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천시에도 고택들이 꽤 있습니다.

경북 영천시 금호읍 종동길 23에 위치한

경상북도 유형문화재 제 333호인

'금산당'을 가 보았습니다.

금산당은 조선 정조 5년(1781)에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조학신(1732~1800)선생의 후손인

장릉참봉 병문이 1900년에

차자인 명환의 살림집으로 건립한 것입니다.

세월의 한참 지났기에 현재 건립 당시의

전체 모습을 간직하고 있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안에 들어가보니 정비가 잘 되어 있었습니다.

사랑채와 안채는 당시의 목조기법을

잘 간직하고 있으며

재목이나 기법들 또한 격식을 갖추고 있습니다.

사랑채의 평면은 'ㄱ'자형으로

모서리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2칸 사랑대청을

중심으로 좌측과 안채쪽으로 2칸의 온돌방을

두었으며, 좌측에 중문간을 두어

안채로 출입할 수 있도록 되어 있습니다.

안채는 6칸 'ㅡ'자 평면으로

부엌, 2칸의 안방, 2칸의 마루, 1칸의 온돌방으로

배열되어 있으며,

온돌방 앞쪽과 마루쪽에는 퇴를 두었습니다.

금산당 우측의 만취당과

긴밀한 관계에 의한 동선,

또 평면 구성에서 만취당에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좋은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금산당 동쪽에 인접해 영천 만취당이 있습니다.

경북 영천시 금호읍 종동길 25에 위치한

영천 만취당은 중요민속자료 제 175호입니다.

영천 고택 만취당은 조선 선조때

성리학자인 문간공 지산 조호익(1545~1609)선생의

6대손이며, 조선 정조 5년(1781)에

전라도 병마절도사를 지낸

조학신 선생이 살던 집으로

만취당은 사랑채의 이름입니다.

영천 만취당은 평평한 대지에

안채. 사랑채. 새사랑채. 사당. 문간채. 재실 등이

남향으로 배치되어 있습니다.

평지에 건립된 관계로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줍니다.

만취당은 조선 후기의 살림집으로

사대부 주택의 구성 요소를 두루 갖추고 있는

건축양식과 주생활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주 건물인 만취당 대청 상부에는

'만취당'이라고 쓰인 현판을 비롯해

영모재. 기문 등이 걸려 있습니다.

조선시대 주택 양식을 엿볼 수 있는

영천 금산당과 만취당은 인접해 있어서

함께 둘러 보시면 좋습니다.

그리고 이 마을에 창녕 조씨 후손들의

전통가옥이 즐비하고 있으니 참조하세요.

영천 금산당 만취당


※ 본 글은 새영천 알림이단의 기사로 영천시 공식 입장과는 관계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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