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보다 그라스 - 남구 그라스 정원 설명회
전 국민이 사진가가 되면서 잘 만든 꽃밭 하나가 지역의 기존 유명 관광지 보다 더 각광을 받는 시대입니다.
꽃밭을 배경으로 근사하게 담은 사진 한 장이 SNS에서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 소위 '핫플레이스'로 등극하는 것은 그야말로 순식간인 거지요.
이렇듯 아름답고 개성 있는 꽃밭이 사람들을 모여들게 하는 큰 힘이 있음을 실감한 전국의 지자체들은 저마다 계절 별로 아름다운 꽃밭을 만들기에 여념이 없는데요.
과유불급이라고, 어디에서 무슨 꽃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질 라면 무섭게 여러 지자체에서 앞다투어 같은 꽃을 심다 보니 전국 어디를 가더라고 계절 별로 각 지역의 특색을 살리지 못한 그 나물에 그 밥 같은 꽃밭이 양산되고 있음을 느끼는 요즘입니다.
이런 분위기 속에 2022년 가을에 울산 남구의 태화강변에 꽃이 아니라 길쭉한 잎과 이삭을 감상하는 '그라스 정원'이 조성된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는 굉장히 신선하게 다가왔는데요.
현재 매년 남구 태화강변을 따라 확장을 하고 있는 '그라스 정원' 설명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설명회에 다녀왔습니다.
꽃밭이라는 것이 일 년 내내 아름다운 공간이 아니라 꽃이 피는 기간만 화려하다 보니 꽃밭을 찾는 이 역시 일 년 중 길어야 한 달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치명적인 단점이 있습니다.
일 년 열두 달 중 한 달만 주목을 받고 나머지 열한 달은 그냥 찾는 이 없는 풀밭과 다름없는 거지요.
'아름다운 정원은 절대 유행을 타지 않는다'는 신념하에 여러해살이풀의 아름다움과 가능성에 주목하여 자연주의 정원을 펼친 '피터 아우돌프(Piet Oudolf)는 겨울조차 정원이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는데요.
아시아 지역 최초로 그가 조성한 태화강 국가 정원 속 '자연주의 정원'은 이러한 그의 철학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남구 '그라스 정원' 정원 역시 이러한 '자연주의 정원'의 흐름과 궤를 같이 하고 있습니다.
그라스(Grass)라는 것이 가을의 정취를 살려주는 '억새'를 비롯하여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소위 '풀떼기'들입니다.
꽃에 익숙하다 보면 이런 풀떼기들이 화려하지 않아서 눈에 잘 들어 오지도 않고 잘못 심으면 그냥 잡풀 같은 느낌을 주다 보니 정원으로 만들기가 쉽지 않습니다. 이러다 보니 개인이나 단체가 운영하는 정원이 아니면 시도하기도 쉽지 않은 편입니다.
2022년 가을 남구 태화강변에 '그라스 정원'이 조성된다는 얘기를 맨 처음 들었을 때, 개인적으로 사실 '기대 반, 우려반'이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것처럼 그라스 정원을 조성하더라도 눈에 잘 띄지 않을뿐더러 이후에도 제대로 관리가 되지 않으면 그냥 잡초밭이 되는 것이 기정사실인데, 시 단위도 아니고 '구' 단위에서 제대로 해낼지 무척 의문스러웠거든요.
산림청 사업으로 선정되면서 시작한 것이라 애먼 산림청 예산 받아서 그냥 보여주기식 사업이 되지 않을까, 의심스럽기까지 했습니다.
작년에 1구간의 조성을 끝난 가을에 그라스 정원을 찾았는데요. 기대 이상의 모습에 조금 놀라기도 했습니다.
뒤편의 국화밭과도 이물감 없이 자연스레 가을 정원이 이어지는 것도 좋았고요.
2023년 6월에 그라스 정원 옆으로 조성한 황토 맨발길 역시 그라스 정원 풍경을 헤치지 않고 잘 스며든 점도 인상적이었습니다.
올해 지난 10월 중순에 그라스 정원의 가을 풍경을 만나고 싶어 다시 찾았습니다.
2023년 확장 공사를 마친 구간의 가을 모습도 살필 겸 해서 말이죠.
작년에 만났던 풍경에서 과연 조금이라도 나아졌을지,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는데요.
작년보다 한층 나아진 모습에 조금이 아니라 진짜 많이 놀랐습니다.
아내랑 함께 정원을 찾았는데요. 울산에서 가을날 이런 그라스 정원을 만날지 몰랐다며, 벤치에 앉아 서로 한참을 이야기했습니다.
정말 담당자를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물어 보고 싶은 맘이 굴뚝같았고요.
그런데 마침 10월 31일 그라스 정원 설명회가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된 것이었죠, 그래서 평일 낮에 시간을 내서 찾게 된 것이었습니다.
이날 설명회에서는 '그라스 정원'을 추진하고 만든 이상만 남구청 교통 환경국장이 직접 나와서 그간의 진행 과정과 앞으로 계획, 그리고 남구에서 추진 중인 몇 년 간의 정원 계획까지 상세히 들려주었습니다.
'왜 이곳에 그라스 정원인지?'가 개인적으로 가장 궁금했던 점이었는데요.
이상만 국장 曰,
"꽃은 365일 중 10일만 이쁘고 350일은 그냥 풀밭이거나 잡초밭입니다. 그때 찾은 관광객이나 좋지 나머지 350일 주민은 안 좋습니다.
그라스 정원은 2월에 잘라 주고 나면 봄에는 모내기한 것 같이 좋고 여름에는 푸르고 가을에는 지금처럼 이쁘고 겨울에는 마른 모습이 이쁩니다. 일 년 중 350일 이쁩니다. 그러면 살고 있는 주민이 좋습니다."
"그라스는 가만히 두면 자랍니다. 꽃에 들이는 품에 비하면 거접니다. 거름, 물 없어도 잘 자랍니다.
여기가 장마, 태풍 때 비 오면 가장 잘 잠기는 구간인데 물 한 번 쓸려도 잘라 주면 이듬해 다시 잘 자랍니다.
하천 변에 억새만큼 좋은 게 없습니다.
하구 물억새는 키가 너무 커서 혼자 산책하기 조금 무서운 느낌도 있는데 여기는 딱 적당해서 산책하기도 좋습니다."
의도한 그라스 말고 잡초가 있는지, 없는지에 따라서 '그라스 정원'과 그냥 잡초밭을 가르는 기준일 텐데요.
제가 10월 중순에 그라스 정원을 방문해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게 식재 한 그라스 말고는 정원에 잡초를 볼 수 없다는 점이었습니다.
이게 말이 쉽지 관리하려면 손이 무척 가는 거죠. 이렇게 잡초가 자라지 못하게 그라스 주위로 현무암을 뿌려가며 관리하고 있다고 합니다.
"국화밭은 2021년 조성했습니다. 여기 국화꽃은 사서 심은 게 아닙니다. 태화강 국가 정원에서 버리는 국화를 가져다가 심은 겁니다.
또 심은 녀석을 가만히 둔다고 이렇게 꽃이 피지 않습니다.
국화는 손이 많이 갑니다. 여름 내내 올라오는 순을 잘라주면서 키워야지 가을에 이렇게 풍성하게 꽃을 피웁니다.
꽃 감상하실 때 뒤에서 이런 풍경 만들고자 수고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점도 생각해 주면 좋겠습니다."
2시간 정도 이어진 설명회를 통해 개인적으로 그간 그라스 정원'에 관해 궁금했던 점과 더불어 다양한 남구의 정원 이야기까지 자세히 알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앞으로 2027년까지 이어질 그라스 정원 사업을 통해 어떻게 남구 그라스 정원이 커 나갈지, 좀 더 기대감이 들기도 했고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와 상관없이 지금 '그라스 정원'의 가을은 나날이 깊어만 가고 아름다움은 더해만 가고 있습니다.
이런 그라스 정원에서 꽃보다 그라스 만의 새로운 가을을 만나봐도 좋겠습니다.
그라스 정원 주차장 안내
그라스 정원 입구에 몇 대 주차할 공간이 있지만 주말에는 혼잡해서 주차하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길 건너편 '삼산배수장'에 주차 후 도보(로 100M) 이동하면 됩니다.
※ 해당 내용은 '울산광역시 블로그 기자단'의 원고로 울산광역시청의 공식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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