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시간 전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독립운동을 한 경북인들의 모습을
이곳에서 확인해 보세요.
안동에 있는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을 둘러봤습니다.
📍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주소
경북 안동시 임하면 독립기념관길 2
문의
054-820-2600
홈페이지
https://815gb.or.kr/
태극기가 나부끼는 경상북도독립운동기념관
안녕하세요. 이종진입니다.
3월에 춥고 덥고 이런 가운데
안동에서 여행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역사 중 항일운동한 이들이
경북에 많다는 것을 아시나요?
경북에는 유림들이 많았기에
충과 효를 중시하는 분위기 속에서
일제에 항거한 인물들이 많았습니다.
오늘은 이들의 행적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1층 규모의 건물이 넓게 있는 이곳은
겨레마당, 추모벽, 독립관(전시 1관),
의열관(전시 2관), 새싹교육실,
신돌석관(연수 1관), 이강년관(연수 2관),
왕산관(대강당), 3.1마당, 박열동산으로
조성되어 있습니다.
국가유공자들을 위한 주차면도 눈에 띄는데요.
최근에는 국가유공자들을 위한
주차장이 생기고 있습니다.
나라에 대한 희생한 분들을
고려한 정책 응원하겠습니다.
9시부터 오픈하여 18시에 문을 닫습니다.
보통 전시관에서는 마감 1시간 전에
입장이 마감됩니다.
여기도 마찬가지이니 참조하시길 바랍니다.
매주 월요일은 정기휴무입니다.
전시관을 한번 살펴볼까요?
일제강점기 전의 세계에서는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도표와 세계지도,
사진 자료를 통해서 나타내고 있습니다.
경북 사람들의 항일투쟁 왜 으뜸일까?라는
전시자료에서는 학국독립운동이 처음 일어난 곳,
전국에서 자정순국자가 가장 많은 곳,
전국에서 독립유공자가 가장 많은 곳으로서
경북을 꼽고 있습니다.
경북에서는 의병들이 많이 일어났는데요.
경북의 의진과 의병장을
키오스크로 확인할 수 있습니다.
부자간의 자료도 있는데 의병들은
가족이 함께 한 활동도 많았습니다.
의병항쟁의 서막을 나타내는데요.
갑오의병이 일어난 안동 향교가 눈에 띕니다.
전국에서 가장 먼저 의병이 일어난 곳으로
경북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1894년 안동에서 일어났고
명성황후 시해와 단발령으로 인해
의병의 불꽃이 전국적으로 퍼져나갔습니다.
경북의 의병장들이 많이 배출되었는데요.
각 부대와 의진들이 함께 하여
13도 창의군으로서 전국에 활동하게 됩니다.
군사장은 허위인데 서울 진공 작전을
수행하는 인물로 구미에서 허위의 기념관을
통해 알아볼 수 있습니다.
항일운동에는 의병을 비롯해서
애국계몽운동도 있습니다.
혁신유림의 등장으로 분위기가
빠르게 변화하였습니다.
신교육으로 대중을 일깨우며
부강한 나라를 꿈꾸었습니다.
이들 중 신민회에 참여한 이들은
만주로 망명하여 활동을 이어갔습니다.
국채보상운동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일본에 진 나랏빚 1,300만 원을 갚기 위해
대구광문사 회원들이 앞장서서 나섰습니다.
농민, 가정주부, 기생 등 다양한 계층에서
참여하였습니다.
나라가 무너지자 경북의 유림들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이는 자정순국이라고 부릅니다.
경북에서는 19명으로 전국에서 가장 많습니다.
스승과 제자, 아버지와 아들,
남편과 아내가 자정순국의 길을 걸었습니다.
광복회는 의병과 계몽운동을 하는 단체입니다.
대구에서 만들어진 비밀단체로
대구 동구에서는 조양회관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저도 둘러봤는데 주변에는 항일독립운동기념탑도
있어 항일운동을 둘러보기 좋은 스팟입니다.
이 단체는 독립을 위해 자금 모집을 하고
무력항쟁을 통해서 독립운동에 나섰습니다.
친일파 처단과 연락 시설을 운영하여
전국적으로 활동한 단체입니다.
세계에 독립을 선언한 이야기는
1919년 2월 8일 일본의 도쿄에서
독립만세 함성이 울린 것으로 시작됩니다.
한국 유학생이 2.8독립 선언문을 통해서
선언하였고 3월 1일 서울을 시작으로 전국적으로
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조선이 독립국임과 조선인이 자주민임”을
선언한 것입니다.
학생들도 만세운동을 일으켰습니다.
대구에서 퍼졌는데요.
대구의 3.8 만세운동이 그러합니다.
당시 통신시설의 열악한 사정으로 서울에서
전국적으로 퍼지는 데 시일이 걸렸고
대구에서는 3월 8일에 만세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서문 밖 시장에서
1,000여 명의 학생과 시민이 도심을 향해
행진하였고 지금의 대구 백화점 자리에
있던 달성군청에서 일제 경찰에 의해서
붙잡혔습니다.
대구고등보통학교, 계성학교,
신명여학교 학생들이 주를 이루었습니다.
계성학교 아담스관에서 독립선언문을
만들던 현장을 조성하였는데요.
저도 아담스관이 있는 계성학교 방문해서 보니
감회가 새로웠습니다.
대구에 오신다면 서문시장 옆에 위치한
계성학교에서 역사의 울림을 맞아보시길 바랍니다.
경북에는 유림이 많았는데
이들이 파리강화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냈습니다.
이를 파리장서운동, 유림단의거라고 하는데요.
전국 곳곳에 파리장서비가 있습니다.
서울, 봉화, 밀양, 대구 등 지에서
유림의 뜻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모두 137명이 서명하였고 경북인이
61명으로 가장 많았습니다.
김창숙이 주도한 독립군 자금 모집 활동에도
대거 참여하였고 이를 2차 유림단의거라고 합니다.
의열투쟁에는 경북인이 앞장섰습니다.
의열투쟁은 일제의 침략 기관을 공격하고
침략 책임자를 처단하는 목표를 두고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의열단을 비롯하여
많은 의열 활동을 볼 수 있습니다.
신간회는 사회주의와
민족주의 계열을 합친 단체입니다.
최대 규모의 민족운동 단체로
전국에 150여 개 지회가 있었고
경북은 22개 군에 지회가 설립되었습니다.
특히 안동지회는
평양지회 다음으로 규모가 컸습니다.
대구에도 신간회의 활동을 약령시에 있는
교남 YMCA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들은 교육 활동을 통해 일제에 저항하였고
여성들도 근우회를 조직하여 운영되었습니다.
경북 여성들도 가만히 있지 않았습니다.
무장투쟁도 한 이들도 있는데 대표적인 인물로
남자현 열사가 있습니다.
영양에 가시면 남자현의 흔적을 엿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 알려진 ‘암살’영화의 모티프 주인공입니다.
또한 교육과 단체를 만들어
독립운동을 한 여성들도 많았습니다.
안동에는 전통마을이 많은데
독립운동의 성지가 되었습니다.
광복에 이르기 51년 동안 끊임없이
일제에 맞서 싸운 안동입니다.
독립운동의 성지로 불리기도 하는 이유입니다.
안동을 나누어서 시내와 서부, 동부 등
다양한 마을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안동에서 여행할 때는
이런 마을을 찾아가는 도보여행도 좋습니다.
미국에서도 독립을 꿈꾼 이들이 많습니다.
흥사단을 조직하여 선전, 외교 등을 통해
독립을 위해 힘썼습니다.
미국에서는 꿈을 가지고 하와이에 도착하여
고된 노동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생각하는 마음으로
시련을 이겨냈습니다.
4시 30분에 기상하여 20시 취침에 이르기까지
고된 고생을 하였습니다.
많은 고생이 있었지만 한인들은 함께
어려움을 이겨냈습니다.
독립운동자금을 지원하여
외국에서도 큰 힘을 만들어냈습니다.
다양한 활동을 하며 독립을 위한
열망을 잊지 않았습니다.
1945년 8월 15일 광복을 맞아
많은 이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들을 기억해야겠습니다.
알지 못했던 이들도 찾아서 기억하며
이들의 뜻을 새겨야겠습니다.
오늘 경북독립운동기념관을 둘러보면서
경북과 안동에서 많은 이들이
독립운동에 힘쓴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교과서에서뿐만 아니라
알지 못했던 이들도 알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안동에 오신다면 이곳에서 둘러보시고
나라를 사랑한 선조들의 뜻도 살펴보시길 바랍니다.
본 내용은 이종진 안동시
SNS 기자단 개인의 의견으로,
안동시 공식 입장이 아님을 밝힙니다.
- #안동
- #안동시
- #마카다안동
- #경북독립운동기념관
- #독립운동
- #안동독립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