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을 담은 보령성곽과 보령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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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가을을 담은

보령성곽과 보령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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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령 여행하면서 보령시 주포면에 있는 보령향교와 보령성곽에 다녀왔습니다. 초가을을 담고 있는 보령향교와 보령성곽은 이제 천천히 가을을 담아내고 있는 모습입니다. 보령성곽과 보령향교는 보령의 역사를 담아내고 있습니다.

지금의 보령시는 1914년 남포군 오천군 결성군 홍산군 병합하여 보령군으로 개편이 되었습니다. 거의 모든 행정구역이 역사 속에서 여러 번 개편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는 것처럼 보령시도 다양한 역사를 품고 있습니다.

보령시 주포면 소재지에서 주포초등학교 쪽으로 가다 보면 먼저 보령 관아문이 보입니다. 보령 관아문은 조선시대 보령현의 외곽에 쌓았던 보령 읍성의 남문 문루입니다. 보령관아문은 세종 13년(1431)에 현감 박효성이 지은 것이라고 전해지는데 앞면 3칸이고 옆면 2칸 규모 화려한 팔작지붕집입니다.

아래층은 기둥을 성벽 위에 걸쳐 성곽의 일반 문루처럼 가운데 한 칸만 통행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긴 주춧돌 위에 원기둥을 세웠고 2층은 누각을 설치하였습니다. 누각의 간단한 난간을 사방에 둘렀습니다. 건물의 앞면에 ‘해산루(海山樓)’라는 현판이 걸려 있습니다. 이 현판은 중종 때 영의정을 지낸 이산해의 친필입니다.

보령성곽은 적군의 침입을 막기 위해 흙이나 돌로 높이 쌓아 올린 큰 담입니다. 보령성곽은 고려 말에 왜구의 침입을 대비하여 쌓은 봉당성에 이미 있던 성을 보강하여 쌓아 만든 것이라고 합니다. 성곽을 돌아보면서 옛 모습을 상상해 보았습니다.

성의 규모는 둘레 630여m, 높이 3.5m이고, 성에는 적대가 8개소 있고 남ㆍ북ㆍ동문 3개소, 우물 3개소 등이 있었습니다. 1432년에 제민당, 공아, 병기고 등 140여 칸 규모의 건물을 지었습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임진왜란 의병전쟁 등을 거치며 파손되어 남문인 해산루 옆 성벽 약 70m와 북쪽 성벽 약 360m만이 보존되어 있습니다.

성곽 앞마을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농사를 짓고 술을 한 잔 마시면서 담소를 나누는 모습 또한 보기 좋습니다. 바로 옆에 논이 있어 농촌의 평화로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성곽 앞에 주차장이 있고 붉은 맨드라미가 꽃을 피우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성곽 가까이 서 있는 은행나무 잎이 노란색을 담아 가고 있습니다. 성곽을 천천히 걸으면서 옛 역사 속으로 들어가 보았습니다.

보령성곽을 돌아본 후에 보령향교로 향했습니다. 보령성곽에서 보령향교까지는 채 1km도 안 됩니다. 보령읍성길(0.2km)에서 질재로(0.5km) 그리고 향교말길(0.2km)을 달리다 보면 보령향교에 도착합니다.

입구에 홍살문이 서 있고 하마비도 있습니다. 하마비는 세운 지 얼마 안 되는 것 같습니다. 홍살문을 지나 잠시 올라가면 오른쪽에 주차장이 있습니다. 주차한 후에 향교를 돌아봅니다. 안타까운 것은 문이 잠겨져 있어 밖에서만 보아야 했습니다.

충청남도 기념물로 지정되어 있는 보령향교는 1723년(경종 3)에 현유(賢儒)의 위패를 봉안, 배향하고 지방의 유학교육과 교화를 위하여 창건되었습니다. 서원이 사립 교육기관이었다면 향교는 관립교육기관이었습니다. 물론 제향과 강학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지만 지금은 강학의 기능은 사라졌습니다.

이곳은 여러 번 중수하였고 현존하는 건물로는 정면 5칸, 측면 3칸의 맞배지붕으로 된 대성전을 비롯하여 5채의 부속 건물이 있습니다. 건축형태는 앞쪽에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뒤쪽에 제사 공간인 대성전이 있는 전학후묘(前學後廟)입니다.

대성전은 앞면 5칸·옆면 3칸의 규모의 맞배지붕으로, 배흘림기둥을 사용하였습니다. 앞면 3칸이고 옆면 2칸 규모의 명륜당은 팔작지붕입니다. 학생들의 기숙사인 동재는 앞면 5칸이고 옆면 2칸 규모에 팔작지붕이고 서재는 앞면 4칸이고 옆면 2칸 규모에 팔작지붕입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전답과 노비·전적(典籍) 등을 지급해줘 교관 1명이 정원 30명의 교생을 가르쳤다. 명륜당과 대성전 사이에 있는 내삼문은 솟을삼문 형식입니다. 대성전에는 5성, 송조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습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로부터 토지와 전적·노비 등을 지급받아 교관이 교생을 가르쳤습니다.

조선 후기 이래 향교는 교육 기능이 쇠퇴하고 대신 선현에 대한 제향을 통한 교화 기능을 주로 담당하였습니다. 봄과 가을에 석전을 봉행하며, 초하루 날과 보름에 분향을 하고 있습니다. 가을의 석전을 봉행한 흔적이 현수막에 남아있습니다.

전에 이곳에 와 본 적이 있는데 이곳에서 은행나무를 보았고 은행잎이 물들었으리라 생각을 하고 왔는데 찾아간 날은 덜 물이 들어서 좀 아쉬웠지만 지금은 노랗게 물들고 은행잎이 떨어져 자연 속으로 들어갔으리라 생각합니다.

보령향교 근처에는 벽화가 그려져 있어 벽화를 돌아보면서 시간을 보내도 좋습니다. 옛 선비들의 모습, 아이들이 향교에 가는 모습 그리고 정겨운 농촌의 모습이 벽화 속에 담겨 있습니다. 이번 가을 보령향교와 보령성곽을 돌아보면서 보령의 역사 속으로 들어가도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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