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우빈 기자]

기자는 호국 보훈의 달 6월을 맞아

경기도 화성시에 위치한

제암리 3‧1운동 순국 유적지 및

화성시 독립운동기념관을 찾았습니다.

화성시 독립운동기념관 전경 ⓒ 왕우빈 기자

경기도 화성시 향납읍에 자리한 제암리는

아기자기하고 조용한 시골 마을입니다.

약 100여 년 전, 이 마을 사람들이 일제에 의해

끔찍한 학살을 당했던 곳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나 평화롭고 아름다운 풍경이어서

왠지 마음이 더 무거워졌습니다.

화성시 3‧1운동 순국 기념탑 앞에서 묵념 중인 기자의 모습 ⓒ 왕우빈 기자

제암리 학살 사건

제암리 학살 사건의 비극은 1919년 4월 15일,

일본 육군 중위 아리타 도시오(有田俊夫)가

이끄는 일본 군대가 이 마을을 찾으며 시작되었습니다.

3‧1운동에 참여한 독립운동가와

그 가족을 찾겠다는 명목으로

이곳을 찾은 일본 군인들은 가가호호를 돌아다니며

이 마을에 사는 15세 이상 남성들을

빠짐없이 불러 모았습니다.

이들을 마을 중앙에 있는 제암리 교회로 모이게 하고,

교회의 문과 창문을 모두 걸어 잠근 후

교회 건물을 향해 집중 사격을 가했습니다.

또한 증거를 없애기 위해 교회에 불을 질러

마을 주민 30여 명을 학살하는 만행을 저질렀습니다.

화성시 독립운동기념관은 제암리, 고주리 독립운동가 6명의 유해를 대전 현충원으로 모시기에 앞서 특별 추모재단을 마련했다. 기자는 방명록에 그 유족들께 전달될 감사 인사를 남기고 국화꽃을 헌화하며 숭고한 희생을 하신 독립운동가에게 묵념을 올렸다. ⓒ 왕우빈 기자

이 사건은 이후 제암리 현장을 찾은

외국인 선교사들에 의해 미국과 유럽 등

외국 언론에 보도되었고, 일제가 조선에서 저지르는

무자비한 학살과 만행이

국제 사회에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아울러 3‧1운동에 담긴 조선 민중들의 간절한

자주 독립 염원과 노력을 외부 세계에 확인시킨

사건이 되기도 했습니다.

화성시 일대에서 독립운동을 이끌었던 6명의 독립운동가 사진이다. ⓒ 왕우빈 기자

평화, 그 간절한 염원과

소중함을 기억해야

제암리에서 일어난 끔찍한 학살에도 불구하고,

그 주동자였던 아리타 중위는

'자신의 임무에 필요한 일이라는 확신에서 행한 것으로

범죄의 의도는 없으며, 이를 처벌할 근거 법률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 선고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희생자의 유족과 마을 사람들에게

제암리 학살 사건은 잊을 수도,

잊어서도 안 되는 깊은 상처이자 아픔으로 남았습니다.

당시 이 지역에서 독립운동을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 및 그 가족, 그리고

학살 사건으로 희생된 사람들의

애국 정신을 기리기 위해 제암리에서는

오늘날까지도 매년 추도식이 열리고 있습니다.

투옥된 독립운동가들의 발에 채웠던 족쇄(왼쪽)와 재판을 받으러 가거나 면회실로 이동할 때 얼굴에 씌웠던 용수 ⓒ 왕우빈 기자

특히, 올해 4월에는

기존 제암리 교회 건물에 마련되어 있던

역사 사료 및 기증품 전시관을

별채의 독립기념관으로 확장, 이전하여

화성시 독립운동기념관을 개관하였습니다.

이로써 화성시 일대에서 있었던

독립운동과 독립운동가들의 활약을 보다 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보관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또한 상설 전시관과 특별 전시관, 어린이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어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전시관을 즐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게 되었습니다.

화성시 일대에서 활약한 독립운동가들의 신상과 얼굴 사진이 담긴 <감시 대상 인물 카드>의 모습 ⓒ 왕우빈 기자

기자가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독립운동가들의 신상과 사진이 담긴

'감시 대상 인물 카드'와 학살 현장을

간접 체험할 수 있는 영상 체험실이었습니다.

그동안 책 속에서만 보고 배웠던

일제 시대의 역사적 사건과 인물들의 이야기가

훨씬 생생하게 느껴지면서,

고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쳐 독립운동을 한

많은 사람의 노고와 희생에 다시 한번

감사함을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영상 전시실에서는 제암리 교회 학살 사건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볼 수 있는 코너가 마련되어 있다. 식민지 치하에서 고통을 받았던 당시 사람들의 아픔과 두려움을 통해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화의 소중함을 새삼 느껴볼 수 있었다. ⓒ 왕우빈 기자

상설 전시시실 마지막 부스에는

일제 시대에 강제 징용되거나 강제 노역에 끌려갔던

경험자들의 인터뷰가 상영되는

영상 전시실이 있습니다.

고작 열셋, 열넷의 어린 나이에

만주, 일본 등지에 끌려가 고된 훈련과 노역,

추위와 굶주림에 시달렸던

생존자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일제 시대 강제 징병과 강제 노역에 차출되었다가 생환한 생존자들의 인터뷰 영상이 나오고 있다. ⓒ 왕우빈 기자

오늘날 매일매일 당연하게 누리고 있는

이 평화와 자유가 결코 당연하게 주어진 것이 아니라,

고국의 독립과 평화를 위해 몸 바쳐 싸우고

희생한 사람들의 헌신으로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게 되었습니다.

바쁜 일상의 연속이지만, 호국 보훈의 달 6월을 맞아

가족과 함께 평화와 고국의 소중함을

되짚어 보는 소중한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요?

엄혹한 식민 통치 하에서도

고국 독립의 희망을 잃지 않고 독립을 위해 싸운

독립운동가와 한국 전쟁으로 희생된 군인들

그리고 지금 이 시간에도 불철주야 나라를 지키는

모든 이들에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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