학과 교수는 <스즈키 다케오의 식민지 조선 근대화론>에서 “일제의 한국 지배 정책은 한국에서 인적 물적 자원을 수탈하고, 한국인들을 차별적으로 대우하는 것을 그 특징으로 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스즈키 다케오의 ‘식민지 조선 근대화론’은 일본의 식민지 지배 정책을 미화하고 합리화하기 위한 논리였다고 평가할 수 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김영삼 정권 때 조선총독부 건물을 철거한 뒤 일제강점기와 관련된 근대 건축 문화유산들을 없애려고 했던 적도 있습니다. 일제 침탈로 인한 우리 민족의 슬픈 근대 역사를 우리의 의식 속에 계속 상기시켜 주기 위해서라도 보존하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이 근대 문화유산은 과거의 아픈 역사를 반복하지 말라는 반면교사이기도 합니다.
진해 역사와 함께 진해 군항 역사길을 걷노라면 일제강점기의 아픈 역사의 생채기를 잊지 말라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과거 너머 오늘을 제대로 보고 미래를 맞이하라고 말합니다, 우리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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