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전 동양장 B1 이정성 작가 개인전 ‘우아한 거짓말’
우리가 사는 인생의 힘듦의 가장 결정적인 원인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인간관계입니다. 인간관계는 어떻게 하고 싶어도 완전히 떼어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직장생활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그곳에서 인간관계가 아닌 업무 때문에 힘든 것이라면 다른 부서로 옮기거나 다른 직장으로 옮기면 그만입니다. 아니면 덤덤히 받아들이다 보면 익숙해져서 힘들지 않게 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인간관계일 경우 이야기는 완전히 달라집니다.
내가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이상, 내가 싫어하는 상대방과 한솥밥을 같이 먹는 것, 이것이 인간관계에 있어 가장 힘든 이유라 할 수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예시로 들었지만 살면서 사람과의 관계를 맺지 않기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여기 인간관계를 주제로 은유적이고 냉소한 느낌으로 풍자한 작가의 전시를 소개해 볼까합니다.
전시에 앞서 장소에 대해 먼저 소개를 하겠습니다. 이번 전시를 연 곳은 ‘동양장여관’이라는 것으로 대전 중구 대흥동 대흥로111번길 30-10에 위치해 있습니다. 이름에서 알수 있듯이 원래는 숙박시설로 운영해왔으나 2010년대 후반 지금과 같은 문화공간으로 개조하여 탈바꿈을 한 곳입니다.
이번 소개할 전시는 이정성 작가의 개인전 ‘우아한 거짓말’로 10월 5일부터 10월 13일까지 동양장 여관에서 진행하였습니다. 이정성 작가는 회화를 기반으로 하여 사회 구조와 그 이면에 존재하는 양가적 감정을 탐구하는 작업을 펼치고 있습니다. 특히 사회와 예술이 관계 맺는 방식, 사회적 관계 속에서 예술의 역할을 고민하고 동시대 불안과 균열을 일종의 에피소드처럼 연출하는 특징이 있기도 합니다.
인간을 애정어린 시선으로 보되 죄책감과 수치심 등의 내밀한 감정을 애써 외면하지 않으며 사회적 공동체의 형성과 파괴의 과정 속에서 그 현장감을 집요하게 살려내 군중의 모순된 감정선을 건드리는 것, 그것이야 말로 이정성 작가의 작품에 대한 특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이번 전시는 집단, 사회와 같은 거시적이 아닌 오로지 이정성 작가, 개인에 초점을 맞춰서 미시적인 관점으로 이면을 탐구한 작품을 선보였습니다.
“지난 작업의 동향을 짚어보면 연대와 연민, 공동체의 파괴와 인간의 존엄에 대한 생각들을 시각화하는데 몰두했다. ·····(중략)····· 이번 전시는 이전 작업과는 결이 다른 형태로 진행되었다.”
”지금까지의 삶 속에서 무덤덤하게 괜잖다고 생각했던 것, 지니고 나면 괜찮아질 것만 같던 일들과 반대로 그렇지 못한 일들이 충돌되는 이질감, 복잡한 내적 감정이 이리저리 튕겨 나가는 모습들을 담고자 했다.“
전시장 전경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작품이 전반적으로 칙칙하고 어두운 느낌이 강합니다. 마치, 작가의 마음속 푹 눌러두었던 응어리가 드디어 표출되면서 나온 느낌이랄까요.
마음 속에 눌러두었지만 나의 진실된 감정이기에 또, 동시에 인간의 추악한 본능을 보기 싫어도 어떻게든 직시할 수밖에 없기에 저런 느낌으로 표현한게 아닐까 싶습니다. 우리는 사람으로 살면서 어떤 것이 인간다움인 것인 걸까요? 나의 솔직한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것입니다.
흔히 어른과 아이의 차이점이라고 한다면 내 기분을 대놓고 드러내느냐 드러내지 않느냐의 차이로 판가름 난다고 합니다. 제아무리 기분이 나빠도 대놓고 드러내는 태도를 자제하는 것, 이것이 어른으로 나아가는 단계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감정을 꾹 참고눌러 어떤 계기가 됐든간에 표출한 결과는 어둠 밖에 없는 심연이었습니다. 어찌 보면, 피하고 싶어도 피할 수 없는 우리네 삶의 이면인 것이죠.
”작업의 시작은 가족이란 개념에서부터 제일 작은 공동체에 대한 기억이다. 좁은 식탁에서부터 말없이 밥숟갈 뜨는 소리만 들리는 엄숙한 긴장감“
이 전시에서 유일한 설치 작품으로 검은 식탁보가 덮인 원형 테이블에 양식 식기들이 놓여져 있습니다. 작품 제목은 ‘삼자대면’. 세사람 분의 식기가 있고 서로 마주보는 형태인데요. 적어도 두 사람 이상이랑 함께 식사하는 풍경을 자아내어 보여줍니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식기와 함께 놓여 있는 메뉴판인데 거기엔 ‘물에 불린 야구방망이 스테이크’, ‘은행나무와인’이라는 메뉴이름이 적혀있습니다. 또한, 설명도 흥미롭습니다. 전자는 ‘물에 불린 야구방망이를 열을 가하며 적당한 고통과 기억을 상기시키는 맛’이라 적혀있고 후자는 ‘은행나무에서 떨어진 열매의 불쾌한 냄새를 숙성시킨 최고급 와인’이라 적혀 있습니다.
인성을 형성하는데에는 가정에서 시작되고 가정에서는 밥상에서 시작됩니다. 그래서 ‘밥상머리 교육’이라는 용어가 괜히 나온 것이 아니죠. 하지만 이정성 작가는 밥상머리 교육에 대한 어두운 면을 표현하였습니다. 부정적 표현을 은유적으로 돌려 말하는 듯한 발상으로 말입니다.
조직, 사회에서 당당한 일원으로 살아남기 위해 예절을 가슴 깊숙이 남길 정도로 배워왔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꼭 빛이 있는 것만은 아닙니다. 또 다른 방법, 엄격함이라는 그림자가 있습니다. 그것은 육체적이든, 정신적이든 상관없이 개인이라는 세계관을 탈피시키고 단체, 조직, 사회, 국가라는 새로운 세계관에 편입하여 그곳에 살아남는 방법을 현실적으로 알려주기도 합니다. 그 대신 나를 억압해야 하는 강박증을 남긴 후유증이 남아있기도 합니다. 다른 세계관에서 살아남기 위한 대가로 개성을 지불한 셈이죠. 그러한 대가를 지불하기엔 뭔가 값비싸다고 느낄지도 모르겠습니다. 심하면 남의 눈치만 보다가 끝날지도 모르니까요.
그렇지만 이로 인해 인격을 가진 문명인이 되기도 하는 아이러니함이 있기도 합니다. ‘가면을 쓴다’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이 표현은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의 진짜 속내를 타인에게 들키지 않게 하기 위해 감추며 좋은 인상으로 남기게끔 하는 행동입니다. 이정성 작가는 가면이 아닌 거짓말로 표현을 하였습니다. 한마디로 선의((善意)의 거짓말인 셈입니다. 비록 사실은 아닐지라도 걱정을 끼치지 않기 위해 치명적인 약점을 숨기기 위해 타개하는 방법이죠.
이러한 수단을 통해 사회가 유지되면서도 심리적으로 피혜해지는 양날의 검입니다. 어쩌면 인간이라는 존재가 불완전하다는 증거가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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