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양사는 일생을 항일운동에 바친

지산 김복한(1860~1924) 선생의 영정을 봉안한

사우로 1975년 홍성군에서 건립했습니다.

홍성 여행을 가서 추양사라는 안내판이 있길래

어떤 곳인가 해서 한번 찾아가 보았습니다.

도착하니 주차할 공간도 있고

안내문과 함께 비석이 서 있었습니다.

일생을 항일운동에 바친 지산 김복한 선생에 관해서

솔직히 잘 몰랐는데 이번에 제대로 알게 되었습니다.

홍살문을 지나서 들어가시면 됩니다.

사진에는 일부만 나오지만, 잔디가 깔려 있는데

상당히 정비가 잘 되어 있습니다.

지산 김복한선생은 1892년 별시문과에 급제하여

교리와 형조참의, 승지 등의 관직을 두루 거쳤습니다.

1894년 6월 갑오개혁으로 일본식의 신제도가 채택되자

관직을 버리고 고향 충남 홍주로 귀향하여

스스로 지조를 지키고자 하였습니다.

1895년 을미사변과 단발령이 내려지자

창의할 것을 결심하고

홍주관찰사 이승우를 수차 설득하여

협조할 약조를 받아냈습니다.

이때 청양의 안창식 등이 민병 180명을 소집하여

거사할 준비를 마치자 선생은 대중의 뜻을 확인하고

홍주 입성 날짜를 1895년 12월 1일로 확정했습니다.

12월 3일 각 의병진의 대표들이 선생을 수석으로 삼고

징집 활동을 펼치는 등 거병했으나

12월 4일 이승우의 배반으로

의진 수뇌부가 체포 구금되었습니다.

선생과 이설, 안병찬, 송병직, 이상린, 홍건 등

6명은 서울로 압송되었고, 선생은 1896년 2월 25일

10년 유형을 선고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고종의 특지로 석방되자

선생은 즉시 고향으로 돌아와

보령 산중으로 들어가 학도들과 강론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그 후, 성균관장, 중추원 의관 등을

제수 받았으나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고 합니다.

추양사 안내문에 아주 설명이 잘 되어 있습니다.

우물인 거 같은데 닫혀 있지만

이곳에 왜 있는지 설명은 되어 있지 않았습니다.

홍성군 국가보훈처 지정 현충시설

의병 지산 김복한 선생의 유적지

추양사는 사당과 내삼문, 외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사당 내부에는 지산 김복한의 영정을 봉안하였다고 합니다.

매년 음력 3월 15일에 유림과 후손들이

제향하고 있다고 합니다.

지산 김복한 선생의 발자취를 더 들여다보면...!!!!

1905년 을사늑약 후 1906년 민종식이

홍주의병을 일으키자

이설과 함께 서울로 올라가 역적을 성토하는

상소를 올렸다가 1개월간 투옥된 후 석방되었고

후에 홍주의병과 연루된 혐의로 두 차례 체포되어

온갖 수욕을 받은 후 석방되기도 하였습니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파리평화회의에 보내는 독립청원서를 작성, 서명하였으며

서명자 137명이 모두 일경에 체포되었고

선생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가

결국, 순국하였습니다.

정부에서는 선생의 공을 기리어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습니다.

정말 일생을 항일운동에 바친 지산 김복한 선생의

발자취를 알 수 있는 추양사!

홍성 여행 시 방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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