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월을 맞이하여,

6.25 전쟁이 생각나는 때입니다.

이번 포스팅은 '6.25 전쟁 역사 특별전시회' 소식입니다.

'6.25 전쟁 역사 특별전시회'가 열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장소는 평택시 평생학습센터 1층 로비입니다.

한국전쟁 시기의 평택은 전쟁 초반의 승기를

잡기 위한 요충지였으며,

서울 점령된 이후 최북방의 방어선이었다고 합니다.

전쟁 시작부터 과정을 알리는 사진입니다.

1950년 6월 25일 새벽에 북한 공산군이

남북군사분계선이던 38선 전역에 걸쳐 불법 남침함으로써

일어난 한반도에서의 전쟁입니다.

한국전쟁과 해방과 분단의 역사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는 사진들입니다.

1949년, 북한, 소련과 '조소군사비밀협정' 체결하고

남한에서 주한미군 철수를 하였던 것이지요.

이 틈을 노리고, 북한은 1950.6.25 남침을 하게 되었습니다.

6.25 남침과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으로

서울을 탈환한 과정을

사실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진들입니다.

1950년 10월 유엔군, 평양을 수복하고

압록강과 두만강까지 진격하게 됩니다.

950년 11월 중공군 개입으로

다시 후퇴하게 되는 배경들입니다.

한국전쟁 휴전 후 휴전협정에 따라

한국 문제의 정치적 해결을 위한

정치회담이 대한민국과 유엔군 측의 16개 참전국

그리고 공산군 측의 북한·중공 및 소련 등 3개국이

참가한 가운데 1954년 4월 제네바에서 개최되었다고 합니다.

1951년 7월, 개성에서 휴전회담 시작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유엔군 사령관과 공산군(북한군과 중공군) 사령관 간

휴전이 조인되었습니다.

'전쟁이 남긴 상처'를 알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6 ·25전쟁의 3년간에 걸친 동족상잔의 전화는

남북한을 막론하고 전 국토를 폐허로 만들었으며,

막대한 인명피해를 내었습니다.

전투 병력의 손실만 해도 유엔군이 한국군을 포함하여

18만 명이 생명을 잃었고, 공산군 측에서는

북한군 52만 명, 중공군 90만 명의 병력을 잃었다고 합니다.

전쟁 기간에 대한민국의 경우 99만 명의 민간인이

목숨을 잃거나 상처를 입었다고 합니다.

어느덧, 마지막 사진 모습입니다.

‘전쟁의 기억’은 전쟁을 경험한 사람만이 가능한 것이겠지만,

‘기억의 전쟁’은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도 공유할 수 있다고 생각하며...

이번 포스팅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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